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 창세기 22장 8절 예언된 어린양은 누구인가?
-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3월 28일
- 20분 분량
23.10.11.

창세기 22:8 => 예언된 어린양은 누구인가?
창세기 22장 8절. 예언된 어린양은 누구인가? 참으로 중요한 구절입니다. 게일 맆링거 박사님의 ‘뉴에이지 바이블 버전’이란 책을 보면 현대 성경들과 킹제임스 성경의 차이를 보여줄 때 항상 같이 보여주는 리스트의 목록중에 하나가 이 창세기 22장 8절이에요. 왜냐하면 현대 성경들, 우리가 잘 아는 NIV,나 ESB , 또 한국에 있는 개역성경, 그외 현대 성경들을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로마 카톨릭 사본을 저본으로 번역을 일부 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과의 극명한 차이와 엄청난 내용의 차이에는 꼭 이 부분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바이블빌리버들은, 제가 바이블빌리버라 하면 킹제임스 바이블빌리버죠? 킹제임스 바이블빌리버들은 창세기 22장 8절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개역성경과 비교해 가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2:8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였더라. 그렇게 하여 그들 둘이 함께 갔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And 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KJB]
먼저 22장 8절을 보시면요.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였더라. 그렇게 하여 그들 둘이 함께 갔더라.’ 라고 돼 있습니다. 이삭이 질문을 합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provide. 이렇게 돼 있습니다.
[KJB]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표준킹제임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개역개정]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킹제임스성경에 따르면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양으로 제시할 것인데, 어떤 어린양이죠?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제시하실 것이다. 마련하실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개역성경은 의미가 다릅니다. 이(표준킹제임스)대로 이해를 하면 어마어마한 진리가 있어요.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다. 신성에 대한 강력한 구절이기도 하고 엄청난 예언 구절이죠. 지금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더 훨씬 전에 살았어요. 성경의 첫 책이 기록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성경 기록도 없을 때, 아브라함은 에언자였거든요. 하나님께서 미래를 알게 해주신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예언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그런데 개역성경대로 하면 어떻게 돼냐?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번제를 위해 쓸 어린양을 잘 준비하실것이다.” 여기에는 뭐 중의적인 뜻이 있지만, 하나님이 어린 양이 된다는 뜻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어린 양을 준비시킬 거라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와 비교해 봤을 때) 엄청난 차이가 있죠?
[KJB]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ESV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
NIV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개역개정]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왜 이렇게 개역성경이 돼 있는가? 현대 성경들, 요즘에는 미국에서 NIV보다 ESB가 더 유행합니다. ESB는‘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 양을 예비하실거다. NIV는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아예 위치를 바꿔서 재귀대명사의 강조 요법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하실 것이다 어린양을. 이렇게 한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개역성경은 짬봉입니다. 지금 himself가 두 번 들어간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를 ‘for himself’로 했고, 또 himself가 한번 더 강조가 돼서 ‘친히’가 들어갔죠. 사실 없는게 하나씩 더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어쨌든간에 개역성경은 이런 현대 성경들의 영향을 받은 겁니다. 이렇게 봤을 때 “하나님이 뭐 아무 어린양이나 그냥 준비하시는구나.”죠.
이삭➩ ”불과 장작을 보소서. 그러나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창세기 22:7]
아브라함➩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이 어린양은 그날의 이삭과 관련 있는 번제물이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이삭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불과 장작을 보소서. 그러나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모리아산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해 가는데 지금 번제물이 없어요. 장작도 있고 물도 있고 다 준비가 돼 있어요. 칼도 있고 다 있는데 번제물이 없어요. 이삭이 그렇게 질문하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죠. 결국 이삭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다가 이삭과 관련이 있다라는 것을 일단 기억해 두시면 되겠습니다.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어린양]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아브라함의 예언은 그날 성취되지 않았다!
“보라, 그의 뒤에 숫양 한 마리가 그의 뿔들이 덤불에 걸린 채 있었더라.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the ram]을 취하여 번제물로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그를 바쳤더라.” [창세기 22:13]
어린양[lamb] ≠ 숫양[ram]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개역성경을 보거나 기존 교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개역성경에 [개역개정]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뭐라고 생각을 하냐면? 그 뒤에 숫양이 발견이 되니깐 “아,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삭을 안 죽이시고 숫양을 마련해 주셨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단 틀린겁니다. 이 해석은 틀렸어요. 왜냐하면 the lamb가 아니고 the ram이기 때문입니다. the lamb가 아니죠. 무슨 말이에요? the ram은 숫양, 큰 어른 숫양이고요. 그 다음에 the lamb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과 숫양은 달라요. the ram은 장성한 숫양만 말하는 거예요. 성별만 말하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the lamb은 어린양만 말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덤불에 뿔들이 걸린 채 있었던 숫양은 아브라함이 말했던 어린 양이 아니에요. 그렇기때문에 일차적으로 그 숫양을 가르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아브라함의 예언은 바로 5분 뒤에 10분 뒤에 20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게 아니라는 거예요. 장차 먼 일을 예언한거다라는 겁니다. 하나씩 이해를 하면 되겠죠?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아브라함은 미래의 번제물이 되는 한 어린양을 예언했다!
