top of page
검색

[성경해석학] 성경해석학 부정적 구별의 원칙

  • 작성자 사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5월 22일
  • 2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6월 12일

24.05.22.

[성경해석학] 성경해석학 부정적 구별의 원칙



부정적 구별의 법칙

“타락한 인류를 철저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라.”


오늘 보실 부정적 구별의 법칙은 성경에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바라볼 때 어떤 시야를 갖게 만드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 구별의 법칙

The Law of Negative Discrimination

성경은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 관해서 부정적인 관점을 취한다.

The Bible takes a negative view of man apart from God.


부정적 구별의 법칙은 ‘성경은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 관해서 부정적인 관점을 취한다.’ 겁니다. 사실 매우 당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법칙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에 들어서 너무나 많은 목회자, 부흥사, 설교자들이 인간을 굉장히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해서 계속 좋은 소리를 하게 되는 거죠. 원래 성경 해석 자체가 부정적으로 봐야 되는데 이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보니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후반부에 다루겠지만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신학까지 뒤집히게 되는 부분들도 생깁니다. 


부정적 구별의 법칙

The Law of Negative Discrimination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하나님의 기준선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인간은 철저히 부정적으로 보신다.

=>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인데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이 땅이나 어떤 인간들에게 희망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더 구체적으로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선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인간은 철저히 부정적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디지털로 여는 좋은 세상 대한민국이 먼저 갑니다!

-경이로운 세상

-2019년 환경정책 이렇게 바뀐다!’건강하고 쾌적한 세상 만들어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아름다운 세상은 함께 만드는 거예요


세상은 당연히 세상에 대해서 좋게 말을 하죠.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좋은 세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를들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를 쓰면서 “아, 세상이 좋아졌다.” 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좋아졌다’는 것에는 ‘선해졌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더 악해졌으면 악해졌지 결코 좋아진게 아니죠. 뿐만 아니라 세상은 “경이로운 세상, 쾌적한 세상, 따뜻한 세상 또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 이렇게 희망적인 내용들을 말합니다. 이런식의 관점을 세상이 많이 내비치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더 좋게 하는 것이 최고의 기준선이 되는 거죠.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너희 아비의 정욕들을 행하려고 하는도다. 그는 시작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안에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거짓으로 말하느니라.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그런데 하나님께는 인류에 대해서 보는 관점이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너희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여기서부터 신학의 큰 흐름이 달라지는데요. 요즘 카톨릭이 계속 밀고 있는 교리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마치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거죠.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버리는 거예요. 그런 관점은 사람들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구원받지도 않았고 예수님 믿지도 않는데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왜 자녀를 지옥에 보내시겠냐?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아비는 마귀다.” 그리고 너희 아비 마귀의 특징은 ‘그는 시작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안에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거짓으로 말하느니라.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정적이죠? 그러니까 세상은 마귀에 대해서 말하는걸 싫어합니다. 긍정적인 것만 얘길 하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아비’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게 당연하고, 이 세상의 통치자가 마귀라는 것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귀가 살아있다는 것, 정말 실질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고 요즘은 세대가 점점 젊어지면서 오히려 마귀를 그냥 멋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게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6: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사람의 사악함이 심한 것과 그의 마음의 생각들의 모든 상상마다 계속해서 악하기만 한 것을 보셨더라.


그런데 창세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사람의 사악함이 심한 것과 그의 마음의 생각들의 모든 상상마다 계속해서 악하기만 한 것을 보셨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들의 모든 상상마다 계속해서 악하기만 하구나!” 모든 상상이, 그리고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악하기만 하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판결이었습니다. 거의 4,500년 전에 미리 판결을 내리신 거예요. 하나님이 봤더니 인류는 이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악이 가득찬 세상을 하나님께서 한번 쓸어 버리셨습니다. 그게 대홍수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죄성이 노아의 가족들에게 이어졌고, 노아는 의로운 선택을 했지만, 그 죄성은 노아를 포함해서 그 아들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죠.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바로 죄를 짓는 장면이 창세기 9장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에서 “아, 어차피 인간은 어릴 적부터 악하니까 이제는 내가 대홍수 때처럼 죄가 창궐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인류를 물로 쓸어 버리지는 않겠다.” 이것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어떤 제한 선들을 줍니다. 그중에 하나가 국가가 만들어지고 또한 율법이 만들어지고 하나님께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시죠. 하지만 기본 전제는 ‘어릴 적부터 악하고 모든 상상마다 계속해서 악하기만 하다.’라는 거예요. ‘~~ 마다’라는 뜻은 ‘하나하나 다’라는 거에요. 그냥 포괄적으로 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다 악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2:1-3

그런즉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분께서 되살아나게 하셨느니라.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 세상의 경로를 따르고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지금 활동하는 영, 곧 공중 권세의 통치자들을 따라 살아갔느니라. 지나간 때들에는 우리 모두가 그들 가운데 육신과 생각의 욕망들을 이루며 우리 육신의 정욕들 안에서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였으니, 다른 이들과 똑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느니라.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3절에 보면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원래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불순종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영, 곧 공중 권세의 통치자들을 따라’ 마귀죠? 마귀를 따라 살아갔던 불순종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육신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따라서 또 세상이 자극하는 욕구에 따라서 마귀가 시킨 대로 계속 따라가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거죠. ‘지나간 때들에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구원받기 전에는 ‘그들 가운데 육신과 생각의 욕망들을 이루며 우리 육신의 정욕들 안에서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였으니, 다른 이들과 똑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음으로써 진노가 아닌 화평을 갖게 된 거죠.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8:7

이는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원수가 되기 때문이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정녕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


로마서 8장 7절은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원수가 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항상 육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기본 베이스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정녕 복종할 수도 없다’ 구원받기 전에는 제대로 하나님께 복종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또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탐구하는 본성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양심상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알지만, 또 계속 악한 가운데 살면 이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고 또 영원을 추구하도록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내재해 놓으셨지만 제대로 하나님을 섬길만큼 계속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죠. 왜냐면 본질적으로 악하니까요. 죄성을 가지고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악한 일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아야 되는 겁니다. 거듭나야지만 다시 태어난 그 새 사람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으니까요.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3:13-18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은 자신들의 로 속임수를 사용하였도다. 독뱀들의 독이 그들의 입술 아래에 있느니라. 그런 자들의 입은 저주와 신랄함이 가득하니라. 그들의 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니라. 멸망과 비극이 그들의 길들 가운데 있느니라. 그런즉 그들이 화평의 길을 몰랐느니라. 그들의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전혀 없느니라.


