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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제2법칙 문맥의 법칙

  • 작성자 사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3월 14일
  • 2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3월 28일

24.03.13.







성경해석학 제2법칙 <문맥의 법칙)


오늘은 두 번째로 성경해석학 제 2법칙 <문맥의 법칙>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룬 문자적 해석의 법칙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 문자적 해석이 벗어나면 사사로운 해석이 되는 아주 중요한 법칙이었습니다. 오늘 다룰 제 2법칙 문맥의 법칙 또한 아주 중요한 근원적인 법칙입니다. 특히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학기에는 성경 해석학 강의를 15가지 법칙을 가지고 진행하는데 사실 20개 정도로 더 늘려서 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15가지 핵심 법칙들을 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혹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해석학 법칙들이 선정이 되는 겁니까?” 그 질문에 제가 이렇게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예를들면, 자연 법칙 중에 관성의 법칙 같은게 있죠?


법칙

<관성의 법칙>

물체의 질량 중심은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다 못하더라도, 쉽게 말하자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 안에 있던 사람이 오(가)던 힘에 의해서 튕겨 나가겠죠? 이게 관성의 법칙입니다. 100번 실험해도 100번 다 (똑같이) 이루어지는 거란 말이죠. 그런 것을 우리가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이 만든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정부의 법 또는 인간의 법은 사람이 만들어요. 헌법은 각 국가에서 인간이 만들고 수정도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인간이 만들지 않습니다. 인간은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어떤 질서를 통해서 (모든 것을) 움직이시거든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든 음악을 못하는 사람이든 결국 7개의 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도레미파솔라시” 여기서 반음을 높이든 낮추든 이 7개의 음계에서 다 이루어집니다. 그 어떤 천재라도 결국은 7개의 음계 안에서 하게 돼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법칙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이미 성경에 주어져 있는 그 법칙을 발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통해서 성경의 법칙을 발견해 나가는 거죠. 신 구약이 완성된 후 약 2천년 동안 성경 해석의 법칙은 계속해서 증명되어 왔어요. 그리고 발견되어 왔어요. 그것의 집약체를 제가 알려 드리는 겁니다.

 

법칙

<열역학 제2법칙>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하며 감소하지 않는다.

                         엔트로피 증가

잘 정렬된 상태 ===========> 무질서한 상태

*엔트로피 : 무질서도

 

또 예를 들면, 열역학 제 2법칙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하며 감소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진화론을 반증할 때 쓰는 법칙 중의 하나죠. 진화론은 이와 거꾸로(반대)잖아요? 열역학 제 2법칙은 잘 정련된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진화론은 무질서하게 퍼져 있던 것이 갑자기 스스로 조립이 되고 스스로 맞춰져서 인간같이 고등생물이 된다는 거죠. 그런 경우는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새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파괴되고 낡아지고 없어지고 무질서로 가는 것만 봐왔지, 무질서에서 질서(잘 정련된 상태)로 가는 것은 보지 않아요.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법칙을 발견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법칙의 이름을 인간이 붙일 수는 있죠.


법칙

<관성의 법칙>   <열역학 제2법칙>

 자연 법칙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을 발견할 뿐이다. 성경해석학의 법칙들도 질서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을 발견할 뿐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뭐예요? 하나님께서는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다.우리가 이것을 믿기 때문이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거죠. 그러면 “아, 정말 이런 법칙들이 중요하구나.” 라는 것이 여러번 증명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해석) 법칙의 이름을 만들고 나면 누가 어떻게 실험을 해도 그런 식으로 증명이 되는 거죠. 

성경해석학 제2법칙 <문맥의 법칙>

The Law of Context

성경은 반드시 문맥과 함께 해석해야 한다. 성경 구절을 문맥과 분리시키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뜻도 만들 수 있다.

The Scripture must be interpreted with the context. Once a verse is separated from its context, you can make it mean anything you want.

 

오늘 성경해석학 제2법칙 문맥의 법칙은 아주 중요한 법칙인데 ‘성경은 반드시 문맥과 함께 해석해야 한다. 성경 구절을 문맥과 분리시키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뜻도 만들 수 있다.’ 라는 거예요. 오늘 이게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왜 기독교계에 그렇게 많은 이단, 수많은 종파들이 나오는가? 이 문제예요. 보통은 기본적으로 건전하게 해석하는 곳일 수록 잘못된 교리가 적겠죠. 전통적으로 올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각 종파마다 좀 독특하게 잘못 해석하는 부분들이 다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단 사이비들은 특히 교주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예 플랜을 짜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더 (심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버리면 어떻게 정교하게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이비들의 크기(규모)가 달라집니다. 결국은 그것 또한 시간이 지나고 그 교주가 죽으면 약화 됩니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문맥과 함께 보면 그 해석들이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성경 해석의 세 가지 열쇠가 있으니, 문맥과 문맥과 문맥이다.”

The three laws of Biblical interpretation are context, Context, CONTEXT!”

 

문맥(Context)은 본문(Text) 주변의 구절들을 말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세 가지 열쇠가 있으니, 문맥과 문맥과 문맥이다.” 영어는 이제 대문자로 강조를 할 수 있으니까 좋죠. 처음에는 소문자로 문맥, 그 다음은 첫 글자만 대문자로 문맥, 나중에는 전부 다 대문자로 문맥, 이렇게 강조를 할 수 있는 거죠.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영어로 문맥은 Context, 본문은 Text 이고요. con- 이란 말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connect, company처럼 함께 있고 연결되어 있다라는 뜻인데, 내가 보고자 하는 본문(Text)과 연결되어 있는 주변 구절들을 문맥(Context)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맥에서 분리된 본문은 변명에 불과하다.”