⋅⋅⋅아브라함이 그 장소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더라. 그것은 “주의 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고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것과 같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14
그리고 아브라함은 미래의 번제물이 되는 한 어린양을 예언했다! 보세요. 이미 다 그 번제물이 드려졌어요. 이미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the ram]을 취하여 번제물로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그를 바쳤습니다. 번제물을 드린게 이미 끝났어요. 숫양을 드리고 나서 뭐라고 하냐면,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장소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더라. 그것은 “주의 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고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것과 같더라.’ 아브라함의 예언은 아직 끝난게 아니예요. ‘주의 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미래에 대해서 얘기한 겁니다. 아브라함이 예언했던 것이 그때 숫양을 번제물로 드렸을 때 끝난게 아니라 이 예언은 미래입니다.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것과 같더라.’ 모세가 이것을 썼기 때문에 몇 백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언급되고 있는 예언입니다. 아주 중요한 예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 예언이에요. 그리고 “주의 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미래형이죠? 주의 산, 성경에서 ‘주의 산’ 하면은 뭐가 될 것 같습니까? 이 뒤에서 좀 설명을 드릴께요.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아브라함은 미래의 번제물이 되는 한 어린양을 예언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표준킹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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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체에서 유일한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그래서 킹제임스성경대로 그대로 번역을 하면 어떻게 돼냐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그러면 너무나 명확해요. 하나님 자신이 어린양이 된 사건은 성경에서 단 하나밖에 없어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죠.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아브라함은 미래의 번제물이 되는 한 어린양을 예언했다!
모세의 율법등 포괄적인 제물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개역개정]
그런데 이게 만약 개역성경과 현대 성경들처럼 하면 그냥 포괄적인 제물이 되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어린 양을 마련하시면, 그냥 포괄적인 제물인 거에요. 뭐 모세의 율법에서도 어린 양을 드렸고 뭐 (구약에서) 아주 많은 어린양이 드려졌기 때문에 이런 포괄적인 제물을 말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율법이 기록되기 전에 아브라함도 그랬고 아벨도 그랬고 어린 양이 이미 많이 드려졌어요. 그래서 아주 특별할게 없는, 하나님을 위해서 드린 어린양, 그냥 일반 어린양으로, 특별할게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까지 굳이 하시는 이 중대한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고 아브라함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라고 하시는건 개역성경의 포괄적인 제물과는 차이가 있다는거죠.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아브라함은 미래의 번제물이 되는 한 어린양을 예언했다!
성경전체에서 유일한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 or 모세의 율법등 포괄적인 제물?
그래서 무엇을 예언을 했는가? 일단 그 숫양은 아니에요. 앞으로의 미래입니다. 무엇을 예언을했는가? 이 질문이 이제 우리가 어떤 성경이 맞는지를 성경으로 알아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성경내장사전
(built-in Dictionary)
⤢ 문맥 ⤡
영영사전 ⟷ 상호참조체계
(English Dictionary) (cross Reference)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특히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을 믿기 때문에, 성경을 볼 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일단 첫 번째,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잖아요? 성경은 하나하나 단어에요. 언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단어의 정의가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사전이 있어야 돼요.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뭐에요? 히브리어 헬라어 사전은 다 부패했다. 지금 현대 히브리어 헬라어 사전 다 부패했다는 것을 제가 여러번에 걸쳐서 설명을 드렸어요. 특히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서 카톨릭사본과 함께 부패했고요. 두 번째는 뭐냐면? 지금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왜?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이미 오래 전에 사어, 죽은 언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냥 여러분이 생각해 보세요. 한 번도 영어로 말도 안 해본 사람이 책만 가지고 공부했을 때 한계가 분명히 있겠죠? 요즘은 이제 영상도 개발되고 뭐 화상 통화도 하고 꼭 미국을 안 가도 미국인을 만날 수 있거나 뭐 회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죽은 언어라는 것은 고대 히브리어를 말하는 것이고, 지금 현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가 아닙니다. 지금은 죽은 언어인 고대 히브리어와 고대 코이네 헬라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어가 된 언어를 대화와 직접적인 경험과 소통 없이 책만 보고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영어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영어 십몇 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의사소통 없이 오랫동안 시간만 보내 봤자 그 수준이 한계가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이 바른 성경이라는 걸 일단 전제로 하고, 킹제임스성경의 영어를 그 당시의 영어로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영영사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죠.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삼발이처럼 다 맞춰 줘야 돼요. 그리고 성경내장사전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죠? 그 다음에 서로 연관이 되는 상호참조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다음 문맥과 함께 해석을 해야 안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근거가 있어야죠? “아,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틀렸어.” 라고 누구든지 주장은 할 수 있어요. 몇 구절 인용을 해서 나름대로 근거를 가져올 수 있어요. 그런데 한쪽이 절름발이처럼, 한쪽만 제시하고 또 부분적으로만 제시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온전한 해석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자기만의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확한 근거들이 있어야 되는데요.