로마서 3장에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보면 다 악하다는 거예요. ‘의로운 자는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은 자신들의 로 속임수를 사용하였도다.’ 목구멍도 악하고, 혀도 악하고, 입술도 악하다. 입도 악합니다. ‘독뱀들의 독이 그들의 입술 아래에 있느니라.’ 입으로 독설을 퍼붓죠. 욕도 하고요. 보통 욕이 입에 막 붙어 있죠. ‘그런 자들의 입은 저주와 신랄함이 가득하니라.’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할 때 함부로 말을 하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자제를 하고 제한을 하죠? 만약에 제한이 다 풀린다면 온갖 저주를 신랄하게 퍼부을 겁니다. ‘그들의 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니라.’ 발도 악하고요. ‘멸망과 비극이 그들의 길들 가운데 있느니라.’ 그들의 길도 악하고요. ‘그런즉 그들이 화평의 길을 몰랐느니라. 그들의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전혀 없느니라.’ 눈도 악해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까 악한 것들만 더 바라보겠죠. 자, “이런 것들이 인간의 상태다.”라고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설교하면 누가 교회에 오겠어요? 그렇죠? 하하하! 왜? 큰 교회로 사람들이 갈까요? 보통 ‘긍정의 힘’, 뭐 이런 것을 얘기하니까 갑니다. “잘 살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인제 막 교회에 처음 왔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고 병도 고쳐주신다.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하니, 교회에 와서 자기가 구원받아야 되는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 겁니다. 자기는 구원받아야 될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축복받아야 될 대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런 상황이란 말이죠.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7:18

이는 내 안에 (즉,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전혀 거하고 있지 않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 나에게 하려는 의지가 있으나 그 선한 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내가 발견하지 못하노라.


로마서 7장 18절에 보면, ‘이는 내 안에 (즉,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전혀 거하고 있지 않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 누가 말했죠? 바울이 말했어요. 심지어 바울 자체도 자기가 거듭난 새 사람인데,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데 내 옛사람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심지어 바울같이 훌륭한 사람도 육신 안에는 전혀 선한 것이 전혀 없다고 해요. 더더구나 우리는 육신을 자랑할게 없어요. 그런데 세상은 다 육신 자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알아요. “내가 육신을 자랑해 봤자 이건 죄덩어리다. 내가 내 혈통을 자랑해봤자 죄의 혈통일 뿐이다. 내가 내 재능을 자랑해 봤자 하나님이 그냥 선물로 주신 것뿐이지 육신 자체는 워낙 악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부를 자랑해 봤자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항상 그런걸 이루려고 하죠. 최근에 제가 어떤 분과 교제를 했는데 그분이 옛 동창들 만나는게 점점 꺼려진다는 거에요. 추억을 생각하면 만나고 싶은데 만나서 얘기하면, 뭐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집은 어디에서 사는지? 어느 동네에서 사는지? 자녀들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다 자랑거리들 이래요. 다 육신적인 것들인 거에요. 그걸로 서로 재고 자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욕망을 자꾸 이루려고 살아갑니다.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2:12

그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국가에 속하지 않은 외지인들이었고 약속의 언약들과 상관없는 타국인들이었으며, 어떤 소망도 없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느니라.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국가에 속하지 않은 외지인들이었고 약속의 언약들과 상관없는 타국인들’이었다고 합니다. 민족주의도 굉장히 국가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악한 자부심을 만드는 걸로 사용하죠. 민족주의가 뭐에요? “우리 민족 최고다.”잖아요. 그 민족주의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독일에서 “우리 게르만 민족이 최고다. 유대 민족은 쓰레기다.” 하면서 유대인들을 죽여 버렸어요. 그게 민족주의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거예요. 그런 자부심을 느끼면 정부 밑에서 충성심을 갖게 되는 거죠.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나라를 지키려고 희생한 것을 다 깎아 내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뭐 요즘 시체 말로 ‘국뽕’이라고 하죠? 막 자부심을 끌어 올리는 것들이요.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짜피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로서, 민족으로서 자랑할 것은 없어요. 이스라엘에게조차도 자랑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우리는 ‘어떤 소망도 없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성경의 관점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7:23

그런즉 그때 나는 그들에게 공언하겠노라. ‘나는 결코 너희를 알지 아니하였노라. 죄악을 행사하는 너희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시죠. ‘‘나는 결코 너희를 알지 아니하였노라. 죄악을 행사하는 너희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인격적으로 전혀 알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진)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발의 국회의원과 성수자-HIV/AIDS인권운동 ⋅ 그리스도인이 요구한다.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국회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실현하라.

 2022년 1월 5일(수) 오전 10시 40분 / 국회 소통관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차별, 차등을 두세요. 그런데 세상은 이런 차별을 견딜수 없어 합니다. 먼저 어떤 건지 알아 볼게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과 그리고 교회(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차이를 두세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당연히 차별이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취급하십니다. 그들은 엄청 싫겠죠? 또 하나님께서는 동성애 자체를 죄라 하시고 ‘소돔족’ 이라고 부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하는 것도 차별한다고 말합니다. “왜 우리 사랑은 인정해주지 않냐?”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점점 더 이 세상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책이 돼 버린 겁니다. 악한 책, 차별적인 책이 되버리는 거예요. 못 받아들이겠죠.    