A text without a context is a pretext.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성경을 문맥과 분리시키는 심리

 

자신의 주장을 옳다고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함

성경 < 자기 생각

 

“문맥에서 분리된 본문은 변명에 불과하다.”

A text without a context is a pretext.

 

그런데 왜 성경을 문맥과 분리를 시키려고 하느냐? 인간이 선택해서 분리를 시키는 거에요. 하나님은 분명히 문맥과 함께 주셨는데 말이에요. 우리에게 성경을 하나님께서 한 권의 책으로 주셨다는 것은, 문맥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인간이 선택적으로 어떤 구절을 떼서, 선택적으로 분리를 시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자신의 주장을 옳다고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에요. 즉 자기 생각이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성경 구절을 문맥과 분리시키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뜻도 만들 수 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에스겔서 14:4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에서 자기 마음속에 자기 우상들을 세워 두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기 죄악의 장애물을 자기 얼굴 앞에 둔 채로 예언자에게 나아오는 모든 개개인, 그 나아오는 자에게 나 주가 그의 우상들의 허다한 수에 따라 응답하겠노라.

 

그래서 에스겔서 14장 4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그런 자들에게 그렇게 잘못 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얘기를 하세요.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에서 자기 마음속에 자기 우상들을 세워 두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에 우상을 세워 놨어요. 자기가 원하는 우상을, 하나님보다 더 원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게 아니라 마음속에 자기 우상들을, 즉 자기가 원하는 거를 세워 놓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기 죄악의 장애물을 자기 얼굴 앞에 둔 채로자기가 원하는 그 욕망, 그 죄악의 장애물들을 치우고 회개하고 하나님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놔두고  ‘예언자에게 나아오는 모든 개개인, 그 나아오는 자에게 나 주가 그의 우상들의 허다한 수에 따라 응답하겠노라. 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그의 우상들의 허다한 수에 따라, 우상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수에 따라 내가 거기에 맞춰서 각각 대답해 주겠다라고 하신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은 농락 당하지 않으신다는 거에요. 내가 우상을 가지고 가면 그 우상에 따라 대답해 주신다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은 자기의 핑계거리가 생긴 거죠. “아, (아, 하나님이 대답해 주시니까) 이게 맞구나.” 하고 나아가 버리면 멸망을 향해 가는 겁니다. 빛을 향해서 생명을 향해 가는게 아니라 멸망을 향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자기 객관화가 너무 중요해요. 모든 학문도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겠지만 성경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라 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자기 뜻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겁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게 “자기 부인” 입니다. 즉, 자기는 죽어야 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되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잠언 9:17

“도둑질한 물들이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맛있도다.”

 

도둑 => 역시 성경은 진리야.

 

예를 들면 잠언 9장 17절 보면 “도둑질한 물들이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맛있도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 구절을 문맥과 따로 떼서 보면 어떻게 돼요? 제가 자주 드는 예인데 “아, 역시 도둑질하는게 맛있구나.”  “도둑질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겠죠?  “성경은 진리야” 하면서 도둑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겠죠? 그러나 문맥을 보면 


성경 해석의 열쇠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잠언 9:13-18

13 어리석은 여자는 야단스러우니라. 그녀는 우매하여 아무것도 모르느니라. 14 이는 그녀가 ⋅⋅⋅15 자기 길들을 바르게 하는 행인들을 불러 말하기를, 16 “우매한 자는 누구나 여기로 돌이킬지어다.” 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명철이 부족한 자로 말하자면 그녀가 그에게 말하기를, 17 “도둑질한 물들이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맛있도다.” 하느니라. 18 그러나 그는 죽은 자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느니라, 그런즉 그녀의 객들은 지옥의 깊은 곳들 속에 있느니라.


그러나 문맥을 보면  이것은 어리석은 여자가 우매한 자에게 하는 말이에요. 그 여자의 말을 따라가면 ‘그러나 그는 죽은 자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느니라, 그런즉 그녀의 객들은 지옥의 깊은 곳들 속에 있느니라.’ 이 말은 듣고 따라가면 그 결과는 잘못된다, 멸망을 향해 간다라는 예시일 뿐이지 (도둑질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문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또 하나 예시를 보면요.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7:34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자 너희가 말하기를 “보라 탐식하는 사람이요, 과음하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술 마시는 사람들 => 예수님도 과음하셨으니까 나도 괜찮아!


“아, 예수님이 그냥 술을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과음도 하시니까 나도 괜찮다. 야, 술 실컷 마시자.” 이렇게 예수님도 ‘과음하는 자’라고 주장을 한다면 잘못된 거죠. 문맥을 보면 이것은 거짓 고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7:33-34

33 이는 침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도 마시지 아니하자 너희가 말하기를 ‘ 1)그는 한 마귀에 들려 있도다. 하기 때문이라. 34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자 2)너희가 말하기를보라, 탐식하는 사람이요, 과음하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1)대적들이 하는 말    2)모두 거짓 비난            

 

