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제1법칙 문자적 해석의 법칙
-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3월 13일
- 3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11일
24. 03. 06.

성경공부 자료
성경 해석학 제 1법칙 문자적 해석의 법칙
영어로 biblical hermeneutics 성경 해석학이라고 부르는 과목을 이번 주부터 시작을 합니다. 성경 해석학은 어떻게 보면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 성경을 배우는 학생으로서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고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나서 소위 기독교, 그리스도교가 시작이 됐죠. 그리고 수많은 종파들이 생겨났어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수많은 종파들이 생겨났고 이단과 사이비들도 생겨났는데, 뭐가 문제냐? 첫 번째는 성경이 문제죠. 성경이 잘못된 것도 문제지만 결국은 같은 성경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이단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해석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들을 정확하게 배우면 여러분은 크게 이단적인 해석을 스스로 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가 이 성경을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그리고 이 해석이 맞는지 안 맞는지 검증할 수 있게 되고요. 다른 사람의 해석도 어떤 부분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로 잡아야 되는지가 이제 보일 거예요. 그럴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돼요. 성경을 많이 읽으면 많이 읽어 둘수록 성경에 무엇이 어디 있는지 알죠. 그런 다음에 하나의 정확한 성경적 원칙들이 함께 결부가 됐을 때 바른 교리들이 탄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 해석학을 이번 학기에는 총 15주차에 걸쳐서 15가지의 주요 원칙들을 배우게 될 겁니다. 이 원칙들 하나하나를 제가 성경적으로 입증을 하면서 왜 중요하고, 이대로 해야 되는지,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후서 1:20
우선 이것을 알지니, 성경 기록에 있는 예언은 어떤 것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없도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먼저 성경해석의 열쇠는 무엇인가 ? 성경해석의 열쇠는 하나님 그분 자체이고 우리가 아니란 걸 인정해야 돼요. 나는 성경해석의 열쇠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틀린게 있죠. 로마 카톨릭에서는 바로 교황이 성경해석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교황의 해석일 뿐이에요. 하나님의 해석이 아닌 거예요. 성경해석의 열쇠는 하나님이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돼요. 그래서 성경에서 베드로후서 1장 20절 보면 ‘우선 이것을 알지니, 성경 기록에 있는 예언은 어떤 것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없도다.’ 라고 했어요. 사사롭다, 개인적이다, 프라이빗하다. 공식적인게 아니라는 거죠. 개인적으로 해석한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공식적인 해석이라 하면 하나님이 주신 해석 그대로 해야 잘못된 길을 갈 염려가 없는 거죠.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면 안돼요. 기독교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자꾸 성경을 읽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버려요. 제가 예전에 개신교의 묵상모임이나 큐티 모임에 많이 참석을 했거든요. 모태신앙으로서 교회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열이면 열 해석이 다 달라요. 그런데 문제는 뭔가? 아무도 그것을 바로 잡아줄 수가 없고 잡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괴상한 해석들이 그냥 흘러 나오는데 아무도 그것을 대처하지 못하고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서 넘어가게 돼요. 그런 문제들도 있게 되죠. 그래서 사사로운 해석은 안된다.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후서 3:16
또한 그의 모든 서신들에 있는 것과 같으니, 그 안에서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느니라. 그의 서신들에는 이해되기 힘든 것들이 일부 있는데, 배우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을 왜곡한 것같이 그들이 그의 서신들도 왜곡하여 그들 자신의 멸망에 이르느니라.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베드로후서 3장 16절, 같은 책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경고하죠. ‘또한 그의 모든 서신들에 있는 것과 같으니,’ 바울을 얘기하는 건데요. ‘그 안에서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느니라. 그의 서신들에는’ 바울의 서신들에는 ‘이해되기 힘든 것들이 일부 있는데,’ 그렇죠. 바울서신만 이해되기 힘든 것들이 있는게 아니라 성경 전체에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종종 중간중간 하나님께서 넣어 놓으셨어요. 일부러 넣어 놓으신 겁니다. 첫 번째, 공부하라고. 두 번째는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요. 여러가지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넣어 놓으셨다고 성경이 알려 주시는데 ‘배우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을 왜곡한 것같이’ 바울 서신을 성경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다른 성경 기록들을 왜곡한 것같이 그들이 그의 서신들도 왜곡하여 그들 자신의 멸망에 이르느니라.’ 자,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이상한 해석을 가지고 종교를 만들어내서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가 됐다고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뭔가 큰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절대 좋은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에 이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왜곡하면 멸망에 이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의도를 보시고 “그래, 그렇게 해.” 허락을 하시는 거예요. 그럼 멸망에 이르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억지로 왜곡해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절대로 해석하지 않겠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 모르면 일단 멈춰야 돼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알 때까지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면 돼요.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면 하나씩 성경으로 입증하고 검증을 해서 “아, 이게 맞구나!” 라고 될 때 그때 이 해석을 붙들어야 되죠. 마음의 우상을 세워 놓지 않고 객관적으로 해석을 해야 되지, “내가 이걸 반드시 해석해 내고야 말겠다.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석할 수 있어. 내가 못 할 건 없다.” 뭐, 이런 식으로 마음을 먹으면 억지로 왜곡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멸망에 이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40:8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할 자가 없도다.” 하였더라. 이에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해석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나이까?⋅⋅⋅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40:8
⋅⋅⋅그것은 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이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화평의 응답을 주시리이다.” 하였더라.