 

The HOLY BIBLE KJV

사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든 민족들도 지옥으로 돌려지리라.” (시 9:17) ⇐ “증오 연설이다!


이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전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hate speech, 증오 연설이라고 합니다. hate speech는 그냥 증오 말이 아니라 연설을 말하는 거죠. 사실 우리가 거리에서 복음을 외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해서 외치는 거잖아요. 지옥 가는게 현실이니까 지옥에 가지 말라고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을 피해 구원받으라고 외치는 겁니다. 사실 우리만큼 그 사람들을 사랑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없죠.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악한 자들은 지옥에 간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성경에서 보면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게 인정을 받고 싶고 세상에게 인기있고 싶어하는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은 교회로 인정 받으니까 교회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세상의 문화도 들여 와야 되고 세상의 음악도 들여 와야 되고 또 세상적인 방법도 들여 와야 되고 또  세상 사람들을 좋게 말해야 되고 이러다 보니 영화 예배, 콘서트 예배, 등등. 세상에게 아첨하는 교회가 돼 버린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커진 교회들을 좋은 교회, 성공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들이 뭐 성공의 비결을 얘길 한다치면 막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오고 목회자들이 백 명, 천 명씩 몰려와서 들으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 돌아가셨지만, 예전에 조용기 목사가 아프리카나 제 3국들을 많이 돌아다녔었대요. 그런데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인기가 엄청 많습니다. 왠지 아세요? 다들 조용기 목사처럼 성공한 목회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방식을 따라 치유한다, 방언한다고 하게 된거죠. 우리나라도 처음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 순복음교단 자체가 왔을 때 이단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 교회가 커지니까 이단 딱지가 자동으로 떼어진 거예요. 교리가 바뀐게 아닌데 이단에서 풀어진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로교, 감리교, 뭐 할것 없이 모두가 갑자기 방언을 따라 하더라고요. 원래 장로교, 감리교는 그런 교리가 아니거든요. 여러분,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가 방언하는거 봤습니까? 칼빈이 방언하는 것 봤어요? 전혀 그 교리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래야 교회가 커지나 보다.” 한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는 사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교회, 거의 차이가 없을만큼 섞여 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관점의 차이가 돼 버린 거죠.

      

The HOLY BIBLE적개심⇒ (사진) 차별금지법

[표준킹제임스성경] 야고보서 4: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의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너희가 모르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이길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도 ‘세상의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이길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그런데도 세상 친화적으로 교회 방향을 세운다든지, 교리가 그쪽으로 쏠려 버리면 큰 일이 나는 거죠. 특히 교리가 바뀌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그러므로 불의와 함께 무슨 교제가 있겠느냐? 그리고 어둠과 함께 무슨 교감이 있겠느냐? 또 그리스도께서 밸리알과 무슨 화합이 있겠느냐? 또는 믿는 자불신자와 어떤 부분을 함께하겠느냐?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우상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라. “네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다니겠노라.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으며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별을 말씀하시잖아요?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그러므로 의가 불의와 함께 무슨 교제가 있겠느냐? 그리고 빛이 어둠과 함께 무슨 교감이 있겠느냐? 또 그리스도께서 밸리알과 무슨 화합이 있겠느냐?’ 자,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을 보시는 시각을 보세요. 너희는 누구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불의, 어둠,밸리알, 불신자, 우상들, 벨리알은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죠? 지금 이것들이 믿지 않는 자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이에요. 그런데 유명한 목회자들이 TV에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님의 관점 얘기를 전혀 안 한다는 거예요. 아주 세상 친화적으로 좋은 얘기만 한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요런 부분들을 보시면요. 하나님이 부정적으로 인간들과 세상을 바라보신다는 것이 성경에 너무나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이게 일관적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부정적 구별의 원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전서 4:17-18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해야만 하는 그때가 임하였기 때문이니,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끝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리고 만일 의로운 자가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불경건한 자들과 죄인들은 어디에서 나타나겠느냐?


심판이죠? 이 사람들의 끝이 지옥이고 심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려야 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심판이다. 죄인들은 지옥에 간다.” 이렇게 알려야죠. 그런데 이걸 알리지 않고 “괜찮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면, 부분적으로 잘못된 것을 결합을 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역자

부정적 구별의 법칙 => 구분선

-거짓 예언자


그래서 이 부정적 구별의 법칙이 하나님의 사역자와 거짓 예연자를 구별하는 아주 중요한 시금석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보여주죠?


인류에 대한 솔루션은?

“자신을 부인하라” / 마음을 따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자신을 부인하라”. 그런데 세상은 말하죠. 너의 마음을 따르라!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 네 마음을 따라 해라.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하라. 네 자신을 인정해라.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사실 불교, 도교, 유교, 힌두교, 모든 뉴에이지 사상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또 네 자신을 믿으라. 이런 것도 다 포함되어 있는 거죠. 세상이 똑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세상을 주관하는 영이 같다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차이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메세지