KJB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표준킹제임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5형식
[개역개정]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4형식
우선 영어로 보면요. 창세기 22장 8절은 킹제임스성경 중에 굉장히 독보적인 구절이거든요, 그런데 일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 이 구절을 믿지 않고 개역성경처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을 개역성경처럼 ‘하나님께서는 번제물로 쓸 어린 양을 자신을 위해 마련하실 것이다.’ 이렇게 해석 하는 사람이 있어요. 물론 구문만 보면은 가능은 합니다.구문만 보면요.
영문법으로 분석하면 둘 다 가능!
Genesis 22:8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5형식 : 주어(S) + 동사(V) + 목적어(O) + 목적격 보어(OC)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4형식 : 주어(S) + 동사(V) + 간접목적어(IO) + 직접목적어(DC)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보세요. 쉽게 설명을 할께요. 이게 5형식, 4형식인데요. 킹제임스성경이 5형식으로 쓴 겁니다. 그런데 구문, 어법만 보거나 이 구조만 보면 4형식도 가능한 구조에요. God 주어고, will provide 마련하실 것이다. himself 자신을 4형식도 가능하죠? 그리고 5형식으로 하면, 자신을 어린 양으로. 그러면 himself는 목적어. a lamb는 목적격 보어가 되서 5형식이 되죠. 부사를 제외하고 간단하게 하면, 주어 동사 목적어 목적격보어가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가 됩니다. 그래서 형식만 보면 4형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개역성경이죠?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어린양을 준비하시리라 친히. 친히는 좀 추가가 된거라고 했죠? 그래서 4형식도 가능해요. 그러니까 구조만 가지고는 어렵겠죠? 4형식, 5형식 구조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뭐 어떤 사람은 “provide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4형식으로 쓰인 예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아 그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성경의 동사가 하나의 형식만 취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1형식 2형식 3형식… 다양하게 취해요. 그렇기 때문에 4형식으로 쓰이는게 더 많다고, 그렇게 쓰였다는 것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구문만 가지고 단정시킬 순 없어요. 가능성이 4형식, 5형식 둘 다 열려있기 때문에요.
성경내장사전
(built-in Dictionary)
⤢ 문맥 ⤡
영영사전 ⟷ 상호참조체계
(English Dictionary) (cross Reference)
그러면 문맥과 함께 성경내장사전과 상호참조체계, 이런 부분들을 봐야 되겠죠? 그러면 성경의 증거로 보겠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창세기 22:8
성경의 증거
창세기 22:8 ㅡ 상호참조체계의 증거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3: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이라. 그분께서 많은 이들에 대하여, “그리고 씨들에게”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한 명에 대하여, “그리고 너의 씨에게”라 말씀하시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라.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면요.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이라.’ 아브라함의 언약,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아브라함의 언약이죠? 그런데 그 언약을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셨다.라고 그래요.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핵심은 씨죠?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오신게 중요하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언약과도 관련된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다윗의 언약도 다윗과 그의 씨에게 언약 된 거고요. 그런데 ‘그분께서 많은 이들에 대하여, “그리고 씨들에게”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의 씨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씨들이라고 복수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한 명에 대하여, “그리고 너의 씨에게”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보면은 And to thy seed 이렇게 돼 있어요. And까지 다 들어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언약의 내용에 내가 너를 복을 주리라. 그리고 너의 씨에게… 이렇게 얘기 하셨으니까요. 아브라함에게도 복을 주고 그리고 너의 씨에게도 복을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씨는? 성경이 스스로 설명하죠. ‘이 씨는 그리스도시라.’ 그리스도이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있지만,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계속 아브라함의 언약을 얘기하셨다는 말이에요. 결국 궁극적으로는요.