33절 보면,이는 침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도 마시지 아니하자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한 마귀에 들려 있도다. 하기 때문이라.’ 침례자 요한이 마귀에 들렸던 사람인가요?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거짓 고소 했잖아? ‘너희가’ 누구에요? 대적들아죠. 하나님의 대적들, 예수님의 대적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자 너희가 말하기를 “보라, 탐식하는 사람이요, 과음하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맞는 말이 없어요. 예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그 접점을 만드신 거지 정말 같이 어울려서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과음하고 파티를 즐겼던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예수님이 술 마셨다 라고 하면 틀린 주장이 됩니다. 왜냐면 이것은 대적들이 예수님을 비꼬면서 거짓말로 고소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아주 재밌는 것들을 몇 개 보여 드릴게요. 지금 이 자리에 결혼 안 하신 분들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아내를 얻는 법을 말하는 구절이 여러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비성경적인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성경 해석의 열쇠

성경에서 등장하는 비성경적인 결혼 방법들

 

1) 창녀를 찾아 결혼하라. [호세아]

[호세아 1:1-3] 

 

첫번 째,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만 말씀하셨어요. ‘창녀를 찾아 결혼하라.’ 이 구절만 딱 떼서 보면 “아, 하나님이 나보고 창녀를 찾아서 결혼하라는가 보다.” 물론 이렇게 적용하면 안되겠죠? 이것은 아주 특별하게 호세아에게 주신 명령이였어요. 왜냐면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했는데도 창녀같이 간음한 여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직접 예언자를 통해서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창녀랑 결혼하라고 하신 특별한 경우였어요. 하나님의 심정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호세야에게만 예외적으로 한 말씀인데 주변 문맥을 보지않고 나에게 적용해서 “아, 내가 창녀촌에 가서 한 명 골라서 결혼해야겠다.” 이러면 비성경적인 방법이 되겠죠.


2) 원하는 여자를 납치해서 네 아내로 만들어라. [베냐민 지파]

[사사기 21:19-25] 

 

두번 째, 베냐민 지파가 사사기 21장에서 보면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나머지 열한 지파랑 싸우고 거의 망하게 된 거예요. 여자들이 지금 다 없어지게 되니까 자기들 멋대로 솔루션(해결책을) 내서 “그러면 원하는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해라.” 한 거에요. 그런데 25절 문맥에서 뭐라고 해요?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니,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두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옳은 대로 한게 아니라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한 거예요. 잘못된 예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면 지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옥 가겠죠. 이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지만 그래도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범죄자 중에서 이 구절만 딱 떼서 누군가를 납치해서 결혼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을 제가 봤어요.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죠. 뉴스에도 크게 났어요.

 

3) 갈비뼈 하나를 하나님께 바치고 아내를 얻으라. [아담]

[창세기 2 :19-24]

 

세번째, 아담에게만 특별한 경우에 그렇게 하신 거죠. 지금 갈비뼈 하나를 떼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아내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4) 미래의 장인이 될 사람의 원수 200명을 죽이고 표피를 자르라. [다윗] 

[사무엘기상 18:27

 

네번째, 다윗이 첫 아내를 얻었던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울이 요구를 한 것입니다. 그 당시 다윗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이었어요. 지금 아내를 얻으려고 장인 어른의 원수 200명을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죠.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5) 미인대회를 열고 원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으라.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루스]

[에스더기 2:3-4]

 

다섯번 째,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루스가 에스더서에서 그렇게 했죠? 이걸 보고 ‘아,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이것도 비성경적인 방법이죠.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할 것 없이 그냥 1,000명이랑 결혼할래! [솔로몬]

[열왕기상 11:3]


[표준킹제임스성경] 열왕기상 11:3

그리하여 그가 칠백 명의 아내들을 빈들로 두었고 삼백 명의 후궁들을 두었더라⋅⋅⋅

 

마지막으로,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할 것 없이 그냥 1000명이랑 결혼하자.” 솔로몬을 예시로 삼으면 안되겠죠? 이것이 좋은게 아니었어요. 결국 솔로몬은 아내들로 인해서 우상숭배를 하게 됐죠. 제가 마지막에 넣은 것은 그냥 웃자고 하나의 예시로 넣어 봤어요. 이렇게 자기 욕망대로 이용하고자 하면 성경의 어떤 구절이라도 다 문맥에서 벗어난 적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나오는 것이고 수많은 교주들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이 적어도 문자적 해석의 법칙과 문맥의 법칙만이라도 분명히 알고 잘 이해만 한다면 이런 잘못 된 해석에 빠지거나 잘못된 해석을 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첫 두 가지 법칙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성경을 문맥과 분리시키는 심리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함

성경 < 자기생각

 

문맥을 고려하면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파악하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맞추는 것

자기생각 성경

 

성경을 문맥과 분리시키는 심리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자기가 원하는 구절만 문맥과 분리해서 이용을 하는 거라고 했고요. 이와 반대로 문맥을 고려하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파악하고 성경에 자기 생각을 맞추는 거예요. “아, 내 생각이 잘못 됐으면 버려야겠다.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하는 것이 성경을 더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성경해석학 제2법칙

biblical hermeneutics

<문맥의 법칙>


케이스 스터디

문맥의 법칙을 지키지 않은 해석으로 교리가 틀어진 사례들

 

그래서 케이스 스터디로, 실제로 기독교계에 일반적으로 잘못 해석되어지는 것을 예시로 보면서 왜 잘못됐는지? 성경의 문맥은 뭐라고 하는지? 한번 직접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그 방법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원문주의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잘못된 해석의 예 - 원문주의자