[표준킹제임스성경] 열왕기상 22:11,12

이윽고 크나아나의 아들 시드키야가 자신에게 철로 된 뿔들을 만들어 두었더라.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친히 시리아인들을 진멸시킬 때까지 이것들로 그들을 밀고 나갈지니라.’” 하였더라.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도 그렇게 에언하며 말하기를,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서 형통하소서. 이는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안에 넘기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하였더라.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시드키야는 거짓 예언자인데 아합 왕에게 아주 좋은 예언을 해줍니다. 아합왕이 전쟁하기 전에 점치듯이 “야, 하나님이 뭐라고 말하는지 말해 봐?” 그러자 거짓 예언자들은 “나아가라. 이길 것이다.” 이렇게 좋은 말을 하죠.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도 그렇게 에언하며 말하기를,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서 형통하소서. 이는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안에 넘기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만사형통할 것이다. 승리할 것이다. 좋은 예언을 합니다. 보통 점쟁이들도 좋은 예견을 해주고 점값을 받는데 안 좋은 말을 하면 괜히 욕먹죠? 아니면 그걸로 아예 협박을 하고 두렵게 해서 더 돈을 쓰게 만들던지 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메세지

[표준킹제임스성경] 예레미야서 23:16,17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에게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말들을 경청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허황되게 하는도다. 그들은 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기들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현시를 말하는도다. 그들은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계속 말하기를, “주가 말씀하시나니, 너희는 화평을 누리리라.” 하는도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상을 따라 살아가는 각인에게 말하기를, “어떤 해악도 너희 위에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예레미야서 23장 16,17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그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경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너희를 허황되게 하는도다. 그들은 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기들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현시를 말하는도다.’ 특히 “아, 내가 무슨 환상을 봤다.” 하면서 자기 생각과 상상에 있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아니!!! 성경이 버젓이 나와 있는데 성경과 다르게 말하다니요.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게 직통계시라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이 완성되고 나서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아무개야,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음성을 들려 주시는 직통계시는 이제 없어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 하면서 마치 자기가 옛날의 예언자인 것처럼, “이렇게 이렇게 해라”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버리는 거예요. ‘그들은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계속 말하기를,’ 자, 보세요. 거짓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뭐라고 말하냐면? ‘“주가 말씀하시나니, 너희는 화평을 누리리라.” 하는도다.’ “잘 될거야.”라고 하죠?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상을 따라 살아가는 각인에게 말하기를, “어떤 해악도 너희 위에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하나님이 다 지켜 주신다. 다 잘되고 다 평안하게 된다.” 자, 여기에 무슨 회개가 필요합니까? 회개라는 것은 없어요. 잘못된 것을 알려줘야 회개가 필요하죠. 그렇죠? 이런 부정적인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계속 얘기하신다는 겁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메세지

[표준킹제임스성경] 열왕기상 22:11,12

이윽고 크나아나의 아들 시드키야가 자신에게 철로 된 뿔들을 만들어 두었더라.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친히 시리아인들을 진멸시킬 때까지 이것들로 그들을 밀고 나갈지니라.’” 하였더라.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도 그렇게 에언하며 말하기를,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서 형통하소서. 이는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안에 넘기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하였더라.


열왕기상 22장 뒷 부분에 보면, 여기에는 인용이 안 됐는데, 진짜 참 예언자가 나옵니다. 이 참 예언자만 부정적으로 얘기해요. “거기 올라가면 왕은 죽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이말이 듣기 싫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 버렸어요. 한 사람만 올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 가둬 버리고 긍정적으로 말한 사람만 데려갔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후서 2:19

그들은 저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그들 자신은 부패함의 종들이라. 이는 사람이 그들에게 정복당하면 그가 그들에 의하여 노예로 속박되기 때문이라.

인간 실패


베드로후서 2장 19절에 보면, 이런 거짓 예언자들은 특징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그들 자신은 부패함의 종들이라.’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엄청 부패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는 사람이 그들에게 정복당하면’ 거짓 교리를 믿으면 정복당하는 거예요. 자,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얘기했죠. 모든 거짓 교리들은 다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잘못된 것을 믿으면 그 사람들에게 정복당한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굴복한게 아니죠. 거짓 예언자들에게 굴복한 거예요. 우리가 왜 바이블빌리버를 중요하게 여기는 줄 아세요? 우리가 왜 성경을 믿어야 되는 걸 중요하게 여기냐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굴복하고 순종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 있는 사람들의 말을 복종하고 바이블빌리버처럼 하지 않으면 정복당해서 ‘그가 그들에 의하여 노예로 속박’되 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속박 시키는 잘못된 교회들이 많아요. 자신의 잘못된 권위를 이용해서 속박시키는 말로 마치 하나님의 말인 것처럼 얘기를 해서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굴종시키는 겁니다. 


아담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3:6

그러고 나서 그 여자는 그 나무가 먹기에 좋아 보이고 두 눈에 즐거우며 누군가를 지혜롭게 만들 정도로 탐스러운 나무인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그것의 열매를 따서 먹었으며 그녀와 함께하는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더니, 그가 먹었더라.


마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여자가 그 뱀의 거짓말을 믿고나서 봤더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아 보이고 두 눈에 즐거우며 누군가를 지혜롭게 만들 정도로 탐스러운 나무인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그것의 열매를 따서 먹었으며 그녀와 함께하는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더니, 그가 먹었더라.’ 거짓말에 넘어가면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렇죠? 거짓 교리를 받아 들이면 하나님이 하라는 것과 반대를 합니다. 그러면 실패하게 되는 거죠. 아담도 실패를 했고요.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난 주에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어요.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바로 죄를 지을 때마다 그냥 안 죽이시고 기회를 주시는가? 그래서 제가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시는지 말씀 드렸어요. 그리고 개인에게만 여러 번 기회를 주시는게 아니라, 개인의 인생은 짧잖아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 6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는지도 설명을 드렸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에게 기회를 주셨죠? 딱 하나만 지키면 되었어요. 선악과만 안 먹으면 돼요. 나머지 그 모든 것은 다 값없이 먹을 수 있었어요. 다 공짜였고 일도 안해도 되죠. 병도 안 걸렸죠. 뭐 세금을 내야 될 필요도 없죠. 모든 것이 다 완벽한 낙원인데 하나 안 지켜 가지고 끝난 거거든요.     