창세기 22:8 ㅡ 상호참조체계의 증거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1:17-19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시련을 받았을 때 이삭을 바쳤느니라. 그리하여 그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신의 독생자를 바친 것이라. 그에 관하여 이와 같은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삭 안에서 너의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아브라함 또한 이삭을 죽은 자들로부터 하나의 모형으로 받은 것이라.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7절에서 19절 보면 창세기 22장의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이 스스로 설명하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시련을 받았을 때 이삭을 바쳤느니라.’ 그렇죠? 지금 22장 문맥입니다. ‘그리하여 그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신의 독생자를 바친 것이라.’ 영어로 only begotten son이에요. 독생자라고 말하는 대상은 성경에서 딱 둘 밖에 안 나옵니다.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예요. 지금이삭에게 (예수님과) 같은 호칭을 준거죠? 독생자를 바쳤다. only begotten son. ‘그에 관하여 이와 같은 말씀이 있었느니라.’ 실제로 이삭을 안 죽였잖아요. 그런데 믿음으로 이미 드린 거예요. ‘그에 관하여 이와 같은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삭 안에서 너의 씨가’ 아브라함의 씨가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예요. 아브라함은 자식이 이스마엘도 있었고 나중에 낳은 다른 자식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삭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받을 분으로 연결하셨어요. “이삭 안에서 너의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이게 뭐에요? 부활에 대한 믿음이에요. 지금 독생자 얘기 나왔죠? 독생자를 번제물로 바치는 내용이 나왔죠? 죽음 나오죠? 그리고 무엇이에요? 부활이 나오죠.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렇게 판단을 여겼으므로 ‘아브라함 또한 이삭을 죽은 자들로부터 하나의 모형으로 받은 것이라.’ 라고 했어요. 이삭은 죽은 자들로부터 하나의 모형으로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삭은 부활의 모형이 된겁니다. 그럼 이삭은 누구의 모형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삭은 독생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형입니다. 성경이 명확하게 말씀하시죠? 그러면 당연히 이 모형이 가르치는 원형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22:8 ㅡ 상호참조체계의 증거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5
그러고는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와 소년은 저쪽에 가서 경배를 드린 다음에 너희에게 돌아오겠노라.” 하였더라.
창세기 22장 5절 보세요. ‘그러고는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말했어요.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거하라. 그리하면’ 22장 초반 부죠? ‘나와 소년은’ 이삭을 말하죠? ‘저쪽에 가서 경배를 드린 다음에 너희에게 돌아오겠노라.”’ 돌아올 것을 믿은 거예요. 부활할 것을 믿었어요. 그래서 이삭을 진짜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왜? 하나님이 언약을 준 대상이 이삭이거든요. 이삭이 그냥 죽고 끝나면 허무하게 끝나잖아요. 이삭은 결혼도 안했고 씨도 없는데. 그렇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거예요. 그래서 부활을 해 주실거라 믿고 정말 죽일 각오로 간겁니다.
창세기 22:8 ㅡ 상호참조체계의 증거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8:53
“죽은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나이까?”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8:56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느니라. 그리하여 그가 그것을 보았고 반가워하였느니라.”
요한복음 8장 53절,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죽은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나이까?”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브라함보다 위대한 대상이 어디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느니라.’ 하셨어요. 뭐에요?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보는 것을 기뻐했다는 거예요. “나의 날을 보는 것을 기뻐했다.” ‘그리하여 그가 그것을 보았고 반가워하였느니라.” 분명히 성경은 아브라함이 어떤 날을 봤다고 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봤다라고 예수님이 컨펌을하세요. 그게 성경의 어디에 나오죠? 창세기 22장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것을 보았고 반가워하였느니라.”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사랑하는 독자”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2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제 너는 너의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너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지역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내가 너에게 알려 줄 산들 중 하나 위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치라.” 하셨느니라.