“최초의 원본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집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이 대표적인 경우예요.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이 구절이죠. 성경에서 영감이 딱 두 번 나오는데 신약에서는 여기가 유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주어진다. 맞죠? 그런데 이 구절을 어떤 교파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최초의 원본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집니다.” 심지어는 어떤 주장을 하냐면,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is는 현재형이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과거형(were)으로 해석해서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해서 이미 주어졌고 끝났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디모데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신약이 아직 완성이 안 됐기 때문에 구약성경만 영감 받았다.”” 진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제가 최근에 봤어요. 그것도 “최초의 구약성경 원본만 영감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영감으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요.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문맥으로 확인해 보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원문주의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5-16  

15 그리고 아이일 때부터 너는 성경의 거룩한 기록들 [the holy scriptures]을 알았으니,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바로 앞에 있는 있는 15절,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거죠? ‘그리고 아이일 때부터 너는 성경의 거룩한 기록들 [the holy scriptures]을 알았으니,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밑줄 친 성경의 거룩한 기록들은 16절에 있는 ‘모든 성경 기록’이죠? 이 scriptures가 바로 16절에도 나오잖아요? 그렇죠? 그럼 디모데가 원본을 어릴 때부터 알았나요? 디모데 시점에서 모세가 1500년 전에 쓴 그 원본을 디모데가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요? 디모데에게는 모세의 원본은 없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무도 모세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원문주의자들은 원본만 영감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거예요.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 줄 아세요? “지금은 영감 받은 성경이 없기 때문에 100% 완벽한 건 없다. 지금은 다 오류있는 성경들이고 다 번역본일 뿐이다. 어떤 성경이든 봐도 괜찮다. 내가 해석해 줄께, 어떤게 맞고 어떤게 틀린지 내가 결정 해줄게.” 하면서 인간이 개입하려는 거예요. 그것이 카톨릭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내리면 자기들의 권위를 높이는 거에요. 그것이 항상 카톨릭의 방식이었어요. 그러나 시편 138편 2절의 말씀 ‘이는 당신께서 당신의 모든 이름 위에 당신의 말씀을 드높이셨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이름 위에 높이셨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높이시는 만큼 우리도 말씀을 높여야 돼요. 인간의 권위 밑에 성경을 내려선 안됩니다. 반드시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이기 때문에 사람 위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봤던 성경 기록은 당연히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었습니다. (디모데 당시에) 원본이 있을 수가 없어요.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원문주의

 

[표준킹제임스성경] 신명기 17:18-19

18 그리고 그가 자신의 왕국의 보좌 위에 앉을 때 이러한 일이 있어야 하리니, 그는 레위인들인 제사장들 앞에 있는 율법에서 이 율법의 한 사본을 한 권의 책 안에 필사하여 자신에게 둘지니라.

19 그러고 나서 그 사본은 그의 곁에 있어야 하리라. 그런즉 그는 자신의 생애의 모든 날들 동안 그 안에 있는 것을 읽을지니, 그로 하여금 주 그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 이 율법과 이 규례들의 모든 말씀들을 지키고 그것들을 실행하게 하려 함이요.

 

하나님께서는 필사본에 대해서 이미 신명기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율법은 계속 사본을 만들어서 전달, 전달해야 되었고 특히 왕은 따로 자기가 직접 필사해서 옆에 두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을 위해서도 계속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레위 지파가 평생동안 하는 일이 필사하는 일이었어요. 서기관들이 그 역할을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말씀이 계속 필사되고⋅⋅⋅필사되고 ⋅⋅⋅필사되어서 보존되어 왔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원문주의

✔ 원본이 아닌 사본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4:16,21

16 이후에 그분께서 자신이 양육된 곳인 나사렛에 오셔서 자신의 관례대로 친히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으며 낭독하기 위하여 서셨더라⋅⋅⋅

21그러자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기를, “이 성경 기록[this scripture]이 이날 너희의 귀에 성취되었느니라.” 하셨느니라.

 

누가복음 4장 16절, 21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후에 그분께서 자신이 양육된 곳인 나사렛에 오셔서 자신의 관례대로 친히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으며 낭독하기 위하여 서셨더라’ 원래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성경을 읽잖아요? 그래서 예수님도 성경을 읽으셨어요. ‘그러자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기를, “이 성경 기록[this scripture]이 이날 너희의 귀에 성취되었느니라.”’ 예수님이  나사렛이라는 시골 중의 시골 회당에서 성경 기록을 읽으셨는데 “이 성경 기록이 지금 이루어졌다.” 라고 하신 거예요. 그럼 이게 원본입니까?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읽으셨는데, 그때 이사야서 원본이 나사렛에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 당시 신약시대에는 이사야서 원본은 없습니다. 이미 수백년이 지났기 때문에 당연히 필사본들만 남아 있는 거죠. 이 필사본을 지금 예수님이 성경 기록이라고 하신 겁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원문주의

✔ 원본이 아닌 사본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5:39

성경 기록들[the scriptures]을 찾아보라. 이는 너희가 그것들 안에 영생이 있다고 너희가 생각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성경 기록들은 나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라.