 

노아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9:20-21

이후에 노아는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포도원을 세웠더라. 그러다가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더라. 그리고 그는 자기 천막 안에서 벌거벗겨져 있었더라.


그 이후에 양심을 얻고나서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노아의 홍수가 있을 때까지 사람들은 계속 죄로 가득해지기만 했죠. 그래서 홍수로 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노아도 실패했어요. 


민족들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11:4

그리고 그들이 말하기를,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의 도시와 하나의 탑을 건설하여 탑의 꼭대기가 하늘까지 도달하게 하자. 그리고 우리가 온 땅의 표면에 널리 흩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의 이름을 만들자,” 하였더라.


민족들도 실패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을 쌓아서 널리 흩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널리 널리 퍼져서 번성해라.” 하셨는데 “안 하겠습니다.”고 한 거죠? 그래서 민족들도 실패했어요.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 흩어 버리세요.


판관들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사사기 21:25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니,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두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판관들 시대는 어땠어요? 실패로 끝납니다. 사사기 보면은 계속 실패해요. 죄지으면 하나님게서 징계하시고 회개하고 나서 다시 또 죄짓고, 하나님께서 전쟁을 주셔서 고통받게 하시면 또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또 죄짓고⋅⋅⋅ 이런 사이클로 계속 돌아가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니,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두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행한 거예요.  

 

이스라엘 왕국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역대기하 36:16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전령들을 조롱하였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학대하였으니, 주의 진노가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여 일어날 때까지, 곧 치유책에 없을 때까지 그리하였더라.


그후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어요. 결국 어떻게 됐어요? 이스라엘 왕국도 나눠졌죠. 망했죠. 죄를 지었고 우상으로 가득찼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 멸해 버리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주의 진노가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여 일어날 때까지, 곧 치유책에 없을 때까지 그리하였더라.’ 이때까지 계속 ‘그들이 하나님의 전령들을 조롱하였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학대’한 거예요. 바른 예언을 하면 죽여 버리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을 하거나, 학대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거짓 예언자들만 수백명이 됩니다. 그런데 아합 때 엘리야 혼자 나와서 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사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들 대다수는 거짓 예언을 합니다. 왜? 이익이 있으니까요. 세상에서 인정받으면 박해를 안 받아요.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하는데 누가 박해를 하겠어요? 그렇죠? “세상은 악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죄인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러면 싫어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게 바른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들을 바라볼 때도 ‘세상에게 인정받고 칭송받고 높아져 있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란 걸 아셔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의 구분법입니다


교회 시대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4:1

이제 성령께서 명확하게 전하시나니. 마지막에 가까운 시대들에 어떤 이들이 믿음으로부터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관심을 두리라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4장 1절도, 마지막에 가까운 시대는 특히 사람들이 믿음으로부터 떠난다. 그리고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의 교리들에 관심을 둔다. 또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자기에게 맞는 선생들을 많이 둔다고도 얘기를 하셨습니다. 심지어 교회 시대도 이렇게 믿음으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천년 왕국 실패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20:7-8

그리고 그 천 년이 다 끝나고 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요,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고 그들을 함께 모아 전투를 하게 할 것이라.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 같으니라.


나중에 천년왕국 끝은 어떻게 될까요?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요,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고 그들을 함께 모아 전투를 하게 할 것이라.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 같으니라.’ 사탄이 마지막 반란을 일으켜요. 심지어 천년왕국 끝도 반란이에요. 보세요. 하나님이 영원 시대를 가져오실 때까지는 계속 인간은 실패합니다. 다양한 방법, 다양한 기회를 주시지만 인간들은 다 실패합니다. 이것이 인간 쇠락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배웠던 열역학 제2법칙도 모든 것은 쇠락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이죠. 마찬가지에요. 인간도 점점 더 악해지고 항상 실패하는 것이 인간 쇠락의 법칙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겁니다.  


(세계지도)


모든 민족들을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미국, 대단한 나라죠? 러시아, 대단한 나라죠?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죠?  


[표준킹제임스성경] 이사야서 40:15,17

보라, 민족들양동이 속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는 도다. 보라, 그분께서는 섬들을 매우 작은 것같이 들어 올리시는도다⋅⋅⋅ 그분 앞에서 모든 민족들은 없는 것 같도다. 또 그분께는 그들이 없는 것, 곧 헛것보다 더 못하게 여겨지는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민족들 다 합쳐봤자 ‘보라, 민족들양동이 속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는 도다.’ 이게 하나님의 관점이에요. “대한민국, 대단한 민족이야.” 하지 않으세요. ‘보라, 그분께서는 섬들을 매우 작은 것같이 들어 올리시는도다⋅⋅⋅ 그분 앞에서 모든 민족들은 없는 것 같도다. 또 그분께는 그들이 없는 것, 곧 헛것보다 더 못하게 여겨지는도다.’ 자, 심지어는 마이너스라는 거예요. 0보다 더 못하다. ‘없는 것, 곧 헛 것보다도 더 못하게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 보실 때는 마이너스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을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합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저평가를 하시는데 자기들은 고평가를 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의 관점이 하나님의 생각과 관점과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의 차이가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거기에 영향을 받으면, 자꾸 세상적인 좋은 것만 생각하는 거죠. 

 

(저울추) 하나님의 관점

모든 민족들 < 이스라엘


그래서 세상 민족들을 다 합쳐봤자 이스라엘에는 (쨉)도 안 돼요. 그래서 우리에겐 어떤 희망도 없어요. 타고난 대한민국 국적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구원받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요. 그럼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지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우리의 육신 그대로는 이 세상 나라들을 다 합쳐도 하나님께는 이스라엘보다 더 못 여기시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하나님께는 이스라엘이 이렇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예레미야서 30:11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흩어 그리로 보낸 모든 민족들은 내가 완전히 끝낼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너를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겠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적당한 정도로 바로잡겠으니, 너를 아무것도 처벌하지 아니한 채 남겨 두지는 아니하겠노라.