이스마엘, 짐란, 욕샨, 므단, 미디안, 이슈박, 슈아흐와 다름
22장 2절. “이제 너는 너의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너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지역으로 가라.’ 했을 때 사랑이라는 말이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사랑은 아버지가 아들을 향한 사랑이에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독자를 향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로마서 8장은 뭐라고 하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라고 말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삭은 엄밀히 말하면, 독자 only son은 아니에요. 유일한 아들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도 있었고 그 뒤에 짐란, 욕샨, 므단, 미디안, 이슈박, 슈아흐와, 다른 아들들을 나중에 더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이삭은 독자가 아니었는데, 하나님께는 언약의 아들인 이삭만 독자인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경에 많이 나와요. 전에도 말씀 드렸죠? 성경에서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린다고요.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린다 그랬습니다.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사랑하는 독자”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5
그런즉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 중 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다시 “내가 그에게 한 아버지가 되겠으며 그는 나에게 한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그런즉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 중 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라고 했어요. 지금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이 날에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하는 아들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떤 천사들에게도 내가 이날 너를 낳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독생자 입니다. 유일하게 낳으신 아들이에요. 성령님으로 잉태를 하신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유일하게 낳으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입양된 아들입니다. 거듭난 아들이에요. 우리는 태어난 아들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직접 육체로 낳으신 아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거죠. 독생자는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호칭입니다.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사랑하는 독자”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1: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시련을 받았을 때 이삭을 바쳤느니라. 그리하여 그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신의 독생자를 바친 것이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16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독생자를 바친 것이고 이것이 예표가 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독생자로 불리시죠?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사랑하는 독자”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4: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느냐? “그 여자 노예와 그녀의 아들을 쫓아내라. 이는 그 여자 노예의 아들은 그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느냐? “그 여자 노예와 그녀의 아들을 쫓아내라.’ 누구에요? 하갈이라는 여자 노예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 ‘이는 그 여자 노예의 아들은 그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상속자죠? 아브라함이 언약으로 받은 상속자는 바로 이삭인 것처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이삭, 서로 연관이 있죠?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산과 죽은 나무”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2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제 너는 너의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너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지역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내가 너에게 알려 줄 산들 중 하나 위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치라.” 하셨느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14
“주의 산(⇢시온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그리고 아주 중요한 문맥의 증거가 있습니다. 보세요. 창세기 22장 2절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모리야 지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모리야 지역에는 산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너에게 알려 줄 산들 중 하나 위에서’ 그중에 모리야 지역에 있는 산들 중에 하나 위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떤 예언을 하시냐면요? 22장 14절이죠? ““주의 산(⇢시온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주의 산속이 뭐에요? 시온산이에요. 성경에서 주의 산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은 시온산입니다. 여러분 중에 이렇게 물으실 분이 있어요. “아,무슨 소리입니까? 아직 성막도 안 만들어졌고 성전도 지어질려면 한참 남았는데, 아브라함이 주의 산이 시온산인줄 어떻게 알고 말을 합니까?” 네. 그래서 예언입니다. 제가 하나 더 증거를 보여 드릴께요. 일단은 지금 전체 문맥이 예언이죠?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예언을 했겠습니까? 그렇죠?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산과 죽은 나무”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15:17
당신께서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유산의 산속에 심으시리니, 오, 주여, 그곳은 당신께서 친히 그 안에 거하려고 조성하신 곳이요, 오, 주여, 당신의 두 손이 확고히 세우신 성소 안이니이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14
“주의 산(⇢시온산)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두 번째로 모세도 아직 카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했어요? 예언을 했습니다. 시온산에 대해서. 출애굽기 15장 17절에 ‘당신께서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유산의 산속에 심으시리니,’ 마치 나무처럼, 이스라엘은 나무로 비유가 되죠. 포도나무로 비유 될 때가 있고 무화과 나무로 비유가 될 때가 있고 또 올리브 나무로 비유될 때가 있어요. ‘오, 주여,’ 그러니까 종착을 시키면서 말씀하세요. ‘그곳은 당신께서 친히 그 안에 거하려고’ 거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산은. ‘조성하신 곳이요, 오, 주여, 당신의 두 손이 확고히 세우신 성소 안이니이다.’라고 했어요. 성소라고 불리고, 산 속에 있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그렇죠?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 그 곳이 바로 시온산입니다. 성전이 지어질 시온산이죠.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아직 이스라엘에 들어가기도 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브라함,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예언자들도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이 시온산에서 지금 하나님이 어린 양이 되시는 그 장면을 얘기하시는데 시온산, 주의 산속에서 무엇이 보여지나요? ‘그것이 보여지리라.”’ 자기가 예언한 일이 보여질 거라고 정확한 특정을 해요. 보세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밖에서, 이렇게 도성 밖에서, 진영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어요. 그렇지만 멀리 떨어진 건 아닙니다. 시온산에서 보이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갈보리라는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어요. 그래서 주의 산 속에서 보이는 거예요. 제가 이스라엘에 가봤지만 이스라엘은 여러 언덕 또는 산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어요. (시온산은) 그 중에 하나인데 보입니다. 아주 가까워요. 아주 가까운 곳이에요. 그래서 주의 산 속에서 그것이 보여지는 일이 일어날 거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당연히 그냥 아무 제물이 아니겠죠. 왜냐하면 율법의 제물은 주의 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지 주의 산 속에서 보여지는게 아니죠.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산과 죽은 나무”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4
그때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두 눈을 들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장소를 바라보았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23:33
이윽고 그들이 갈보라라고 불리는 곳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서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흉악범들을 한 명은 오른편에 다른 한 명은 왼편에 못 박았더라.
