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예표의 법칙 II - 세부 지침
-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5월 15일
- 27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28일
[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예표의 법칙 II - 세부 지침
2024.05.15.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예표의 법칙II - 예표를 찾는 세부적인 지침들
✔개론 => 예표의 법칙 -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를 찾으라.”
✔ 세부 지침 => 예표의 법칙II - 예표를 찾는 세부적인 지침들
지난 시간에 예표의 법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강의가 나가고 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또 굉장히 좋아하시고 더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질문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은 예표의 법칙 두번째 파트로 전 시간 보다는 더 상세하게 또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들이 있는지 세부적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어떻게 봐야 되는지 또 잘못 보면 어떻게 되는지도 함께 제시하겠습니다.
(그림) 모형 원형
앞 시간에 예표에는 모형과 원형이 있다고 말씀 드렸죠. 하나님께서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미리 그려 놓은 그림이 모형인데 당연히 원형인 실체랑 100% 똑같지는 않죠. 그런데 이것이 그림자, 모형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만큼 유사점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겁니다.
예표의 법칙
✓ 예표는 풍유라는 수사법을 전제로 함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4:24
이것들은 풍유니라. 이는 이들이 두 언약들이기 때문이라. 시나이산에서 나온 이는 속박을 불러일으키는 자니, 곧 아갈이라.
풍유[allegory] :어떤한 주제 A를 말하기위하여 다른 주제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 비유법의 하나. 비유 = parable, 풍유 = allegory
갈라디아서 4장 24절, 지난 시간에도 제가 풍유룰 설명드리면서 시나이산과 예루살렘, 두 언약을 비교 해 드렸습니다. 이 풍유, 알레고리의 뜻은 ‘어떤한 주제 A를 말하기위하여’ A라는 원형을 미리 모형으로 알려주기 위해서 ‘다른 주제B를 사용하여’ 구약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B에 해당되겠죠. A는 대부분 신약에 해당 되고요. 그래서 신약에 있는 A를 말하기 위하여 구약의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있는 언어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사법을 다양하게 쓰셨습니다. 제가 성경해석학의 가장 첫 시간에 우리가 문자적 해석을 기본으로 잡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문자적으로 해석을 할 때 비유나 풍유나 예표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이것은 문자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성경과 성경으로 해석해야만 정확한 해석이 나온다는 거였습니다. 모든 수사법, 도치, 의인화, 비유, 풍유, 등은 성경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풍유와 비유는 조금 다릅니다. 풍유는 비유법이라는 큰 범위 안에 포함 되어 있고 주로 하나의 서사나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서로 비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이솝 우화같이 어떤 풍자한 이야기처럼 알레고리를 사용합니다. 비유는 영어로 parable, 풍유는 allegory가 되겠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이것들은 풍유니라.’ 구체적으로 알레고리 수사법을 사용했다고 알려주죠.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는 신약에 있을 일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해서 구약에 있는 여러 사건들에다, 나중에 원형이 등장하면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미리 그려 놓으셨고 암시해 놓으신 겁니다. 그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성경공부이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실제 예시들을 보면서 주의 사항들을 세부적으로 알기 전에 먼저 여러분에게 잘못된 비유 풀이의 예시를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 잘못된 비유 풀이의 예시 >
구원파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대표
“영적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이 리브가를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삭 = 하나님, 리브가 = 예수님, 에서 = 자기 열심으로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 야곱 =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
그러나 창세기 27장에서 리브카는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여 이삭을 속이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을 종용하여 하나님을 속이게 만든다는 불경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일단은 신천지가 가장 잘못된 비유풀이의 대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죠. 비유풀이를 통해서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서 그럴듯한 몇 개의 성경 구절을 가지고 잘못 적용합니다. 결론은 “이만희가 참된 목자다. 이만희가 성경에서 말하는 바로 그 이기는 자다.” 모든 좋은 것들은 다 이만희에게 갖다 붙이는데, 이는 성경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가져다가 사사로운 해석을 집어 넣은 결과입니다. 자세한 것은 세부사항의 법칙에서 다뤘기 때문에 오늘은 주요하게 다루지 않겠고요. 