“너를(이스라엘은) 구원할 거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처벌은 하는데 완전히 끝내지는 않겠다.” 보세요. 고대 국가들 중에 아직 남아 있는 국가가 있나요? 고대 바빌론, 고대 페르시아, 고대 로마 제국, 고대 이집트 제국 남아 있나요? 없죠. 하나님은 다 끝낼 수 있어요. 우리 고조선, 고구려, 조선 남아있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달라요. 하나님은 “민족들은 얼마든지 끝낼 수 있는데, 이스라엘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민수기 23:9

이는 바위들 꼭대기에서 내가 그를 살피고, 언덕들에서 내가 그를 보기 때문이라. 보라, 그 백성은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집계되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민족들 가운데, 홀로 따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한 일이 뭐에요? UN, United Nation, 모든 민족들의 연합체가 유엔이죠? 거기에 이스라엘이 들어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것 별로 안 좋게 보십니다. 이제 대환란이 되면 이스라엘은 정말 외톨이가 될 겁니다. 모든 민족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치러 갈거고요.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겁니다.


부정적 구별의 법칙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들 ➨


앞에서 나열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를 보겠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들

(사진) “주님이 지켜주시길” 뉴욕 동성부부에 ‘교황이 허락한’ 축복

카톨릭 역사를 바꾼 교황의 결정 ‘동성 커플 축복’ 공식 승인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열왕기상 14:24

그리고 그 지역에는 소돔족들 또한 있었더라. 그런즉 그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자녀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모든 가증함들에 따라 행하였더라.


교황이 최근에 뉴욕 동성부부에 ‘교황이 허락한’ 축복에서 “주님이 지켜주시길”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런 해석이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동성애자를 축복해 주실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교황은 하나님과 전혀 다르게 말하는 거죠. 절대 카톨릭은 교리가 바뀌지 않아요. 지금까지 한번도 교리가 바뀌지 않았어요. 제가 교리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안 바꼈다는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없는 교리를 많이 추가를 했고요. 나중에 종교 개혁 때쯤에, 카톨릭이 엄청나게 타락하는데 그때 엄청 악한 교리가 많았어요. 대학살도 여러번 자행을 했고요. 그 다음에 종교 재판소를 만들어서 자기들 믿음과 다른 것은 다 이단이라고 정죄해서 죽여버렸어요. 또 면죄부를 만들어서 돈 받고 죄를 용서해 주었고요. 그런 악한 교리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십자군 전쟁 때 있던 그 악한 교리가 지금도 그대로예요. 그런데 뭡니까? 얼굴만 바꿨어요. 아주 하얀 옷을 깨끗하게 입고 와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제는 세상에서 좋은 말만 합니다. “아, 전쟁은 그만두어야 됩니다. 평화가 더 중요합니다. 아,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다 사랑해야 됩니다.” 얼굴만 바꿨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속에는 칼이 들어가 있다. 그 교리는 하나님의 교리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럼 뭐에요? 마귀의 교리들이 거기에 있다는 겁니다. 지금 가면만 바꿨을 뿐이지 교리는 그대로 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14장 24절에 소돔족, 동성애를 포함해서 LGBTQ+ 있잖아요? 이걸 다 포함해서 소돔족이라고 합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그외에 뭐가 됐든 다 소돔족이에요. ‘그리고 그 지역에는 소돔족들 또한 있었더라. 그런즉 그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자녀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모든 가증함들에 따라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가증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카톨릭은 그런 가증함들에 따라 행하고 있어요.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들

(책사진) Think Better Live Better, Become a Better You - JOEL OSTEEN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마음을 따르라.”

“자신을 믿으라.”

“자신을 사랑하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이사야서 55:7

사악한 자는 자신의 길을 버리고 불의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들을 버릴지어다. 그런 다음에 그는 주께 되돌아올지어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 위에 자비를 베푸시리라.


그런데 교황만 그런게 아니죠. 기독교계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조엘 오스틴처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는 긍정의 힘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책을 많이 냈어요. Think Better Live Better, 생각을 더 좋게하고 더 좋게 살아라. Become a Better You, 너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긍정적인 말만 하는 책을 낸거예요. 번영신학이라고 하죠. 그런데 성경은 말하죠. ‘사악한 자는 자신의 길을 버리고 불의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들을 버릴지어다. 그런 다음에 그는 주께 되돌아올지어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 위에 자비를 베푸시리라.’ 되돌아와라, 자신의 길과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걸 버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따르고,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뭐 긍정적인 것만 쭈욱 얘길합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거죠.   

 

(그림) 빌라도의 편지, 빌라도의 보고서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도행전 4:27

이는 참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아이, 예수님, 곧 당신께서 기름부으신 분을 대적하여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둘 다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데 모였기 때문이니,

 

빌라도의 편지,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것이 교계에 알려진 적이 있는데 마치 빌라도가 엄청 좋은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왜냐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했잖아요? 그리고 무죄라는 걸 세 번이나 선언을 했어요. 그러니까 빌라도를 좋게 보는 거예요. ‘이는 참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아이, 예수님, 곧 당신께서 기름부으신 분을 대적하여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둘 다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데 모였기 때문이니,’ 빌라도는 누구를 대적하죠?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예수님을 대적해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모였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본디오 빌라도는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는데도 좋은 사람으로 소개한 거예요.  

 

빌라도의 편지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8:38

빌라도가 그분께 말하기를, “진리가 무엇이냐?” 하니라. 그리고 그가 이것을 말하였을 때 그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갔고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니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결코 발견하지 못하노라.