성경 해석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영역
창세기 40장에 보면 여러분이 잘 아는 요셉이 등장하죠. 파라오의 신하들이 요셉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할 자가 없도다.” 하였더라. 이에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해석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나이까?’ 요셉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죠? 요셉은 이 해석이 요셉 스스로에게서 나온게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알려 주신 거죠. 요셉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창세기 41장 16절도 다시 파라오가 해석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그것은 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이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화평의 응답을 주시리이다.”’ 라고 했어요. 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24:45
⋅⋅⋅그때 그분께서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이해하도록 그들의 지각을 열어 주셨으며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6:13
하지만 진리의 영이신 그분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이는 그분께서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요, 다만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들으실 것을 친히 말씀하시리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다가올 것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누가복음 24장에 보면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경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때 그분께서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이해하도록 그들의 지각을 열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각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육신을 신뢰해서 “나는 하버드대 나왔으니까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해. 내가 할 수 있어.” 이러면 하나님은 안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이것은 제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됩니다.”하면 이 겸손한 마음까지 하나님이 보시고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를 하는 창구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이 성경을 그냥 책방 구석에 쳐박혀 있는 책 취급하듯이 해버린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이 이 책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지각을 열어주지 않으시죠. 그래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걸 인정해야 돼요. “나는 못한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성경에서 요한복음 16장 13절, ‘진리의 영이신 그분께서 오시면’ 성령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다.” 라고 하셨죠? 그런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려면 진리의 영이 있어야 되는 거죠. 성령님의 인도가 있어야 돼요. ‘이는 그분께서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요, 다만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들으실 것을 친히 말씀하시리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다가올 것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성령님이 보여 주시고 성령님이 인도하시고 성령님이 알려 주시고 열어 주시는 겁니다. 간혹 은사주의자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사람 중에, 물론 은사주의라는 개념, 그 신학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죠? 그렇다고해서 너무 극단적으로 은사주의를 배척하다 보니까 성령님이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을 완전히 간과하는 거에요. 성령님의 역사의 모든 것을 다 부인하다 보면 성령님의 영감도 부정해 버려요. 그러면 성령님의 역사, 성령님이 보여 주시는 것, 진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부인하게 됩니다. 그건 아니죠.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세요. 성령님의 역할이 뭐에요?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돼요.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그럴려면 먼저 이 (성경)책은 성령님의 책입니다. 성령님이 기록하신 책입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겠죠.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후서 1:21
이는 예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하여 나온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에 의하여 감동을 받은 대로 (as they were moved) 그들이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라고 했어요.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어요. 성경은 최초의 원본만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 다음에 영어 킹제임스성경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손에 있는 모국어 성경까지 다 포함하는 거예요. 그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손에 이 책이 들려줬다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있었다는 거에요. 그것 없이 성경을 번역하거나 성경을 출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 일반 책이랑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 이것을 믿어야죠. 하나님의 영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감동을 주시고 움직이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이 성경 기록이 주어진다라는 것을 믿어야 되는 거죠. 믿음 없이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세요. 이 믿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많이 보여주시겠어요, 그렇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돼요. “아, 성령님께서 지금도 나에게 보여 주실 수 있고 이 책은 성령님의 책이고 이 책은 살아 있는 책이고 이 책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가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된다.” 그러면 이 마음까지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시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1장 32절에 보면 ‘이는 예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하여 나온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에 의하여 감동을 받은 대로 (as they were moved) 그들이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 보세요.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요. 영감을 최초의 원본만 영감을 받았고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은 영감 받은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비성경적으로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감은 성경 기록물에만 있다.” 라는 거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시면 성령님에 의해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말을 하는 거예요. 영감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사람에게 말하게 하는 것부터 역사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이 예언을 기록한 것이 예언서들이에요. 이미 사람들이 말을 말을 시작할 때부터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던 거예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게요.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욥기 3:28
그러나 사람 안에 영이 있나이다. 또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그들에게 명철을 주시나이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이사야서 34:16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 하나도 상실되지 아니하리니, 그녀의 짝이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이는 나의 입이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았기 때문이라.
성경에서 영감이 두 번 나오는데 처음 나올 때 뭐라고 하냐면 ‘그러나 사람 안에 영이 있나이다. 또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그들에게 명철을 주시나이다.’ 라고 했어요. 성경에 영감이 두 번 나오는데 최초에 나오는 영감이 사람에게 명철을 주는 영감이에요. 당연히 성령님께서 사람에게 영감을 주시죠. 그리고 사람이 바르게 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받아적는 경우도 있었어요. 자기가 적을 때도 있고 아니면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바룩이 받아 적기도 했죠. 받아 적는 것도 하나님의 영께서 역사해서 바르게 실수없이 받아 적울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겁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 하나도 상실되지 아니하리니, 그녀의 짝이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이는 나의 입이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았기 때문이라.’ 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입이 명령했고 하나님의 영이 이것들을 모았다. 주의 책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 없이는 (될 수가 없죠.) 보세요. 구약성경은 한번에 39권이 짜잔 하고 등장한게 아닙니다. 그렇죠? 기록 연대들이 다 달라요. 최초에 기록된 욥기는 BC 1800년 경에 기록됐고 말라기는 BC 400년경. 그 사이에 한 1400년 정도의 갭이 있잖아요? 또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했고 하나님께서 “이것이 성경이다.” 하고 모으신 거예요. 그 과정도 성령님이 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이 말할 때도, 그것을 기록할 때도, 사람이 명철을 얻을 때도, 그 다음에 이것을 모을 때도, 그 다음에 보존할 때도 다 하나님의 영감이 있고 번역할 때도 하나님의 간섭이 있고 개입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연단을 하고 정련 과정을 통해서 완전에 이르게 하시는 거죠.
성경 해석의 열쇠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2:13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들로 하나니, 영적인 것들을 영적인 것들로 비교하느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6:63
되살아나게 하는 것은 영이라.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들, 그것들은 영이요, 그것들은 생명이라.
그래서 “네, 그래요. 성경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겁니다. 인정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그럼 하나님의 해석이 맞다는 걸 어떻게 알려 주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아주 실용적인 중요한 힌트가 여기에 나오죠? 고린도전서 2장 13절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어떤 강단에서는 설교를 하는데 인문학을 마구 인용해서 성경을 얘길 할려고 해요. 그럼 사람의 말들로 하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가 쓴 책, 누구의 인용문, 이런 걸 가지고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해요. 그것은 참조 사항은 될지언정 그것이 성경 해석의 주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들로 하나니,’ 성령님께서 가르치신다 했죠? 진리로 인도하시죠? 그 말씀들로 어떻게 하신다고요? ‘영적인 것들을 영적인 것들로 비교하느니라.’ 지금 비교한다라고 했죠?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것들을 영적인 것들로 비교해서 가르쳐 주신다.’라고 해요.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이 이겁니다. 이제 우리가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을 알았어요. 그럼 영적인 것들이 뭐냐? 가장 기본적인게, 특히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말씀들이에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들, 그것들은 영이요, 그것들은 생명이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각각으로 살 것이다.’라고 하셨거든요. 빵은 물리적인 음식이에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영적인 음식이에요. 영적으로 사람을 살게 해주고 살려줘요. 물리적인 빵은 순간만 살게 해주는 거예요. 영적인 말씀으로 진짜 살려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것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비교를 해주시는 겁니다. 그럴려면 성경의 이 구절과 다른 구절의 성경 기록들을 서로 비교해서 이 해석이 맞는지를 입중을 해야 돼요.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보면 두 세 증거들로 하나님께서 입증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교리라는 것을 만들 때는 반드시 “이것일지도 몰라” 이런 추측이 아니라, 적어도 이것일 수밖에 없는 명확한 문맥상 또 해석상 두 세 증거들이 합쳐져서 “이것이다.” 라고 결정이 나와야지 우리가 교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리라는 것은 우리가 믿어야 될 진리이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고린도전서 2장 13절에서 보면 성령님께서는 가르치시는 방법이 영적인 것들을 영적인 것들로 비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이 해석이 맞는지를 비교해서 입증해야 되는 겁니다. 내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교황의 말이 아니라, 교황이 이 말은 이거야 , 어떤 목사님이 이 말은 이거야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는지 다른 곳에서 비교해 가지고 입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성경 해석의 열쇠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criptures by Scriptures”
(성경은 성경으로)
그래서 종교개혁의 슬로건 중의 하나가 뭐에요?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이런 뜻이에요. 종교개혁의 시작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에요. 그 전까지는 그냥 교황과 사제들 말만 믿었어요. 사람들은 읽을 수도 없는 성경을, 또 읽지도 못하게 했던 그 성경을 사제들은 라틴어로 읽을 수 있다라고 말하니까 “그래, 저 말이 하나님 말씀인가 보다.” 하고 믿었어요. 사람(사제)의 말을 믿은 거죠. 그런데 자기가 직접 읽어보니까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형상을 만들어서 거기다가 절하고 기도하고 입 맞추라고 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면제부라는 쿠폰을 가지고 죄를 용서한다고 한 적이 없는 거에요. 자기가 직접 읽어 보니까 (그런 말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으로 모든 것을 확정해야 돼요. 성경을 해석할려면 성경으로 해석해야 되는 겁니다. “Scriptures by Scriptures” 성경은 성경으로. 그래야 사사로운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없이 성경으로 입증하는 겁니다. 그것이 안전한 것입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문자적 해석의 법칙>
그러면 성경 해석학 15가지의 주요 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제1법칙이 있습니다. 제 1법칙을 먼저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문자적 해석의 법칙. 가장 기본입니다. 이 문자적 해석의 법칙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뒤에 있는 14가지 법칙이 성사 될 수가 없어요.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문자적 해석의 법칙>
The law of literal interpretation
본문이 명백하게 비유적이 아닌 이상, 항상 모든 구절을 단순하고 문자적인 의미로 취하라.