 

또 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성경 기록들[the scriptures]을 찾아보라. 이는 너희가 그것들 안에 영생이 있다고 너희가 생각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성경 기록들은 나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라.’ “찾아봐라.” 하셨는데 “주님, 원본은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못 찾겠습니다.” 만약에 성경 기록이 원본에만 국한된다면, (제자들은) 지금 하나님 명령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거에요. 원본이 아니죠? 하나님께는 원본이라는 종이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 말씀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5장 39절에 ‘성경 기록들이 있는 필사본도) 동일한 성경 기록이죠. 그런데도 원본에만 하나님의 영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저의는 뭐냐? 그들은 “지금은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면 결국 지금은 완벽한 성경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성경을 보존하실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지도 않다. 이 주장을 하려는 겁니다. 그럼 뭐에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 그 주장들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거에요. 그 사상이 지금 신학교에 깊이 뿌리 내려져 있습니다. 제가 감리교 신학대 예를 종종 들었잖아요? 신학대에서 들어가자 마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가르친다고요. 제가 최근에 장로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초청하신 목사님은 장신대 신학교를 다니셨다고 해요. 그분도 신학교에 가자마자 갑자기 제1 이사야, 제2 이사야, 신명기는 뭐, P문서다. 또 신약 시간에는 사복음서는 뭐 Q문서를 베낀거다. 이런 식으로 제가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배우신 거예요. 그런데 신학교들에서 그런 것들을 가르치면서 결국 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은 영감으로 주어진게 아니다. 누구것 베끼다가 실수한 것이고 사실 저자는 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다.” 하면서 계속 성경 자체를 비평하는 겁니다. 결론이 뭐에요?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된게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가르치느냐? 카톨릭이 게속 가르치는 걸 개신교가 답습을 하고  영향을 받아서 함께 가르친다는 거죠. 그들이 말하는 “원본만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게 아니고요. 가장 큰 이단 교리중의 하나입니다. 지금도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는, 하나님의 영감 없이는 바른 번역이 나올 수 없고요. 하나님의 말씀이 모국어로 전 세계에 주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세례에 의한 중생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5

예수님께서 이같이 대답하셨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카톨릭과 개신교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세례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세례에 의한 중생. 기독교 2000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교리가 “세례에 의한 중생” 교리입니다. 이 세례 교리가 나오게 된 핵심 구절이 사도행전 8장 37절, 요한복음 3장 5절, 또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대답하셨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너무 명확해요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물과 성령으로 (명확하게) 나눠져 있죠. 그래서 “아, 첫 번째는 물로 태어나고 두 번째는 성령으로 태어나는거구나.” 알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기존 성경과는 다르죠.   

 

[개역/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기존 성경인 개역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했고요. 두 개를 나누지 않았어요.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ㅡ세례에 의한 중생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4-6

4 니고데모가 그분께 말씀드리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그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의 태 속으로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5 예수님께서 이같이 대답하셨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성령께로부터 태어난 것은 영이라.   ✔한 번의 출생이 아니라 두 번의 출생을 말하며, 두 번째는 영적 출생

 

 문맥상 4절을 보갰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거에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그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의 태 속으로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라고 질문하는 문맥입니다. 예수님이 거듭남,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두 번째로 태어납니까? 어떻게 거듭납니까? 라고 묻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이 질문에 개역성경처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하면, 이것이 거듭남의 방식인걸로 오해할 수 있어요. 거듭나려면 물과 성령 둘 다 있어야 된다고요. 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라는 주장을 실제로 합니다. 왜요? 구분을 안했으니까요. 킹제임스성경처럼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고,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지금 전치사 of를 기점으로 두 번 등장하죠? 이렇게 둘로 나눠야 되는데 안 나누니까, 물과 성령으로 (한번에) 거듭난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아닙니다. 물로 한 번 태어나고 두 번째 성령으로 태어납니다. 그게 두 번째 태어나는 것,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물로 태어나는 것은 뭐에요? 6절 문맥을 봐야죠.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성령께로부터 태어난 것은 영이라.’ “아, 육에서 태어난 것은 아기가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태어나듯이 육체로 물에서 태어나는 구나. 그렇지. 그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영이 태어나는 거니까, 거듭나는 것은 영적 출생을 말하는 거구나.” 하고 (저절로)알게 됩니다. 그런데 카톨릭은 물을 세례라고 해석해 버리는 거예요. 좀 더 쉽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세례라는 말이 나올까요? 단 한번도 세례나 침례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요. 그런데 세례라고 덧붙이고 물 세례라고 해석하는 거예요. 제가 앞 시간에 말씀 드렸죠? 문자적 해석의 기본은 뭐에요?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거예요. 해석을 더하거나 빼면 안 돼요. 세례라고 하지 않았는데 세례를 붙여서 물세례라고 하면 안 되죠. 그런데 자꾸 “물”하면 세례를 연관시키게끔 만들어 버린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물이 다 세례인가요? 아니에요. 수많은 물들은 그냥 일반 물을 말하는 거예요. 여기(요한복음 3:5)서도 일반 물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례란 해석을 넣어 버린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개로 나누고 두 개로 또 설명하신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성령께로부터 태어난 것은 영이라.’하신 문맥과는 상관없이 카톨릭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만든 최초의 교리를 가지고 “세례로 거듭난다.” 하고는 강제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또 유아세례를 주면서 남미를 점령했어요.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의 군인들에게 강제로 세례를 주면서 강제 개종을 시켰죠. 그런데 그렇게 물 뿌리는 것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해서 구원받는다면 얼마나 쉬워요. 온 세상 사람들을 강제로 그냥 물 뿌려 주면 되잖아요. 그럼 다 거듭나고 다 구원받고 얼마나 좋아요. 국회의원들도 사제들이 다 지나가면서 물 뿌려 주면 다 거듭나고 그럼 우리나라 국회가 좀 나아질거 아녜요?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데 개역성경은 (카톨릭의 세례에 의한 중생을 의미하는) “물과 성령으로” 라고 붙여 쓴 것이 이(개역)성경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주요 킹제임스성경이라 불리는 세가지 번역본들이 다 개역성경과  똑같이 “물과 성령으로” 라고 붙여 써 놓았습니다.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표준역처럼) ‘물로 태어나고 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이라고 정확하게 끊어줘야 맞는 해석입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구원의 상실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딜 자, 바로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카톨릭과 개신교