 

그 다음 부분을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묻잖아요? 이것도 긍정적으로 보는 거에요. “빌라도는 진리에 관심 있었어.” 아니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나서 어떻게 했죠? ‘그리고 그가 이것을 말하였을 때 그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갔고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니라.’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 묻고 나서는 유대인들에게 바로 나가 버려요. 관심이 있어서 물은게 아니라 “아, 진리가 뭔데 그러는 거야?” 하고는 그냥 나가 버린 거예요. 관심이 있어서, 정말 알고 싶어서 “진리가 무엇이냐?” 물은게 아니죠. 이 질문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중요하니까 있는 것 뿐이지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잠언 17:26

또한 의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선하지 아니하며, 공평을 위하여 통치자들을 내리치는 것도 선하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23:22 그러자 그가 그들에게 세 번째로 말하기를, “어째서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어야 할 까닭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나는 그를 채찍질하고 나서 그를 가게 하겠노라.” 하였더라.

 

또 성경에 분명히 말했죠. ‘의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선하지 않다’ 분명히 빌라도에게는 권한이 있었어요. 무죄라고 세 번이나 자기가 말했잖아요? 그러면 공의롭고 정의롭다면, 무죄한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아야죠. 그런데 무죄란걸 알면서도 원래 예정에 없었던 채찍질까지 해버리고 그다음 결국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 버린 것은 비겁한 타협이었습니다. 분명히 ‘나는 그에게서 죽어야 할 까닭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노라.’ 했으면서 ‘그러므로 나는 그를 채찍질하고 나서 그를 가게 하겠노라.”’해놓고는 채찍질 하고 결국 예수님을 죽여 버린 거에요. 그래서 빌라도를 좋게 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들

-(악보)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특별강의>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비결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7:9

제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저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오직 당신께서 제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는 그들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가장 악하고 잘못된 교리가 지금부터 등장할 건데요. 바로 세상을 우리가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쳐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비결. 그런데 성경에서 성공은 딱 한번 나와요. 여호수아 1:8절에 나오는데 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실행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서 성공하게 해주신다는 거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보통 자녀가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하면 ‘다니엘 공부법’ 뭐 이런 책을 냅니다. 그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자식들이 세상에서 성공했다” 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죠? 그런데 그 성공이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다가 뭔가 잘 됐으면 영광을 돌릴 수야 있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 잘되고 나서, 일단 내가 성공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에요.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올무에 걸린다.’고 했어요. 우리는 먹고 살면 만족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추앙을 받는 것도 가증한 거예요. 인정받고 막 칭송받는 것도 가증하다 하셨어요. 그게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자.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비결. 이것은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교리에서 형성된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오직 당신께서 제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성공” 운운하는 것은 무천년주의 또는 후천년주의 영향인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20:4

그리고 내가 보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을 보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한 내가 예수님의 증거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도, 그의 형상도 경배하지 않았고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그들의 손안에 받지도 아니하였더라. 그런즉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였더라.

 

천년이라는 기준이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나온 겁니다. 요한계시록 20장만 봐도 천년이라는 단어가 여섯 번 등장하거든요. 그 여섯 번 등장하는 것 중에서 핵심이 결국은 ‘그들은(그리스도인들)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이 땅을 통치’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후천년주의자들은 “우리가 예수님 없이 천년 동안 통치하면 그 뒤에 예수님 오신다고 하는것이 후천년주의 교리입니다. 그러니까 뭐에요? “예수님 없이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통치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왕들처럼 돼야 되고 우리가 성공해야 된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세상의 왕국을 건설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다 성공해 놓으면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 오신다는게 또 무천년주의 교리이기도 해요. 무천년주의는 후천년주의와 똑같은 관조인데 “문자적인 천년은 아니고 그냥 상징일 뿐이다. 그냥 오~~랜 세월 우리가 예수님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통치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좋게 만들어서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놓으면. 예수님이 그때 오실거야.” 그러니까 그들의 임무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입니다. 또 무천년/후천년주의는 관점은 세상은 변화가 가능하다.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 입니다. 그들의 관점은 “마귀가 이 세상을 통치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통치한다.”는 거예요. 완전히 전천년주의와는 관점이 다르죠. 전천년주의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야 예수님과 함께 천년을 통치할 수 있다. 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야만 유토피아 세상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정말 진정한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우리는 할 수 없다. 예수님이 오셔야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엄청난 차이죠? 전천년주의 관점이 있으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하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건져내는 것이 목적이고 우리의 할 일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우리의 시야를 땅이 아닌 하늘에 두는 거예요. 그게 전천년주의 관점이죠. 이것은 단지 신학의 차이를 넘어서 완전히 신앙생활의 목적이 달라지는 관점입니다. 그런데 후/무천년주의를 보세요. 말이 얼마나 멋져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만들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자.” 막 뭔가를 해야 될 거 같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이 뽕을 넣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래, 난 대단한 사람이야. 우리가 여기서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자부심을 갖게 하는 건 악하다는 거예요. 그런 자만은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얘기하셨어요. “우리는 할 수 없다. 이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희망이 없다. 사람들이 빨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전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전에 빨리 우리가 구령을 하자. 그러니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자.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에 가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잘 삽니다. 예수님 믿으면 만사 형통합니다.” 이게 바른 신학 / 거짓 신학의 차이입니다. 요즘은 입으로는 전천년주의를 외치면서 자꾸 행동과 설교는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를 말하는, 심지어는 독립침례교회들도 많아졌어요. 자꾸 정치에 관심을 두고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상을 위해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된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 온통 땅 얘기밖에 안 해요. 그것은 잘못됐다는 겁니다. 아주 중요한 신학적 관점의 차이를 모르는 겁니다         


후천년주의

“그리스도를 위해 세력을 확장하여 천년왕국을 이루라.”