그래서 창세기 2장 4절을 보면 ‘그때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두 눈을 들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장소를 바라보았더라.’ 누가복음 23장 33절 보세요. ‘이윽고 그들이 갈보라라고 불리는 곳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언덕이죠? ’거기에서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시온에서 아주 가까운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산과 죽은 나무”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6
그런 다음에 아브라함은 번제물에 사용할 장작[wood]을 취하여 그것을 자기 아들 이삭 위에 지웠더라. 그런 뒤에 그는 자기 손에 불을 들고, 단도 한 자루를 들었더라. 그리고 그들 둘이 함께 갔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9:17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십자가(⇢죽은 나무)를 짊어진 채 해골의 장소라 불리는 곳으로 나가셨는데,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 불리는 곳이었더라.
그리고 보세요. 얼마나 큰 연관성이 있는지? 창세기 22장 6절 ‘그런 다음에 아브라함은 번제물에 사용할 장작[wood]을 취하여’ 장작이 뭐에요? 영어로 wood에요. 죽은 나무입니다. 나무를 취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무는 중의적인 뜻이 있죠. 살아 있는 나무도 되고 죽은 나무도 돼요. 그런데 영어로는 tree가 있고 wood가 있어요. 그러면 번제물에 사용될 땐 장작이 되겠죠. 건축을 할 때는 목재가 되겠죠. 그것은 죽은 나무에요. 십자가는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죽은 나무로 만들어진 거예요. 예수님은 거기서 죽으셨어요. 예수님께서는 결국 자기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신 거에요. 이삭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창세기 22:8 ㅡ 문맥의 증거 “산과 죽은 나무”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22:6
그런 다음에 아브라함은 번제물에 사용할 장작[wood]을 취하여 그것을 자기 아들 이삭 위에 지웠더라. 그런 뒤에 그는 자기 손에 불을 들고, 단도 한 자루를 들었더라. 그리고 그들 둘이 함께 갔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9:34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더니⋅⋅⋅피와 물이 나왔더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9:28
“내가 목마르다.”
장작을 취하여 이삭에게 짐지운 뒤 아버지 아브라함은 뭐를 들었어요. ‘자기 손에 불을 들고, 단도 한 자루를 들었더라.’ 블과 단도를 들고 함께 가는 거에요.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허락하실 때, 진노의 잔을 허락하셨고 결국 십자가에서 지옥의 고통을 받도록 허락을 하신 거예요. 하나님과 단절되는 고통을요. 삼위일체로서는 단절되지 않았지만 인간으로서는 단절되는 고통을 겪게 하셨어요. 그리고 실제로 찔려서 죽게 하셨죠.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더니⋅⋅⋅피와 물이 나왔더라.”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제로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 이렇게 하셨죠. 예수님은 지옥의 고통을 우리를 대신해서 감당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2:8
교리적 뒷받침
마지막으로 교리적 뒷받침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 자체였다.
보세요.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마련하신다. 결국 하나님이 바로 그 어린양 자체라는 거예요. 그렇죠? 성경은 그것을 지지합니까? 네, 지지해요. 정확하게 입증합니다. 이 어린양이 그냥 아무 어린 양 중 하나입니까? 아니에요. 하나님 그 자체 였어요. 성경이 입증합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3:16
또한 경건의 신비는 논란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로 명백하게 나타나셨고, 성령안에서 정당함을 입증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셨으며, 세상속에서 믿어지셨고, 영광 속으로 들리어 영접받으셨도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 ‘하나님께서는 육체로 명백하게 나타나셨고,’ 누구에요?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안에서 정당함을 입증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셨으며, 세상속에서 믿어지셨고, 영광 속으로 들리어 영접받으셨도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도행전 20:28
그러므로 너희 자신에게 주의하고 양 무리에게도 주의하라. 성령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시려고 양 무리 위에 감독자들로 삼으셨으니, 그분께서는 자기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자신의 교회를 얻으셨느니라.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성령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시려고’ feed, 먹이게 하시는 거죠. 돌보게 하는게 아닙니다. ‘먹이게 하시려고 양 무리 위에 감독자들로 삼으셨으니, 그분께서는 자기 자신의 피로’ his own blood,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자신의 교회를 얻으셨느니라.’고 했어요. 교회는 누구의 교회에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 정식 명칭이 하나님의 교회죠. 그렇죠?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의 교회라 불립니다. 그리고 누구의 피죠? 하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시려고 그분께서는 자기 자신의 피로 자신의 교회를 사신 거예요. 그 어린양은 누구시죠? 하나님이십니다. 이 엄청난 신성. 이 어린양이 하나님이시라는 거. 이 신성을 입증하는 구절이, 그것도 놀라운 예언, 성경은 놀라운 예언의 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구절이 뭐에요? (창세기 22장 8절.) 그 구절에서 아브라함이 말했던 것은 뭐에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몇 백년 동안, 아니, 몇백년이 아니죠. 천 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 회자된 구절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구절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숨길 수 없는 구절입니다. 그냥 구석에 혼자 몰래 적어놓고 천년 동안 안 보이다가 발견된게 아니에요. 천 몇백 년 동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년 매일 읽었던 구절입니다. 그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린 양으로 오실 거라는 것을 얘기하신 겁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5: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며 이 세 분은 하나이시기 때문이라.