Always take the plain, literal meaning of every verse unless the passage is obviously figurative.
이게 무슨말이냐? 영어로 <The law of literal interpretation> 이런 표현이거든요. ‘본문이 명백하게 비유적이 아닌 이상, 항상 모든 구절을 단순하고 문자적인 의미로 취하라.’ 기본적으로 이 비유는 제가 오늘 다룰 겁니다. 일단 중요한 부분이 이거예요. ‘항상 모든 구절을 단순하고 문자적인 의미로 취하라.’입니다. 성경에 기록돼 있으면 그냥 그대로 읽으라는 거예요. 문자적 해석은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예를 들면 비유다. 그러면 비유된 것도 기록된 대로 해석해야 됩니다. 그 부분은 제가 뒤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기록된 그대로,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주셨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21:21-23
베드로가 그[사도 요한]을 보면서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그리하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하니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그때 그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이 말씀이 형제들 사이에 퍼져 나갔더라.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라.
✔ 의미를 첨가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첨가된 의미
예를 들면,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사도요한을 보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여, 그리하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지 알려주니까 사도요한을 자기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지 베드로가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건지 물어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하셨어요. 정말, 이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랬더니 ‘그때 그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이 말씀이 형제들 사이에 퍼져 나갔더라.’ 형제들이 이걸 듣고 “어, 뭐야? 얘가 안 죽을 건가 봐. 요한이 영원히 살건가 봐.” 보세요. 여기서 죽지 않는다는 말이 한 마디라도 있나요? 없죠. 그냥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한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러셨어요.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했어요. 절대 죽지 않을 거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 대화를 통해서 제자들이 자기가 받는 느낌으로 얘기를 한 거예요. 오해를 한거죠. 첨가된 의미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보세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글 누가 적어요? 사도 요한이 적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죽지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본인이 답답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그가 죽지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다만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라.’ 보세요. 한 단어도 안 바꼈어요. (사도 요한이) 그대로 다시 한번 인용한 겁니다. “죽지 아니하리라.”란 말은 한 적도 없고 그냥 말 그대로의 의미라고 적는 거예요. ‘설령’은 가정입니다.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있는 그대로 의미에요. 여기서 더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실제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성령님을 통해서 주의 날에 갔다라고 나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요한계시록을 볼 때 다룰건데 “주의 날”은 재림과 관련 있는 날이에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사도 요한이) 시간 이동을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재림의 상황으로 데려가셔서 주의 날의 상황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에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적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님이 온 것을 본 사람이에요. 어떻게요? 하나님께서 주의 날로 이동을 시켜 주셨거든요. 성경에도 타임머신이 있는 거죠. 대신 기계가 아닌 주의 영으로 하나님께서 주의 날로 이동을 시켜 주신 겁니다. 어쨌든간에 요한은 예수님이 정말 오시는 것을 봤어요. 그리고 한 8-90세 정도 되는 매우 노년의 나이까지 살다가, 사도들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는데. 그때 그 파트모스(팟모)라는 섬에 유배된 상태로 죽습니다. 안 죽은게 아니에요. 그렇죠? 그런데 이 부분을 오해한 거죠. 하나님께서는 이 말 그대로 인용을 해주신 거예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1:12-14
또 땅이 풀과, 그의 종류대로 씨를 맺는 야채와, 그의 종류대로 속에 씨가 있어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내었더라. 그러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이 좋았더라.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더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밤에서 낮을 나누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 빛들이 있으라. 그리고 그것들은 표적들을 위하여, 시기들을 위하여, 날들과 연도들을 위하여 있으라.