신천지 말고도 비유를 잘못 풀이하는 곳들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인 구원파 기쁜 소식 선교회 박옥수 대표가 한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영적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영적 비밀, 이라는 이 말 자체가 개역성경의 잘못된 번역의 잔재입니다. 비밀은 영어로 secret인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박대표는 비밀을 지켜야지 왜 비밀을 사람들에게 누설합니까? 그렇죠. 개역성경에서 비밀이라고 돼 있는 것은 사실상 영어로는 mystery 입니다. 이것은 잘 알다시피 신비를 말하는 겁니다. 불가사의한 것,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놀라운 것으로,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개역성경에서는 디모데전서 3장 16절의 ‘예수님이 성육신한 것’을 “경건의 비밀”이라고 했어요. 비밀이라면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면 안 되는 거죠. 이것은 mystery of godliness, 경건의 신비로 아주 신비로운 현상이고 우리가 널리 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옥수 대표의 영적 비밀이라는 말 자체가 개역성경의 오역의 잔재입니다. 어쨌든 본인만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겠다라는 식으로 접근을 해서 갑자기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이 리브가를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하고는 ‘이삭 = 하나님, 리브가 = 예수님, 에서 = 자기 열심으로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 야곱 =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대단한 영적 비밀인 것으로 얘기를 해요. 제가, 사실은 여러분께 이렇게 잘못된 방법의 예시를 알려드리려는 이유가 뭐냐면요? 박옥수 대표처럼 이렇게 말했을 때는 적어도 창 27장에서는 상식적으로도 말이 돼야 되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정말 이 사람 말대로 적용을 해서 창세기 27장을 본다면, 리브가가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 야곱에게 거짓으로 털까지 붙이게 하고 거짓말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빼앗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리브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면 ‘창세기 27장에서 리브카는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여 이삭을 속이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을 종용하여 하나님을 속이게 만든다는 불경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전혀 예표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게 (상식적어로도)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에요. 이것은 예표로 볼 수도 없고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추면 안 돼요. 모든 잘못된 해석의 특징은 사사롭고 자의적이고 자기 생각을 넣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으로 입증된 것이 아닙니다. 자, 문맥을 읽어 봐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죠.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축복을 빼앗지도 않으세요. 원래는 형 에서의 축복을 야곱이 빼앗은 건데 그런 식으로 예수님은 빼앗도록 시키시는 분도 아니시라는 거죠.
< 잘못된 비유 풀이의 예시 >
구원파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대표
“영적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이 리브가를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 축복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삭 = 하나님, 리브가 = 예수님, 에서 = 자기 열심으로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 야곱 =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
[표준킹제임스성경] 잠언 26:7
절뚝거리는 자의 두 다리는 대등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들의 입안에 있는 비유도 그러하니라.
그래서 잠언 26장 7절에는 잘못된 이런 비유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절뚝거리는 자의 두 다리는 대등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들의 입안에 있는 비유도 그러하니라.’ 박옥수 대표는 어떤 한 부분만 강조를 해서 억지로 비유로 풀었어요. 그런데 이 문맥의 상황에서 보면 대등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절뚝거리는 것처럼 맞지가 않는 겁니다. 서로 일대일 대치가 되면 대등하게 이어져서 성경이 보여주는 그대로 누가 봐도 아, “이것은 예표다.” 성경적으로 입증이 됩니다. 그런데 자의적인 해석, 사사로운 해석이 들어가면 결국에는 ‘절뚝거리는 자의 두 다리’처럼 안 맞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여러분이 주의하라는 거죠. 그리고 사실상 예표는 비유도 포함 되지만, 비유풀이는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 드립니다.
예표의 법칙 - 실제적인 조언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후서 1:20, 3:16
우선 이것을 알지니, 성경 기록에 있는 예언은 어떤 것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없도다 ... 그의 서신들에는 이해되기 힘든 것들이 일부 있는데, 배우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을 왜곡한 것같이 그들이 그의 서신들도 왜곡하여 그들 자신의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1장 20절과 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선 이것을 알지니, 성경 기록에 있는 예언은 어떤 것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에 있어서, 특히 미리 말씀하신 모든 것에 있어서 사사로운 해석을 넣지 않으셨기에 꼭 성경으로 입증 돼야 됩니다. 개인적인 해석이 아니라요. 그래서 성경 기록들을 잘못 왜곡을 하면 ‘그들 자신의 멸망에 이른다’고 하셨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됩니다.