“끝까지 견뎌야먼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도 유명한 구절이죠. ‘그러나 끝까지 견딜 자, 바로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개역성경에는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으리라.’ 이런 식으로 돼 있어요. 이것을 보고 “그래, 내가 끝까지 죽을 때까지 믿음을 견디고 참으면 구원을 받을거야.” 그러니까 죽어봐야 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이것도 아주 유명한 문맥을 벗어난 해석의 용례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보면 개인의 인생의 끝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다른 끝을 말합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구원의 상실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24:3,13,14

3 이후에 그분께서 올리브산 위에 앉아 계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께 은밀하게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 “우리에게 알려주소서. 언제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그리고 당신께서 오시는 것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였더라⋅⋅⋅13 그러나 끝까지 견딜 자, 바로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리하면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로서 온 세상에 선포되리라. 그러고 나서 그때 끝이 오리라.

  ✔ 개인의 인생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끝.

 

마태복음 24장 3절 문맥을 보면 예수님이 ‘올리브산 위에 앉아 계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께 은밀하게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 “우리에게 알려주소서. 언제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그리고 당신께서 오시는 것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라고 제자들이 물어보는 거예요.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개개인의 인생의 끝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딜 자, 바로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리하면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로서 온 세상에 선포되리라. 그러고 나서 그때 끝이 오리라.’ 이것은 세상의 끝이 그때 온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그 끝”을 “대환란”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교회시대의 교리가 아니라 “세상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라는 대환란 때의 교리입니다. 개인이 신앙을 끝까지 잘 견디고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라는게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성령 모독죄


[표준킹제임스성경] 마가복음 3:29

29 그러나 성령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영존하는 형벌의 심판의 위험에 처하느니라.”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은사주의

“성령의 역사인 방언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자는 성령을 대적하여 모독한 것이므로 결단코 용서받지 못한다.”


마가복음 3장 29절에 보면 “성령 모독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뭐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는 데요. ‘그러나 성령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영존하는 형벌의 심판의 위험에 처하느니라.” 이 구절 가지고 은사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협박입니다. “내가 하는 방언은 성령의 역사인데 네가 감히 틀렸다고 말해. 이건 성령을 대적하는 죄고 신성모독을 했어. 그러니까 너의 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자, 논리의 오류들이 굉장히 많죠? 일단 (방언에 대해 말한) 그 사람은 성령을 모독하거나 대적한게 아니에요. “방언을 하는 사람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데, “방언이 성령의 역사이고 너는 성령을 대적했어.” 라고 엮어 버리는 은사주의자가 문제이고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단정을 짓는 것이 또 문제예요. 그험 문맥은 뭐라고 설명하는지 볼게요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성령 모독죄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마가복음 3;29-30

29 그러나 성령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영존하는 형벌의 심판의 위험에 처하느니라.”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는 한 불결한 영을 지녔도다.” 하였기 때문이라.                                                      

  ✔ 지상에 계시는 예수님이 마귀의 영이 들렸다고 비난.

 

그러나 성령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영존하는 형벌의 심판의 위험에 처하느니라.”’ 하신 후에 바로 뒤에 하나님이 설명을 해 주셨어요.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죄가 적용이 된 거냐면요?  “그는예수님이시죠? ‘한 불결한 영을 지녔도다.” 하였기 때문이라.’ He had an unclean spirit.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이에요. 쉽게 말하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예수님이 마귀 들렸다고 한 거에요. 그것이 신성모독죄라는 거에요.그것이 성령을 대적하는 신성모독죄인 겁니다. 그것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거에요. 그러면 신성모독죄를 지금 지을 수 있나요? 없어요. 왜요? 첫 번째, 지금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하고 계시지 않아서 입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오셔서 직접 자기 눈앞에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기적들을, 그것도 예언된 기적들을 하시는데 그걸 가지고 마귀의 역사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볼 수 없잖아요? 예수님이 지금 지상에 안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는 신성모독 죄가 해당되지 않습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성령 모독죄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도행전 26:9

진실로 저 자신도 나사렛의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하여 제가 많은 것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                                                   

  ✔ 교회 시대에서는 예수님을 대적했던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또 다른 예를 볼게요. 바을이 원래는 사울이잖아요?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로  저 자신도 나사렛의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하여 제가 많은 것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 자기 간증을 하는 중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예수님을 엄청나게 대적을 했어요.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욕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안 계실 때, 부활 승천 하시고 나서 그랬단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회심하고 용서받았어요. 그래서 이 죄는 바울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당시에 메시아의 지상 사역을 보고 마귀의 역사라고 한 것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은사주의 사역자들이 자기들에게 적용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잘못된 적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맥과 함께 봐야 되는 거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번영신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5:7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는 구할지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은사주의

“원하는 대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믿음의 부족이다.”