✔ 저녁과 아침이 하루였다는 말씀을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비유로 해석함
다시 한번 예시를 하나 들어 볼게요. 창세기에 보면 6일 창조가 나오잖아요? 거기에 보면 ‘또 땅이 풀과, 그의 종류대로 씨를 맺는 야채와, 그의 종류대로 속에 씨가 있어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내었더라. 그러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이 좋았더라.’ 이것은 채소가 아니라 야채입니다. 여러분들이 국어사전만 봐도 채소와 야채의 차이는 나와요. 채소는 사람이 밭을 만들어서 경작을 한 결과입니다. 노력을 취해서 난 결과예요. 그런데 야채는 그냥 자연 그대로에서 자라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는 경작을 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나는 야채들인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이 좋았더라.’ 지금 그것이 뭐예요? 식물을 만드셨으니까 식물이죠.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더라.’ (하나님께서) 6일 창조를 항상 어떻게 설명하세요? 하나를 설명하고 나서,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둘째 날⋅⋅⋅ 셋째 날이었더라. 이렇게 하시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가? “그렇구나! 정말 저녁과 정말 아침이 하루가 되었구나! 이게 셋째 날이구나.” 그렇죠?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예요. 아무 것도 첨가를 할 필요 없어요. 그냥 그대로 “그래, 저녁 아침, 이게 셋째 날이구나.” 그런데 기독교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자라고 하는 진화론울 받아들여 버린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해석을 하냐면요? 하나님을 믿는다 말을 해놓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니까 창세기가 제일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해석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교단인 로마카톨릭이 취하고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은 교황이 공식적으로 여러차례 말했어요.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신화다. 그리고 진화론은 맞다.” 그러면서 이 하루를 끼워 맞춥니다. 그걸 어떻게 하냐면? “사실은 이 하루가 몇 억년이야. 그래서 몇 억년, 몇십억 년이 흘러서 이렇게 된 거야. 창조한게 아니라 저절로 몇억년이 흘러서 진화가 됐는데 이것을 하나님이 하신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이것은 순수 자기들 생각입니다. 그냥 해석에 첨가를 한거예요. 여기(창세기1:12)에는 그 해석에 대한 어떤 말도 없습니다. 그냥 본인 생각을 넣은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있는 그대로만 해석하면 되는 거에요. 그래야 제일 안전한 겁니다. 이게 문자적 해석입니다. 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해석이 잘못됐어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유신론적 진화론의 해석이 틀린걸 바로 그 다음 절에서 (성경이) 입증을 해줘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밤에서 낮을 나누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 빛들이 있으라.’ 그 다음날 무엇을 만드세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십니다. 만약에 이 하루가 몇억 년이면, 식물을 만드셨는데 몇억 년동안 빛도 없이 식물들이 살아남았다는 거예요. 말도 안되죠? 땅의 식물들은 빛이 없으면 오랫동안 못 살아남습니다. 진짜 바로 하루 뒤에 만들어졌으니까 식물들이 살아 있는 거에요. 만약 몇 억년이 흘렀으면 이 식물들이 어떻게 살아남죠? 살아남을 수 없죠. 그러니까 자기 생각을 넣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망가지는 거에요. 이런 부분들은 그냥 그대로만 해석하면 되는 거죠.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문자적 해석 = 기록된 그대로 해석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7:1
그리고 주께서 노아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와 너의 온 집은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
예를 들어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이러면 그냥 그대로 믿으면 돼요. “태초에? =>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맨 처음에, 누가? => 하나님께서, 무엇을? =>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구나!” 그냥 이대로만 믿으면 되는데, “아,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께서 이데아를 만드셨고 여기서 땅은 실체를 만드신 거야.”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는 거에요. 이게 철학자들이 하는 알레고리컬 해석, 은유적 해석이라고 해요. 여기(창세기 1:1)에다 자기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해 버리는 거예요. “아, 이데아와 실체가 여기서 나뉘었구나.” 이런 식으로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냥 갖다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진짜 물리적인 하늘과 땅을 그대로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여기서 더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은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는 거에요. 심지어 비유와 상징도, 나중에 비유와 상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보여 드릴 건데, 그것도 기록된 그대로만 해석하면 돼요. 창세기 7장 1절도 ‘그리고 주께서 노아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와 너의 온 집은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 하나님께서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드니까 “너와 너의 온 집은 이제 방주 안에 들어와라.” 이렇게 하셨죠. 그럼 방주는 뭐에요? 말 그대로 물리적인 방주에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안에) 들어온 거에요. 그냥 그대로만 보면 되죠. 그런데 “여기서의 방주는 우리 교회야. 여기서의 방주는 구원이야. 여기서 방주는 뭐야, 뭐야,...” 여기에 뜻을 마구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여기서 방주는 우리 교회고, 아니면 우리 교단이고, 여기서 노아는 사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고…” 뭐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는 거죠. 그냥 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 그대로 보면 되는 거예요. 그게 문자적 해석입니다. 그게 가장 정확하고 안전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를 주셨잖아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여러분이 바른 마음만 있고 성경을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면서 여러번 읽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굳이 의지를 해야 되는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우리가 좀 더 빨리, 좀 더 체계적으로, 또 앞에 믿었던 선배들이 배웠던 노하우들과 쌓인 것들을 더 체계적으로 더 빨리 배우기 위해서 성경 교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 교사들을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16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문자적 해석 = 기록된 그대로 해석
문자적 해석은 수사법을 배제하지 않는다.
=> 상징, 직유법, 은유법, 과장법, 반어법 등.
요한복음 3장 16절도 마찬가지죠.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뭐에요? 하나님이 정말로, 세상을 정말로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죠? 예수님. 말 그대로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말 그대로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믿어야 하는지) 목적을 주셨어요. 왜 독생자를 주셨어요?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대로만 믿으면 되요. 여기서 더 뭘 할 필요 없죠? 그런데 이 구절을 가지고도 “뭐, 예수님 믿어도 나중에 구원을 잃어버려서 지옥에 갈 수 있어.” 라고 하면 사사로운 해석이 되는 거예요. 왜요? 멸망하지 않는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했는데 멸망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면 안 됩니다. 또 이들은 “이것은 예수님을 끝까지 잘 믿는 자라는 뜻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첨가한 겁니다. ‘끝까지와 잘’ 이란 의미를 첨가했어요. 그러면 안된다는 거에요. 해석의 의미는 첨가나 삭제나 왜곡은 안 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읽어야 된다는 거죠. 그게 기본입니다. 결국 문자적 해석이라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수사법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글을 써서 주셨잖아요. 그러면 기록 언어 자체는 수사법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그래서 수사법도 문자 그대로 인정한다는 거예요. 기록된 그대로 수사법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기록된 그대로만 보면 돼요. 예를 들면, 일부러 상징으로 나타내실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상징을 성경으로 해석하면 돼요. 이 상징이 무엇인지 성경이 얘기를 해 놨거든요. 그럼 그것을 찾아서 성경이 해석하게 해주면 돼요.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는 거에요. 분명히 상징으로 기록 된 걸, 이 상징의 뜻을 내가 결정한다고 하면 사사로운 해석이 되는 겁니다. 성경을 찾아서 이 상징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찾아서 비교해서 제시만 하면 돼요. 그게 (해석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생각엔 이거다. 이게 맞아.” 이렇게 하면 거짓 교리가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직유법, 은유법, 과장법, 반어법 모두, 그대로 원래 인간의 수사법 그대로 보면 돼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1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예시를 보여 드릴께요. 일단 크게 두 가지 예시를 먼저 보여 드릴 텐데요. 예수님이 명확하게 비유라고 하신 것들이 있어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소위 천국의 비유라고 해서 비유들이 한 7가지가 쫙 나오는데요. 예수님이 분명히 비유라고 하셨어요.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런데 보세요.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판에 보면 천국이라고 돼 있죠? 사실은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 이라고 해야 정확한 겁니다. 이 부분은 제가 나중에 좀 더 설명을 드릴게요. 하늘의 왕국, The kingdom of heaven을 하늘의 왕국이라고 그대로 해야 되는데 이것을 천국이라고 함으로써 이 비유가 마치 구원 받아서 가는 천국으로 생각하게끔 잘못 인식하게 만든 거예요. (흔히)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하면 뭘 생각해요? 안 믿는 사람들도 천국이라고 하면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말하는 하늘의 왕국은 천국이 아니에요. 하늘의 왕국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가지고 오실 왕국이에요. 하늘에 속한 왕국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소위 주기도문이라 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뜻이 또는 아버지의 왕국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주기도문에 따라 이 왕국이 땅에 임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이 왕국이 하늘의 왕국이에요. 길게 풀어쓰면 하늘에 속한 왕국이 땅에 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요 부분을 천국이라고 해버리니까 일반적으로 천국을 (죽어서 가는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걸 오해하게 됐죠. 이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이 겨자씨 비유를 보십시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3
그분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그리고 두 구절 뒤에 보면 이 하늘의 왕국의 비유 중에 누룩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유명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가 있죠. 이것을 어떻게 일반 교단들에서 해석하는지 보세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3
그분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누룩 선교회”
겨자씨와 누룩 천국 ‘겨자씨의 비유는 복음이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1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그것은 정녕 모든 씨들 중 가장 작은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자랐을 때,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느니라. 그렇게 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나무의 가지들에 깃드느니라.” 누룩복음
누룩 선교회, 누룩복음, 겨자씨와 누룩 천국 “겨자씨의 비유는 복음이다.” 뭐로 해석하냐면 복음으로 해석해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천국을 말하고 복음을 말하고 구원을 말한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죠. 저도 많은 교회에서 들었고요. 여러분이 뉴스 기사만 검색해도 이렇게 말하는 목사들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자기들 생각이고요. 그러면 정말 그런지 보자구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3
⋅⋅⋅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누룩의 의미 ㅡ 부정적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12:1 ⋅⋅⋅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라.