예표의 법칙 - 실제적인 조언
성경적 예표 ≠ 자의적 비유 풀이
성경적 예표
✓ 일관된 유사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찾음
✓ 실제 역사를 통해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보여주심
자의적 비유 풀이
✓ 성경적으로 맞지않는 비유를 억지로 해석함
✓ 실제역사를 부정하고 영적인 의미만을 강조함
예표를 이렇게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성경적인 예표는 일관된 유사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성경으로 명백하게 입증이 되는지 찾는 겁니다. 일단은 성경에서 기록한 명백한 예표들이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분명한 예표와 모형들은 우리가 이미 봤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성경과 비교를 했을 때 일관적인 유사성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예표라고 하죠. 그런데 이것을 나혼자 대단한 계시를 받은것 처럼 “내가 비밀을 풀어 주겠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죠. “하나님이 해주신 그림 조각들을 우리가 찾아서 퍼즐 조각들을 맞추자.” 이런 식으로 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실제 역사를 통해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실제 역사라는 것이 중요해요. 실제 역사를 “세가지 적용의 법칙” 시간에도 다뤘지만 우리가 역사적 적용을 먼저 하고 그대로 봐야 됩니다. 야곱과 에서와 이삭과 리브가의 실제적인 관계,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봐야지 이 실제적인 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자의적인 영적인 부분만 추출한다? 그렇게 하면 왜곡이 되는 거에요. 이런 풍토가 한국 기독교에 유달리 편재해 있어요. 한국 교계에서 성경 공부를 잘 안 가르칠 뿐만 아니라 무슨 큐티 모임이나 청년들의 셀모임을 하다 보면 말씀을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때 정말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합니다. 이때 바른 성경 교사가 있어서 위험한 것을 바로 잡아 주지 않으니까 엄청나게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 합니다. 그런 풍토이기 때문에 유달리 한국에서 잘못된 비유풀이가 성행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 자의적 비유 풀이는 어떤 특징이 있느냐? 성경적으로 맞지않는 비유를 억지로 해석합니다. 그러니 자기 생각을 넣은 부분이 성경으로 입증이 안 되고 오히려 성경과 충돌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배운 조화의 법칙과도 어긋납니다. 어떤 해석이든 성경과 충돌되면 안 된다고 배웠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속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단 한 구절도 없죠. 예수님은 그러실 수도 없고 그러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예표인 리브가가 이삭을 속여요? 리브가가 이삭을 속인 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일 수가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리브가와 이삭은 부부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는 부부 관계도 아니에요. 그리고 에서와 야곱은 형제잖아요? 에서는 자기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사람이에요. 그럼 구원받지 않은 거죠?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어떻게 형제가 됩니까? 성경으로 보면 형제가 아니죠. 그러니까 이 해석이 안 맞다는 겁니다. 이렇게 한 부분만 강조를 하다 보니까 나머지가 안 맞고 대등하지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역사를 기반으로 역사적 적용을 해야 되는데 실제 역사는 완전히 무시하고 어떤 특정한 사건들만 가지고 적용을 해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매우 주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나눌 때 바르게 나눌 수 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2:15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서,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일꾼으로서 나타내도록 공부하라.
그래서 예표를 찾을 때 주의사항과 또 어떤 방법으로 찾을 것인지 중요한 것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공통점이랑 차이점을 잘 나눠야 됩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바르게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혼합을 시키면 안 돼요. 같은 것은 같은 것으로,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 나눠야 돼요.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는 방법은 ‘바르게 나누는 것’ 이라고 강조하셨어요. 딤후2:15절이 성경을 공부하라고 하신 유일한 구절이에요. 여기에서 어떻게, 왜, 무엇을 공부해야 되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는 이유는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서,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일꾼으로서 나타내도록 공부’하기 위함입니다.
예표의 법칙
-원형은 모형보다 위대하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9: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가올 좋은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지지 아니한, 즉 이런 건물 중 하나가 아닌 더 위대하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우선 기억해야 되는 것은 ‘원형은 모형보다 위대하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모형과 원형이 동등해 버리면 이미 모형이 실체가 되버리는 거죠. NO! 모형은 실체를 나타내 주기 위한 figure일 뿐 어떤 특징을 보여 주는 거예요. 앞 시간에도 예를 들어 설명 드렸지만 어떤 유명한 사람이나 만화 캐릭터 같은 피규어는 완전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많은 특징들을 반영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BTS 피규어를 보고, 진짜 BTS라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하지는 않겠죠? 그래서 모형은 특징을 반영 해 주는 것 일뿐이고요. 모형보다 원형이 훨씬 더 위대합니다. 히브리서 9장 11절, 성경에서 ‘성막은 모형이다, 그림자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셨죠? ‘그리스도께서 다가올 좋은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구약 때 성막은 한계가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다가올 좋은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지지 아니한, 즉 이런 건물 중 하나가 아닌 더 위대하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셨다.’고 하시죠. 구약에서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진 성막인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은 더 위대하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원형이 더 위대하고 훨씬 더 좋죠? 제가 마지막 결론에서 또 언급을 하겠지만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지지 아니한.’ 이 부분을 꼭 기억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결론 때 좀 더 설명을 드릴게요.
예표의 법칙
-원형은 모형보다 위대하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0:1
이는 율법이 다가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들의 정확한 형상은 아니기에 그들이 해마다 지속적으로 바친 그 희생 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10장 1절, 다가올 좋은 것들은 미래에 있을 거죠? 그래서 당연히 원형은 미래에 등장합니다. 모형은 미래에 원형이 등장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거고요. ‘다가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 성막이 그림자였다고 합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반영은 해주지만 ‘그것들의 정확한 형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지속적으로 바친 그 희생 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었다.’라고 하죠. 그러나 실체이신, 예수님, 원형이 오셨을 때는 완전하게 해주신다는 거죠.