성경은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며 이 세 분은 하나’, 이 셋은 하나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시죠.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5:6
이어서 내가 보았더니, 보라, 그 보좌와 그 네 짐승들과 그 장로들 한가운데 도살당했던 것 같은 한 어린양[a Lamb]이 서 계셨고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이 있으셨는데, 일곱 눈들은 온 땅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
그래서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보면 보좌가 보입니다. 그 보좌가 보이는 데 그 보좌는 하나에요. 보좌 주위에는 네 짐승들과 24장로들이 있는데 ‘그 장로들 한가운데 도살당했던 것 같은 한 어린양[a Lamb]이 서 계셨고’ 어떤 어린 양이죠? 도살 당했던 거 같은 한 어린양. 예수님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으로 성경에서 비유 하시죠? slain이란 뜻이에요. 그냥 죽임 당하신게 아니에요. 도살 당했던 것 같은 한 어린양입니다. 그런데 여기 킹제임스성경에서 어떻게 돼 있어요? Lamb. 일반 작은 소문자 lamb이 아니에요. 신성을 부여하는 대문자 Lamb입니다. 보세요.영어에서는 원래 대문자가 들어가는 것에서는 a를 안 붙여요. 일반적으로 대문자 Lord 또는 대문자 God, 대문자 Lamb에는 원래 a가 들어갈 수 없어요. 그런데 이때는 아주 특별한 이유로 a가 들어간 겁니다. 다른 것과 분리가 되거나 다른것과 구별되는 바로 특정한 그 하나라는 거예요. ‘유일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오히려 역으로 the와 같은거죠. 그래서 이 어린양은 보통의 다른 어린 양들이 아닌, 바로 그 어린 양을 말할 때 a Lamb 이라고 합니다. 전에 제가 이 부정 관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었죠? ‘도살당했던 것 같은 한 어린양[a Lamb]이 서 계셨고’ 그럼 이분은 누구에요? 예수님이십니다.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2:2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 자신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수치를 멸시하시며 십자가를 견디셨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잘 알죠? 십자가를 견디시고 어떻게 됐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 편이 앉게 됐는데요. 보좌가 두 개가 있어서 양쪽에 앉은게 아니에요. 하나의 보좌에 같이 앉으셨는데 오른편에 앉은 겁니다. 그러니까 저기 셋째 하늘에는 보좌가 하나 밖에 없어요.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 앉아 계시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이시고 그 도살 당했던 것같은 어린양입니다. 아주 중요한 예언입니다. 성경에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관통하는 중요한 계시이고 예언입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표준킹제임스성경] 빌립보서 2:6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기에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강탈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기에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강탈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죠.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아벨의 어린양 ➨ 어린양 예수님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4:4
또한 아벨 자신도 자기 양 떼의 첫배 새끼들 중에서와⋅⋅⋅가져왔더라. 이에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존중하셨더라.
여기 한번 보세요. 창세기 4장 4절. 성경에서 보면은 어린양이 나올 때마다, 뭐의 예표예요? 아벨의 어린 양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예요. 유월절 어린양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성막의 어린양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예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어린양들이 다 뭐의 예표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창세기 22:8 ㅡ 교리적 뒷받침
창세기 22:8의 어린양만 예외라는 것은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벗어난 해석!
그런데 왜 창세기 22장만 예수님과 연관이 없겠어요? 당연히 예수님이죠. 그럼 예수님과 연관이 있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입니까? 아닙니까? 그냥 하나님을 위한 어린양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 어린양이 예수님이라면 이분은 하나님이세요. 그것이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에요.
오랜 바이블 빌리버들의 믿음과 성령님의 계시
(그림1,2)
그래서 수많은 바이블빌리버들이 뭐 예전부터도 창세기 22장을 보고, 이걸 이해하고 같이 연관을 시킨 거예요, 이 당시의 내용을 이렇게 연관을 시켰습니다. 이게 그냥 갑자기 킹제임스성경에서 만들어진게 아니에요. 최근에도 뭐 마찬가지고요.
오랜 바이블 빌리버들의 믿음과 성령님의 계시
(히브리어)~~~~~~~~~~~~~~~~~~
God will provide Himself the lamb for a burnt-offering.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위하여 자신을 어린양으로 마련하시리라.