먼저 이 누룩 비유를 보면요. 아, 일단은 하늘의 왕국, 이것은 천국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이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면 되고요. 자, 이 하늘의 왕국의 비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자가 등장하죠? 곡식 가루 세 도량이 나오죠? 그 다음에 누룩이 나옵니다. 이 세가지가 무엇인지 성경으로 입증을 하면 돼요. 그런데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 누룩을 복음이라고 지금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성경에서 누룩을 뭐라고 말하는지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항상 부정적이에요. 누가복음 12장 1절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라.’ 위선은 악한 거에요. 하나님께서 위선자들을 얼마나 책망하셨는데요. (누룩은) 죄를 말하는 거죠.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3
⋅⋅⋅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누룩의 의미 ㅡ 부정적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5;1-2, 6-8
음행이 너희 가운데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즉 누군가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 너희의 자랑함이 좋지 않도다. 너희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므로 오래된 누룩을 제하여 버릴지니, 너희가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자들로서 하나의 새 덩어리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5장 1-2절, 6-8절을 보세요. ‘음행이 너희 가운데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즉 누군가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그런데 너희는 왜 이 사람을 쫓아내지 않느냐? 출회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너희의 자랑함이 좋지 않도다. 너희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므로 오래된 누룩을 제하여 버릴지니’ 제거해라.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이 뭐에요? 앞에 마태복음 13:33절의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은거죠. 반죽을 부풀게 했어요. 왜냐면 곡식가루를 세 개의 도량으로 많이 가져와서 만든 반죽인데 거기에 누룩을 넣어서 부풀게 했다는 거에요. 긍정적인 의미에요? 부정적인 의미에요? 여기서 부정적인 거예요.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누룩을 제하여 버리라는 거예요. 지금 음행하는 사람을 너희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 왜 거기 두고 있느냐? 제하여 버리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부정적인 죄로 나오죠.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6:6-12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그들이 자기들끼리 논의하여 말하기를. “이는 우리가 어떤 빵도 챙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더라.⋅⋅⋅내가 너희에게 빵에 관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며,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너희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것임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니 어찌 된 일이냐? 그제야 그분께서 그들에게 빵의 누룩이 아니라 다만 바리새파 사람들의 교리와 사두개파 사람들의 교리를 경계하라고 분부하셨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였더라.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누룩 / 거짓교리 / 상징
✔ 영적인 말씀도 사사로이 의미를 추가하거나 왜곡하면 안 됨.
그 다음에 마태복음 16장 6-12절에서 보면, 같은 마태복음에서 보자고요. 마태복음 13장에서 누룩을 얘기 하셨는데 바로 세장 뒤로 가서 16장에서 또 말씀하시죠.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어요. 자, 제자들의 습관적인 잘못이 뭐냐면? 자기 생각을 넣어서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자기들끼리 논의하여 말하기를. “이는 우리가 어떤 빵도 챙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아, 우리가 빵을 안 챙겨서 그러시나?. 예수님이 우리가 빵 안챙긴 걸 알고 지금 뭐라 하시나봐 ” (제자들은) 완전 다르게 생각을 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빵에 관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며’ 말한 적이 없으니까 빵에 관해 말한것이 아니란 걸 먼저 부정해 주시고 말 그대로,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너희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것임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니 어찌 된 일이냐?’ 너무 답답하시니까 이렇게 말씀 하신 거에요. 그대로 인용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라는 말이다. 하시면서 이제 해석해 주십니다. ‘그제야 그분께서 그들에게 빵의 누룩이 아니라 다만 바리새파 사람들의 교리와 사두개파 사람들의 교리를 경계하라고 분부하셨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였더라.’ 이 누룩이 뭐에요? 거짓 교리에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의 거짓 교리를 조심하라는 거에요. 부정적이죠? 그러니까 여기서는 상징이라는 것을 쓰셔 가지고 이것을 알려 주신 거예요. 누룩이 거짓 교리의 상징인 거예요. 이렇게 상징을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해석해 주시는 거죠. 그럼 그대로 보면 돼요. 그런데 마태복음에 있는 거짓 교리라고 한 것을 복음이라고 해버리는 거에요. 근거가 어디 있냐? 이거(마태복음 16장 6-12절)예요. 성경에서 단 한 군데도 누룩을 복음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자기 생각에 좋아서 아무 근거 없이 복음이라고 한 거에요. 그게 사사로운 해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여러 근거를 제시하잖아요. 누룩은 부정적이다. 죄와 거짓 교리같은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말씀도 사사로운 의미를 추구하거나 왜곡하면 안된다. 아무리 상징이라도 사사로이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24-30
그분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제시하시며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남자에 비유 되느니라⋅⋅⋅ 그러나 그가 이같이 말하였더라. “아니니라. 너희가 독보리들을 모아 오는 사이에 그것들과 함께 너희가 밀까지 뿌리 뽑을까 우려 하노라. 양쪽 다 수확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그리하면 수확의 때에 내가 수확꾼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독보리들을 한데 모아서 그것들을 불태우기 위하여 그것들을 다발들로 묶으라. 그러나 밀은 나의 곳간으로 모으라.’ 하겠노라.”