 

요한복음 15장 7절을 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는 구할지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자, 원하는 것 다 구해라.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믿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 기도해라.”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술램프의 지니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면 다 해주는 나의 종이 아니에요. 내 욕망을 이뤄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 문맥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전제 조건를 제시하셨는지 보겠습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번영신학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5:7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나의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한다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는 구할지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해야 하는 조건을 간과함.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나의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한다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는 구할지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전제 조건이 뭐예요?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해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들이 예수님의 말들이 내 안에 거해야 됩니다. 그럴때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결국 육신적으로 구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해야지 하나님께서 이뤄 주신다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구하게 돼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맞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 또 예수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것은 이제 이루어진다라는 거예요. 다만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언제”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10초만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니까 반드시 인내하고 계속 기도하라는 거죠.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데 그때를 하나님이 control 하시는 거예요. 이것은 약속이에요. “이 조건만 맞으면 내가 기도 응답해 줄게.”라는 약속이에요. 그런데 이 조건을 무시하고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는 구할지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 말만 하게 되면 은사주의자들 중에서도 특히 극단적인 은사주의자들처럼 되는 거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카톨릭 미사포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1:5

그러나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모든 여자마다 자기 머리가 덮여있지 않다면, 그녀의 머리를 창피하게 하는 것이라. 이는 그것이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리가 밀린 것과 전적으로 같기 때문이라.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카톨릭

“여자는 기도할 때 미사포를 꼭 써야 합니다. ”

 

카톨릭이나 성공회나 종종 이런데 가서 보면 여자들이 머리에 하얀 천을 쓰고 있는 것을 보실 거에요. 왜 그러냐? 고린도전서 11장 5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모든 여자마다 자기 머리가 덮여있지 않다면, 그녀의 머리를 창피하게 하는 것이라. 이는 그것이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리가 밀린 것과 전적으로 같기 때문이라.’ 머리가 덮여 있지 않으면 머리를 창피하게 하는 거니까 덮으라는 말씀 때문에 카톨릭에서 그렇게 하는 거죠. 수녀들이 머리에 항상 뭘 쓰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들은 성경을 잘 지키니까 더 경건하다는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경건을 표현하려는 거죠. 성경을 잘 모르는 겁니다.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카톨릭 미사포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1:5,6,14-15

5 그러나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모든 여자마다 자기 머리가 덮여있지 않다면, 그녀의 머리를 창피하게 하는 것이라⋅⋅⋅6 그러나 만일 여자에게 머리가 깎이거나 밀리는 것이 수치가 된다면, 그녀의 머리가 덮이게 하라⋅⋅⋅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 수치인 것을 심지어 본성 그 자체도 너희를 가르치지 아니하냐? 15 그러나 만일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영광이 되느니라. 이는 그녀의 머리가 덮개로 그녀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라.

 

    ✔ 여자에게 금지하는 것은 남자처럼 깎이거나 밀린 머리를 드러내는 것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1장 14-15절 문맥에서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 수치인 것을 심지어 본성 그 자체도 너희를 가르치지 아니하냐? 15 그러나 만일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영광이 되느니라. 이는 그녀의 머리가 덮개로 그녀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긴 머리가 덮개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머리가 남자처럼 아주 짧은 여인들 있죠? 그런 사람은 차라리 덮으라는 거예요. 특히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돼 있어서 여자가 거의 반 삭발처럼 머리를 깎는 이교도 풍습이 있었어요. 특별하게 어떤 재물을 드리거나 할때요. 그런 경우에는 덮으라는 거에요. 그런데 긴 머리는 그것이 덮개라고 한 거예요. 그럼 덮개가 필요 없는 거죠. 덮개 쓴 수녀는 경건하고, 덮개 안쓰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 불경건한게 아니라는 거죠. 머리를 길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께서 원리를 알려준 거거든요. 절대 몇 cm라고 정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어릴 때 여중, 여고에 가면 자를 들고 다니다가 귀에서 몇 cm 아래까지 정해놓고 자로 재는 어떤 선생님들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구약의 율법과 같은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원리를 알려 주신 겁니다. 어느 정도가 긴 머리냐? 누가 봐도 여자의 머리다라고 생각되면 긴머리예요. 그것이 원리예요. 그렇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혼의 소멸


[표준킹제임스성경] 전도서 9:5-6

이는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고 있으나 죽은 자들은 어떤 것도 모르며 그들에게 더 이상 보상도 없기 때문이요, 그들에 관한 기억이 잊히기 때문이라. 또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증오와 그들의 시기도 이제는 사라졌느니라. 그들은 또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에서도 더 이상 영원토록 몫이 없느니라.

 

잘못된 해석의 예 ㅡ 여호와 증인

“죽으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혼이 소멸됩니다. 

 

전도서 9장 5-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에 대해 실제로 만나 얘기를 나눈 사례를 하나 알려 드리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여호와 증인의 핵심 교리는 혼의 소멸, 지옥이 없다라는 겁니다. 제가 전도지를 나눠 주고 복음도 전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두 세명의 여호와의 증인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전도지를 드리니까 오히려 저한테 “지옥은 없어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성경에는 지옥이 있습니다.” 라고 알려 드렸더니 “아니요. 죽으면 혼이 소멸돼요.” 그러면서 저에게 이 구절을 보여 주는 거예요. ‘이는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고 있으나 죽은 자들은 어떤 것도 모르며 그들에게 더 이상 보상도 없기 때문이요, 그들에 관한 기억이 잊히기 때문이라. 또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증오와 그들의 시기도 이제는 사라졌느니라. 그들은 또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에서도 더 이상 영원토록 몫이 없느니라.’ 이 구절을 보고 죽은 자들은 어떤 것도 모른다. 그러니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소멸된 상태다. 이걸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 그런가요? 그러면 이 전도서를 누가 썼죠?”  솔로몬이 썼대요. “그러면 솔로몬이 쓴 전도서의 결론을 아십니까?” 했더니 그것은 모르더라고요.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혼의 소멸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전도서 12:13-14

13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라. 이는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기 때문이라. 14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은밀한 것과 더불어 모든 행위를 각각 심판으로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전도서 1 :12-13

12 나 선포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노라. 13 그리고 내가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찾고 탐구하여 알아내는데 나의 마음을 쏟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심한 산고를 주시어 그것들로 단련받게 하셨느니라.