“배교를 예언한 성경은 틀렸다. 그리스도 없이 인간의 힘으로 천년왕국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후천년주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을 확장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서 천년 왕국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자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숨기고 있는 말이 뭐에요? 하나님은 배교를 예언하시고 마지막 날들에는 악해진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는 성경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없이 인간의 힘으로 천년 왕국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악한 세상을 위한 솔루션은?

“세상은 반드시 악해지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건져야 한다.” => 전천년주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변화시켜야 한다.” => 후천년주의 / 무천년주의


그러나 전천년주의는 “세상은 반드시 악해지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한 사람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건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솔루션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더디 오시는 이유를 설명했잖아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러 구원받게 하려고 기다리시는 거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표준킹제임스성경] 데살로니가후서 2:3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요, 그러고 나서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분명히 이렇게 말하죠.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오지 않으면’ 배교에요. 떨어져 나가다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요, 그러고 나서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자, 그날은 바로 2절 문맥에 있는 ‘그리스도의 날’을 말해요. 그리스도의 날은 두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에 나오는 휴거도 그리스도의 날에 포함시킵니다. 또 그리스도의 날은 하루가 아니고 주의 날처럼 넓은 기간을 말합니다. 주의 날은 주님의 재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리스도의 날은 그리스도의 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리스도의 날에는 대환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가 휴거되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혼인식을 치르고 내려오는 그때까지가 그리스도의 날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날에는 휴거만 있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혼인잔치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오지 않으면)에서는, 배교가 드러나야 휴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고요. 여기에서는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드러나지 않으면 대환란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얘길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의 관점에서 보면, 파멸의 아들인 적그리스도가 오지 않으면 어린양의 혼인식을 빨리 치룰 수가 없으니까 그 날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중 적용을 해야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3판에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했습니다. 또 이 부분을 어떤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요. ‘그날’을 이것은 ‘주의 날’이다.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사사로운 해석이에요. 왜냐면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절을 보시면 거기서 등장하는 날은 그리스도의 날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을 주의 날이라고 잘못 해석을 하고 한 번에 한 번으로 적용을 하고 두개를 하나로 해서 한 번만 적용을 하는게 문제거든요. 이 부분은 제가 나중에 따로 교리적으로 다룰 건데요. “그날”은 반드시 바로 앞에 문맥에 있는 ‘그리스도의 날’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는 ‘주의 날’이 없습니다. ‘주의 날’은 재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날’을 재림으로 보면은 이 부분(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오지 않으면)이 대환란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간에, 이 부분을 조금 더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먼저 있어야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떨어져 나가는 일을 잘못 해석해서 휴거를 떨어져 나간다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falling away가 영어로 떨어져 나가는 거거든요. 언급을 한 김에 또 하나, 여기서는 우리가 신학을 좀 다루기도 하니까요. 휴거는 성경에서 caught up이라고 표현합니다. 붙들려 올라가는 거죠. 그렇죠? 촥 올라가는 것, 이게 휴거예요. 방향은 위죠. 반면 falling away는 방향이 밑(아래)입니다. 아래로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falling away, fall자체가 쓰러지는 것, 떨어지는 것을 말해요. 그렇기 때문에 방향이 아래입니다. 위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진짜 사사로운 해석을 해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뭐, 무화과 나뭇잎 연관을 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아무도 주장하지 않고 그냥 자기 혼자 주장하는 진짜 사사로운 해석입니다. 여기서 떨어져 나가는 일은 헬라어로는 어퍼스씨(?)라고 하거든요. 이게 배교라는 뜻이에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다라는 말은 성경 곳곳에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표준역)는 falling away, 두 단어로 돼 있는 이 부분을 ‘배교’라는 한 단어로 하기 보다는 ‘떨어져 나가는 일’로 풀어서 동명사의 동사를 좀 더 강조를 했습니다. falling away를 두 단어로 더 풀어서 정확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꼭 문맥과 함께 봐야 됩니다. 자,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교회 시대의 마지막은 배교로 끝난다. 믿음이 떨어져 나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

또한 이것을 알지니, 마지막 날들에 아주 위험한 시대들이 오리라.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마지막 날들에 아주 위험한 시대들이 오리라.’고 했는데 세상이 아주 좋아질 거라고 기대할 순 없겠죠? 아무리 긍정적이고 좋아 보이는 말이여도 성경과 다르면 절대 받아들여선 안됩니다. 특히 그것이 교리가 되버리면 거짓말을 믿게 돼 버리니까 그런 부분을 성경해석학 부정적 구별의 법칙에서 조심하라고 하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2:18

어린 자녀들아,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 그런즉 적그리스도가 오리라고 너희가 들은 바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도들이 있느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는 것을 아느니라.


지금 요한일서 2장 18절에서 이미 사도 요한이 지금 자기가 살고있는 시대에 예수님이 곧 오실거라는 전제하에 쓴 겁니다. ‘어린 자녀들아,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 그런즉 적그리스도가 오리라고 너희가 들은 바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도들이 있느니라.’ “아직 죄의 사람, 파멸의 아들, 바로 그 적그리스도, 짐승은 안 왔지만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이미 있으니까 이것이 마지막 시대다.”라는 거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는 것을 아느니라.’ 교회 시대를 살고 있던 사도 요한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생각했을 때 “아, 지금이 마지막 시대구나.” 라는 걸 안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시대가 마지막 시대에 포함되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

또한 이것을 알지니, 마지막 날들에 아주 위험한 시대들이 오리라.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들은 아주 위험한 날들이 되는 것이고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데살로니가후서 2:3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요, 그러고 나서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이때는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보는 관점은 전천년주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コメント


© 2023. BIBLE BELIEVERS all rights reserved.

  • YouTube
  • 블로그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