마태복음 13장을 보겠습니다. 앞에서 여자, 겨자씨, 곡식 가루, 이 세가지를 해석하면 된다 했죠? 그러면 (여자가) 누룩을 어디에다 넣었는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앞에서랑 동일한 장입니다. 여기서도 하늘의 왕국 비유, 또 동일한 비유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그랬어요. ‘그분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제시하시며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남자에 비유 되느니라’ 했어요. 쭉 설명합니다. 좋은 씨가 자라서 나중에 밀이 되거든요. 그런데 원수가 와 가지고 독보리를 뿌리고 갔는데 그 독보리들이 자라서 커집니다. 그러면 밀과 독보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놔둬라. 지금 자라고 있을 때 뽑으면 안 된다. 다 자라면 수확을 해라.” 이렇게 말씀 하시죠. ‘그러나 그가 이같이 말하였더라. “아니니라. 너희가 독보리들을 모아 오는 사이에 그것들과 함께 너희가 밀까지 뿌리 뽑을까 우려 하노라. 양쪽 다 수확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그러면 보세요. 좋은 씨는 밀이 되고 잘못된 것은 독보리가 된 거죠. ‘그리하면 수확의 때에 내가 수확꾼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독보리들을 한데 모아서 그것들을 불태우기 위하여 그것들을 다발들로 묶으라. 그러나 밀은 나의 곳간으로 모으라.’’ 이렇게 했어요. 지금은 이것을 따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마태복음 13장 38절에서 잘 해석을 해주셨거든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라. 그 다음에 독보리들은 그 사악한 자들의 자녀들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마귀의 자식들을 말하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라. 그러나 독보리들은 그 사악한 자의 자녀들이요,
그러면 밀은 빵을 만드는 곡식이란 말이에요. 곡식 가루는 밀로 된거죠? 그런데 바른 왕국의 자녀들이 있는 곳에 이 여자가 무엇을 넣었어요? 이 여자에 대해서는 제가 계시록 17, 18장을 다 인용해야 되는데 짧게 인용을 하겠습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3
⋅⋅⋅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누룩의 의미 ㅡ 부정적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5;1-2, 6-8
음행이 너희 가운데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즉 누군가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 너희의 자랑함이 좋지 않도다. 너희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므로 오래된 누룩을 제하여 버릴지니, 너희가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자들로서 하나의 새 덩어리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한 여자가 가져가서 곡식 가루 세 도량안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느니라.’ 저희 신학원에서 마태복음 설명할 때는 이 여자와 세 도량까지도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지금은 간단하게 설명할께요.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뭐를 넣었어요? 거짓 교리와 죄를 넣었어요. 그러면 전체가 부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부푸는게 안 좋은 거에요. 그런데 개신교 중에 일부는 이 누룩을 복음이라고 생각하니까 부푼것은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아, 복음으로 교회가 성장한 거야.” 하면서 이걸 좋게 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쁘게 성장한 거예요. 그리고 이 여자에 대해서는 특히 신약성경에 보면 두 여자가 나오는데 한 여자는 순수한 교회, 처녀로 비유가 되고, 또 한 여자는 나쁜 여자, 음녀로 비유가 되는데 이 음녀는 계시록 17장 18장에 나오는 로마카톨릭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한 시간은 더 써야 될 정도라서 그만큼 안 좋은 여자라는 건 잘 아시겠죠? 왜냐하면 잘못된 것을 숨겨서 왕국의 자녀들이 있는 곳에 잘못된 것을 집어 넣었으니까요. 그 여자가 그렇게 했더니 잘못 성장해서 커졌다는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이 부정적인 의미를 바로 겨자씨의 비유와 함께 바로 같은 장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시면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 제가 겨자씨 비유 설명을 조금 더 정확하게 알려 드릴게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1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그것은 정녕 모든 씨들 중 가장 작은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자랐을 때,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느니라. 그렇게 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나무의 가지들에 깃드느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7:20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는 이 산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저곳으로 옮겨지라.’ 할 것이며⋅⋅⋅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겨자씨 / 믿음 / 상징
마태복음 13장 31-32절. 사실 겨자씨 비유가 먼저 등장하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그것은 정녕 모든 씨들 중 가장 작은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자랐을 때,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느니라. 그렇게 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나무의 가지들에 깃드느니라.”’ 라고 했어요. 이것도 (개신교에서) 어떻게 해석해요? “아, 복음이 들어갔더니 엄청나게 큰 나무가 돼서 즉, 확장이 돼서 교회 성장을 이뤘구나. 역시, 복음이 있으면 교회가 커져.”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죠. 그러나 일단 우리가 해석해야 되는게 밭, 겨자씨, 그 다음에 공중의 새들을 먼저 해석해야 되고 이 채소가 어떻게 나무가 됐는지 이 부분도 설명을 드려야 됩니다. 자, 마태복음 17장 20절, 같은 마태복음이에요.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는 이 산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저곳으로 옮겨지라.’ 할 것이며’라고 했어요. 지금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사실 이 구절 유명하잖아요.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 겨자씨를 믿음에 대한 상징으로 쓰셨어요. 믿음이에요. 그런데 겨자씨를 복음으로 보는 것은 크게 해석에서 벗어난 거죠. 이것을 복음으로 봤으니까요. 겨자씨는 복음이 아니에요. 성경 어디에도 겨자씨가 복음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제시하지 않고서 이걸 복음으로 본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겨자씨가 복음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얘기하시잖아요. 그럼 믿음으로 봐야 됩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1
그분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제시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늘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그것은 정녕 모든 씨들 중 가장 작은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자랐을 때,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느니라. 그렇게 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나무의 가지들에 깃드느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4
그리고 그가 씨를 뿌렸을 때 어떤 씨들은 길가에 떨어졌기에 날 짐승들이 와서 그것들을 삼켜 버렸느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19
어떤 이가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그때 그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 가느니라. 이 사람이 길가에서 씨를 받아들인 자라.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공중의 새들, 날짐승들 / 사악한 자, 마귀들 / 상징