전도서에서

해아래(에서) X27

 

그래서 제가 전도서 12장 13 - 14절 보여 드렸어요. ‘13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라. 이는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기 때문이라. 14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은밀한 것과 더불어 모든 행위를 각각 심판으로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라.’   왜 그랬냐면? 그 아주머니가 저한테 얘기할 때 지옥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심판도 같이 없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보여 주면서 솔로몬의 결론은 심판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게 맞다. 죽으면 없어지거나 기억이 없어지는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도서 1장에도 나오다시피, 선포자인 솔로몬은 하늘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찾고 탐구했는데 목적은 영혼이 아니라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고 말하는거다. 그리고선 전도서에 해아래(에서)라는 표현이 있는 곳을 27번 계속 보여 줬어요. under the sun, 해 아래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철학적으로 본 거지 영혼의 관점으로 쓴 것이 아니다. 이 땅의 관점으로 보면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일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그거지 않냐?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그 관점에서 저지른다. (솔로몬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니까 그 관점에서 쓴 거다. 결론적으로, 해 아래서 솔로몬이 모든 것을 다 시도 해봤지만 해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더라. 그러니까 영혼을 위해서 심판을 준비하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렇게 설명을 드렸죠. 그랬더니 포기를 안하고 또 로마서를 보여 주더라고요.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혼의 소멸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라.

 

그러면서 “봐라. 죽으면 죄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냐? 죽으면 죄의 심판을 받고 죄의 형벌인 지옥에 가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죄에서 자유롭게 됐기 때문에 자유롭게 된거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 이 구절을 언급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문맥을 함께 봤죠. 

 

문맥을 벗어난 성경 해석의 예시 ㅡ 혼의 소멸    

문맥 체크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6:6-8

6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나니, 이는 그 죄의 몸이 멸망받게 하려 함이요, 이후로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않게 하려 함이라.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라.

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있다면 우리가 또한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을 우리는 믿느니라.

 

✔ 물리적인 죽음이 아닌 옛사람(자아)의 죽음

 

6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나니자, 선생님, 우리의 옛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것입니까? 영적인 것입니까? 라고 물었어요. 만약 이것이 물리적인 것이라면 말이 안 되죠. 우리가 물리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나요? 아니잖아요. 이것도 잘못 해석하는 사람이 있어서 예전에 한 7~8년 전에 누군가 어디 시골에 내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 있어요. 아니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잖아요?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어요. 물리적으로 예수님이 대신해 주신 거예요. 우리는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거죠? ‘이는 그 죄의 몸이 멸망받게 하려 함이요, 이후로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않게 하려 함이라.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라.      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있다면 지금 우리 몸이 물리적으로 죽어 있습니까?  “아니죠. 우리 옛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또한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을 우리는 믿느니라.’ 자, 8절에서의 죽음과 6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영적입니까? 물리적입니까? 여기(6,8절)서 말하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이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물리적으로 사람이 죽어서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죄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라고 알려 드렸어요. 자, 결국은, 모든 이단들은 자기들만의 왜곡된 교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처음 듣을 지라도 차분하게 문맥을 찾아 보면서 설명하면 됩니다. 그때 저는 여호와 증인이 이렇게 주장할 줄 모르고 있었단 말이죠. 그때 제가 구원받은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성경을 차분하게 문맥을 함께 보면 정확하게 뜻을 알려 줄거다. 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차분히 그때 문맥을 함께 봤어요.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우리가 당황해 할게 없어요. 그 사람들이 희한한 구절을 가지고 오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문맥을 보면 돼요. 그러면 문맥에서 분명히 정확한 뜻을 알려주기 때문에 헷갈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도행전 17:11

이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고상하였던 것은 그들이 온 생각을 댜해 준비하여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매일 성경 기록들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욥기 26:3

너는 아무 지혜 없는 자에게 어떻게 조언하였느냐? 또 너는 어떻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많이 나타내었느냐?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시죠. ‘이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고상하였던 것은 그들이 온 생각을 댜해 준비하여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매일 성경 기록들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라.’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듣던지 정말 그러한가? 성경 기록들을 직접 찾아보면서 문맥들을 보고요.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도 보시고요, 제가 최대한 자주 성경을 보여 드리려고 하는 것은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도 또 찾아보고 문맥도 또 보고 하시면서 그것들이 그러한가를 점검하셔야 됩니다. 욥기 26장 3절에도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어요. ‘너는 아무 지혜 없는 자에게 어떻게 조언하였느냐? 또 너는 어떻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많이 나타내었느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실 거예요. 지혜 없는 자에게 조언을 했는지?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었는지? or 사실을 안 나타내었는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면 기록된 그대로, 문맥에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임무이고 또 여러분의 임무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사사로운 해석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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