히브리어 성경비교
맛소라원문 [히브리어]
유대 출판 협회 (영어)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s 1917 edition of the Hebrew Bible in English: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래요. “아, 히브리어는 안 그렇습니다.” 누가 그래요? 히브리어를 읽지도 못하는 분들이 그런 말에 속고 있어요. 아니에요. 자 보세요. 출처가 히브리어 성경 비교, 맛소라 원문[히브리어], 유대 출판 협회에서 맛소라 원문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번역을 한 거예요.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을 한겁니다. 히브리어 창세기 22장 8절을 가지고 영어로 어떻게 번역을 해놨습니까? God will provide Himself the lamb for a burnt-offering. 라고 해놨죠? 뭐에요?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구조입니다. NIV나 ESB의 구조로 한게 아니에요. 그 구조는 무조건 ‘자신을 위하여’ 로 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은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구조란 말이에요.
오랜 바이블 빌리버들의 믿음과 성령님의 계시
This is also the reading found in Lamsa’s translation of the Syriac Peshitta. It readsㅡ
“And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himself the lamb for a burnt-offering, my son.”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위하여 자신을 어린양으로 마련하시리라.
시리아 페쉬타 [시리아어]
람사 역본 [영어]
✔시리아 페쉬타는 적어도 2세기 역본
✔가장 오래된 번역 성경 중 하나
뿐만 아닙니다. 성경의 가장 초기에 번역본이라면 시리아 페쉬타라고 할 수 있죠. 특히 구약이죠.
2세기의 역본입니다. 가장 오래된 번역 성경 중에 하나인데요. 이 시리아 페쉬타를 번역한 것이 람사 바이블, 람사 translation 역본이에요. 거기서 뭐라고 하냐면 ‘And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himself the lamb for a burnt-offering, my son.’ 킹제임스성경과 동일한 형태입니다.
오랜 바이블 빌리버들의 믿음과 성령님의 계시
“Y respondio Abraham: Dios SE proveera de cordero para el holocausto, hijo mio. E iban juntos.” SE - reflexive verb.
God will provide HIMSELF as a lamb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양으로서 마련하시리라.
레이나 발레라 [1909, 1960]
[2010 Reina Valera Gomez Bible]
✔스페인어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
바른 계열의 원문에서 나온 성경 중에 가장 유명한 성경 중에 하나가 스페인어 성경이죠. 독일어 루터 성경과 함께요. 그런데 이 레이나 발레라를 보면요. 제가 스페인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요. 제가 하나 아는 것은 여기에 SE라는 동사, 이게 뭐냐면요? proveera가 provide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양으로서 마련하시리라는 걸 강조한 동사입니다. 심지어는 최근에 바이블빌리버들이 이 레이나 발레라를 킹제임스성경과 일치시키는 성경 역본을 냈는데 그게 레이나 발레라 고메즈 바이블입니다. 2010년도 초기에 나왔고 다시 재판이 나왔는데요. 칙 출판사에서도 판매를 하고 바이블 뱁티스트 북 펜사콜라에서도 판매를 합니다. 이것도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구조예요.
Genesis 22:8 And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himself a victim for an holocaust, my son. So they went on together.
하나님께서 번제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물로 마련하시리라.
[듀에이 림즈 성경- 카톨릭 전통 영어 성경]
Douay-Rheims 1899 American Edition
심지어는요. 이게 뭔지 아십니까? 카톨릭 듀에이 림즈 성경입니다.1900년도 되기 전에 1899년에 있었던 듀에이 림즈 성경은 어떻게 돼 있냐? ‘God will provide himself a victim for an holocaust,’ 번역을 굉장히 이상하게 섬뜩하게 해놨어요. 대학살의 희생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학살의 희생자가 되게 하실거다. 이렇게 해놨는데 어쨌든 형태는 뭐에요? 5형식이 가능한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형태예요. 그런데 누가 1900년도 이후에 5형식이 가능한 형태를 4형식, 3형식 밖에 안 되게 뒤집어 버렸나요?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놨나요? 현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원래부터 성경이 (창세기 22장 8절의) 계시를 이스라엘에게 계속 준 거예요. 그리고 우리 바이블빌리버들에게도 준 거예요. 그래서 이 계시가 킹제임스성경에 보존되어 있는 진리입니다. 이게 바로 예언의 영이 살아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소위 킹제임스성경이라고 하면서 이 구절을 현대 성경을 따라서 한다면 킹제임스성경이 영감으로 주어진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킹제임스성경에 보존하셨고 또 영감으로 보존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거죠.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Genesis 22:8]
“하나님게서 자신을 번제물을 위한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ESV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번제물로 마련하시리라.
NIV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하나님께서 친히 어린양을 번제물로 마련하시리라.
여러분의 성경은 현대 카톨릭 사본을 따라간 성경입니까? 아니면 킹제임스성경을 그대로 한 성경입니까? 우리는 누가 얘기해도 창세기 22장 8절의 성경 구절의 예언의 계시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에게 설명을 해줄 주 있고 우리가 그런 이유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다는 것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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