다음으로 마태복음 13장 4절에 보면 새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13장이에요. ‘그리고 그가 씨를 뿌렸을 때 어떤 씨들은 길가에 떨어졌기에 날 짐승들이 와서 그것들을 삼켜버렸느니라.’ 이 날짐승들을 또 뭐라고 했냐면? ‘어떤 이가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그때 그 사악한 자가 와서’ 사악한 자, 마귀로 설명을 해요.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 가느니라.’ 라고 설명을 하는 거에요. 날짐승들이 와 먹어버리고 촥 채가고 이런 것들을 사악한 자라고 설명하고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서도 사탄, 마귀들, 악한 영들로 비유를 합니다. 그러면 공중의 새들이 긍정적인 좋은 게 아니죠? 같은 장에서도 공중의 새들은 굉장히 부정적인 마귀들로 비유가 돼요. 만약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것이 좋은 교회 성장이라면, 복음이 들어왔을 때 교회가 커지면서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되는데 여기서는 마귀들이 들어오니까요. 누룩과 일맥상통한 것이 들어오니까 비정상적인 성장, 잘못된 성장이 되는 거죠. 겨자씨가 밭에 심겨졌더니 정말 큰 나무가 돼서 마귀들이 깃드는 거에요. 계시록 17장 18장에도 보면 그 음녀가 있는 그곳을 새장이라고 얘기하면서 “온갖 악한 새들의 소굴이다.”고 악한 영들과 새들을 같이 언급하면서 말합니다. 성경에는 새들을 굉장히 부정적인 영으로 악한 영들로 비유한 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경으로 해석해야죠? 그것도 심지어 같은 문맥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마태복음 13장 문맥에서도 이 날짐승들을 사악한 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 공중의 새들을,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걸로 해석을 하냐는 거예요. 누가 그렇게 해석을 하죠? 누가 그런 권한을 줬어요? 그건 사사로운 해석입니다. 성경으로 제시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다른 곳과 충돌이 없어야 됩니다. 자, 보세요. 아까 앞에서 마태복음 13장 38절을 추가로 설명을 드렸어요. 밭은 뭐에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라. 그러나 독보리들은 그 사악한 자의 자녀들이요,
밭은 세상이요.라고 마태복음 13장, 같은 장에서 예수님이 설명해 주시잖아요. 세상은 하나님께서 악하게 보시는 곳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할 곳으로 세상을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독보리를 모아서 이제 심판을 하실 겁니다. 자, 세상에 뭐가 뿌려졌어요? 믿음이 뿌려졌어요.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되는데 세상을 믿습니다. 지금 정치 활동 기독교에서 엄청 열심히들 하죠? 세상이 점점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거라고요. 잘못 믿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세상은 악하다고 하셨어요. 성경에서 세상은 결국 더 악해진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믿을 수 없고요, 세상은 난파된 배와 같이 점점 침몰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구원 받아서 이제 천국을가야지. 세상을 믿으면서 난파된 배, 침몰하는 배를 수리하려고 하면 안 되요. 그런데 수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잘못된 믿음, 잘못된 교리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뿌렸더니 어떻게 돼요? 비정상적으로 성장합니다. 왜요? 겨자는 여러분도 잘 알죠? 아주 조그만 채소예요. 그런데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버려요.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채소가 나무가 될 수 있나요? 상추가 자라서 나무가 된거 보신적 있으세요? 브로콜리가 자라서 나무가 된거 본 적 있으세요? 아니에요. 채소는 나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정상적으로 성장해서 나무가 된 거에요. 너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벨 수가 없는 나무가 된 겁니다. 이것이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교리로 인한 비정상적인 성장을 말하는 거에요. 로마카톨릭을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큰 교단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교회 성장이 잘된 곳이 좋은 곳이라면, 로마카톨릭이 제일 좋아야 되는데, 9카톨릭을 포함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들을 보세요. 얼마나 문제들이 많고 잘못된 교회들이에요? 특히 교리들이요. 대부분 은사주의 교리가 있습니다. “아,예수님 믿으면 복받고 잘되고 부자되고 병이 낫고…등등. 이런 것들이 있는 거예요. 성경에 그렇게 돼 있는게 아닌데도요. 바울도 아무것도 없이 외투 하나도 없이 죽었고,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베드로도요. 12사도들 중에 순교 안 당한 사람이 있어요? 결국 사도요한도 유배지에서 순교를 한 겁니다. 야고보도 제일 먼저 순교한 사도이고요. 스데반도 순교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부자가 됐나요? 바울은 나중에 자기가 질병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사탄의 가시라고 하죠. 제발 빼 달라고 세 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NO” 하셨어요. 디모데도 위장병이 있으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물만 쓰지 말라.”고 얘기를 해 주죠. 어쨌든간에 비정상적인 성장에는 마귀들이 깃든다는 거예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요. 제가 여기서 성경에서 성경으로 매치만 해 준 거에요. 완전히 다르죠? 엄청 긍정적으로 보던 해석이 완전 부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마태복음 13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이에요. 그런데 완전히 긍정적으로 해석 한거죠. 이게 사사로운 해석입니다. 그래서 상징이나 비유조차도 기록된 그대로 해석해야 됩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기록된 그대로, 내가 개입하지 않는다. 사사로운 해석을 넣지 않는다. 첨가 삭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1:12,16,20
⋅⋅⋅나는 일곱 금 등잔대들을 보았는데⋅⋅⋅또한 그분은 자신의 오른손 안에 일곱 별들을 가지셨더라⋅⋅⋅그리고 그분의 용모는 태양이 그의 기세로 빛나는 것 같았더라⋅⋅⋅내가 보았던 나의 어른손 안에 있는 일곱 별들과 일곱 금 등잔대들의 신비라. 일곱 별들은 일곱 교회들의 천사들이라. 그리고 네가 본 일곱 등잔대들은 일곱 교회들이라.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일곱 금 등잔대들 일곱 교회들 상징
일곱 별들 일곱 교회들의 천사들 상징
그분의 용모 태양 직유법
✔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예시
✔ 비유와 상징도 성경이 직접 해석함
간단한 예들 몇 개 드리고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 1장 12, 16, 20절에 보면 일곱 금 등잔대가 나오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곱 별들을 가지셨죠. 요한계시록을 신천지가 이상하게 비유풀이를 해서 이단이 됐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해석할 필요가 없어요. 성경이 해석을 해 주니까요. ‘내가 보았던 나의 오른손 안에 있는 일곱 별들과 일곱 금 등잔대들의 신비라. 일곱 별들은’ 뭐에요? 일곱 교회들의 천사들이다.제가 해석할 필요 없어요. 성경이 해석해 줬잖아요. ‘일곱 별들은 일곱 교회들의 천사들이라. 그리고 네가 본 일곱 등잔대들은 일곱 교회들이라.’ 다 해석 됐네요. 뭐에요? 이런 상징들이 그대로 해석 된 거에요. 그리고 ‘그분의 용모는 태양이 그의 기세로 빛나는 것 같았더라’ ~와 같다. 이것은 직유법이에요. 예수님의 용모는 태양과 같다. 태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럼 뭐에요? 비유에요. 직유법이잖아요. 그럼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 거에요. “아, 이런 비유가 될 만큼, 이런 비교가 될 만큼 강렬하셨구나!” 라고 비교를 하면 되는 거죠. 그냥 그대로 수사법 그대로 인지하면 됩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10:26-28
그러나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너희가 나의 양들이 아닌 까닭이라. 나의 양들은 나의 음성을 듣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라. 그런즉 그들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내지 못할 것이라.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양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상징
영생을 가진 사람들
✔ 성경이 스스로 상징하는 바를 설명함
요한복음 10장 26-28절. ‘그러나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너희가 나의 양들이 아닌 까닭이라.’ 그러면서 갑자기 너희는 나의 양들이 아니다. 예수님이 지금 양들이라 했을 때 네 발 달리고 매애~~하는 양털을 가진 진짜 동물들을 말했을까요? “야, 너희는 왜 사람이야? 동물이 돼야지. 동물이 되지 않으면 나를 믿을 수 없어.” 이렇게 하신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양들은 명백하게 상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해석해 주시는 거예요. ‘나의 양들은 나의 음성을 듣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라.’ “아, 양들은 어떤사람들을 비유로 하는 거냐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에게 영생을 받은 그런 사람들을 양들이라고 하는구나!” 상징이죠. 그냥 성경에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 거에요. “아, 양들은 사실 이긴 자들을 말해.”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사사로운 해석해 돼 버리는 겁니다.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6:53, 63
53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 안에 생명이 전혀 없느니라.
63 되살아나게 하는 것은 영이라.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들, 그것들은 영이요, 그것들은 생명이라.
✔ 로마카톨릭은 문자적인 말씀은 영적으로, 영적인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 영적인 해석도 성경 스스로 설명한다.
요한복음 6장 53절, 63절도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구절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너희가 인자의 살, 예수님의 살이죠. 예수님을 말하는 거예요.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 안에 생명이 전혀 없느니라.’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는 “자 , 내 살 줄게. 자, 봐봐. 물리적인 살인데 뜯어 먹어. 자, 여기 내 피잖아. 마셔.” 이렇게 물리적으로 말씀하신게 아니고 명백하게 비유로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예수님 스스로가 설명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도 이 비유를 물리적인 살 그대로, 물리적인 피 그대로 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교회가 있어요. 카톨릭 교회입니다. 진짜 물리적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많길래, 한 10억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매주 마시냐고요? 또 예수님의 살이 얼마나 많길래 (매주 먹냐고요?) 살이 엄청 찌셨나 보죠? 그럴 수가 없어요. 물리적인 살과 물리적인 피를 그렇게 먹을 수 없어요. 분명히 이것은 비유에요. 분명히 예수님이 뭐라고 했냐면?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자기 육신 얘기를 하시는게 아니고 육신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거에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들, 그것들은 영이요, 그것들은 생명이라.’ 내가 영적으로 말했다고 분명히 말하셨어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6:35,4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생명의 빵이라. 나에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느니라.’
✔ 성경이 스스로 상징하는 바를 설명함
비유 / 원관념 / 수사법
⇓ ⇓ ⇓
인자의 살을 먹음 예수님께 오는 것 은유와 상징
인자의 피를 마심 예수님을 믿는 것 은유와 상징
그리고 또 설명해 주세요. 방금 앞에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예수님께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 안에 생명이 전혀 없느니라.’고 하셨잖아요? 또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생명의 빵이라.’ 지금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라.고 얘기하시죠. 예수님이 빵처럼 생겨서가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밀가루로 만들어지신게 아니잖아요? 이것은 명백한 상징이에요. ‘나에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할 것이요,’ 53절에 있는 먹는다는 표현 대신 여기서는 나에게 오면이라고 하셨어요.. 또 마신다는 표현 대신 뭐 쓰셨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47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느니라.’’ 앞에 53절에서는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여기(47절)는 나를 믿어야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것을 비유하신 거예요. “너희가 물리적인 빵을 먹듯이 너희가 나를 믿고 영접을 하고 받아들이면 너희에게 생명이 있는 거야.”.라고 설명을 해주시는 겁니다. 이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백하게 구원의 과정을 쉽게 예수님이 알려 주시는 겁니다. “아, 빵을 먹는 것 같이, 뭘 마시는 거 같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거구나! 간단하네. 예수님을 믿으면 되네.” 이렇게 이해하기 쉬우라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든 거에요. “내가 밀가루로 만든 빵이다. 내 살 뜯어 먹어라. 인육 먹어라.” 이렇게 하신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비유도 상징도 성경에 있는 그대로만 보면 돼요. 이 수사법을 그대로 인정하는 거에요. 그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글이니까요.
성경해석학 제1법칙 : 문자적 해석의 법칙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18:24
이에 예수님께서 그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친히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재물들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는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라.” 그러자 그것을 들은 자들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하였더라. 이에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것들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 하셨느니라.
비유 / 원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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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
마지막으로 이 부분을 보고 마치도록 할께요. 누가복음 18장 24절을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 그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친히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재물들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는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라.”’ 자, 보세요. 여기는 수많은 부자들이 싫어하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라.”’라고 예수님이 말했기 때문에요. 이 구절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림처럼 보여 주는 수사법이죠. 당연히 낙타는 바늘귀에 못 들어가니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려고 과장법을 통해서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이 보여주는 거에요. 커다란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에 들어가겠어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것들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이렇게 알려 주시잖아요.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과장법이라는) 수사법을 쓴 거에요. 그런데 부자가 이걸 보면 너무 싫어하겠죠? 그러니까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부자들을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이 말씀을 왜곡합니다. “아, 여기서 사실 바늘귀는 진짜 쪼끄만 바늘귀가 아니라 히브리어 헬라어에서 보면 어떤 작은 문을 말합니다. 낙타가 들어가는 조그만 문이 있거든요. 그 문을 헬라어에서는 바늘귀라고 표현을 한 겁니다.” 이렇게 왜곡하는 거예요. 왜요? 부자들이 교회 안 떠나게 하려고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왜곡하는 거죠. 아니 있는 그대로 바늘귀로 봐야지 낙타가 통과를 못 한다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중에 또 설명을 해줍니다. 이 문맥들을 읽어 보세요. ‘재물들을 가지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게 어렵다.’라고 했고요. 그런 다음에 제자들이 물으니까 한번 더 설명해 줍니다. ‘재물들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보세요. 단순 소유로 못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왜? 아브라함도 재물이 많았어요. 욥도 재물이 많았어요. 그렇죠? 다윗도 재물이 많았어요. 그래서 단순 소유로만 못 들어가는게 아니라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라고 얘기를 하신 겁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글로 써진) 바늘귀를 뭐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와서 꼬아 버리고 왜곡해 버리고 바꿔 버리면 성경 변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해석 자체가 안된다는 거죠. 보세요. “불가능한데 하나님께는 가능하다. 설령 재물을 신뢰하는 부자라도 회개하고 나한테 오면 내가 구원 시켜준다.” 하나님께는 가능하다고 알려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재물들을 신뢰하는 사람들한테는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면 됩니다.
자 이렇듯 제가 오늘 첫 시간에 준비한 것들, 문자적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경기록들을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여기에 사사로운 해석을 넣지 않고 첨가나 삭제나 왜곡 시키지 않는 것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성경해석에서) 가장 기본이고 문자적 해석을 했을 때는 어떤 왜곡의 여지가 없고 또 사사로운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란 걸 배웠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이고요. 그럼 오늘 (성경 해석의) 제1원칙을 잘 이해하셨기를 바라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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