예표의 법칙
-원형은 모형보다 위대하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9:23-24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것들로 정화될 필요가 있었느니라.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 그 자체는 이것들보다 더 좋은 희생 제물들로 정화될 필요가 있었느니라.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손들로 지어진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셨고, 오히려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니, 우리를 위하여 지금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타나 계시니라.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 하늘들에 있는 것들을 보여 주셨는데 그게 원형이고 그 다음에 땅에 있는 성막이 모형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하늘이 세 하늘들로 나눠져 있다고 성경에 기록됐는데 성막도 가로로 눕혀서 보면 세 등분으로 나눠져 있고요. 나중에 에스겔서 40장에서 48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직접 지으시는 천년왕국 성전도 3층으로 돼 있는데 이것도 세 하늘들을 보여 주시는 거죠. 이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동물의 피로서 정화될 필요가 있었어요.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 그 자체는 이것들보다 더 좋은 희생 제물들로 정화될 필요가 있었느니라.’ 그러니까 실체 자체는 동물의 피보다 훨씬 더 좋은게 필요한거죠. 그게 바로 예수님이고요. 하늘 그 자체 안으로 예수님이 들어가셨다는 겁니다. 모형 안으로 들어가신게 아니라요.
예표의 법칙
-모형은 원형과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37:28
... 이에 그들이 요셉을 구렁에서 끌어 올리고는 요셉을 이스므엘족들에게 은화 스무 개로 팔았더라 ...
마태복음 27:9
그때 예언자 예레미-야에 의하여 언급된 것이 성취되었더라. 말씀하시기를, “그러자 그들이 값이 매겨진 자의 가격, 곧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속한 자들이 값을 매긴 자의 가격인 은화 삼십 개를 취하였도다.
제가 강조드리는 부분이, 모형은 원형과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서 은화로 팔린 것은 예수님이 유다 이스카리옷에 의해서 은화로 팔린 것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또 형제 유대인들에게 팔려 버린 것과도 유사성이 있고요. 그런데 요셉은 ‘은화 스무 개’에 팔렸고 예수님은 ‘은화 삼십 개’에 팔렸습니다. 그러니까 유사성은 보여 주지만 예수님의 가격이 조금 더 높아요.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표를 볼 때 유사성에만 집중하면 돼요. 왜냐면 어차피 요셉 자체는 예수님은 아니잖아요? 요셉을 통해서 미리 예수님의 그림을 보여 주셨다라는 것을 알면 되죠. 그래서 구약과 신약이 하나라는 겁니다. 우리가 신약을 통해 봤더니 “아, 신구약 다 동일한 저자가 쓰셨구나.” 아는 겁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룰 왜 성경은 66권인가? 성경의 정경성과 왜 외경은 성경이 아닌가? 그리고 성경의 완전한 진술의 법칙까지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약 성경도 구약 성경과 동일한 권위가 있는 성경이고 둘 다 똑같은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쓰셨다라는 걸 알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신약을 거부하고 있고 우리는 신약을 받아들인 겁니다.
예표의 법칙
-모형은 사건마다 다르며, 한 사람이 여러 모형이 될 수 있다.
솔로몬
ㅡ 화평이 임하는 천년왕국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표
[표준킹제임스성경] 역대기상22:9
보라, 한아들이 너에게 태어나리니, 그는 안식의 사람이 되리라.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의 주변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안식을 주겠노라. 이는 그의 이름이 솔로몬이 될 것이요, 그의 날들에는 내가 이스라엘 위에 화평과 평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모형은 각 사건별로 봐야 됩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면 예수 그리스도겠죠? 그게 아니라 어떤 부분 부분에서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데, 아주 독특하게 요셉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100가지가 넘게 예수 그리스도 예표가 상세하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한 사람에게서 여러 모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솔로몬의 예시입니다. 솔로몬은 ‘화평이 임하는 천년왕국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거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다. 다윗의 아들이다.”라고 하는데 솔로몬도 다윗의 자손이었고요. 또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던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천년 왕국 성전을 지으실 거고요. 그래서 여기에 유사성이 있는 거죠. 둘 다 다윗의 씨고 또 다윗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솔로몬이 선택받은 자손이었고 예수님도 다윗의 씨로서 바로 하나님이 말하셨던 다윗의 언약 상속자로서 서로 유사성이 있는 거죠. 그래서 사무엘하 7장에 보면, 예표로서 솔로몬과 원형이신 예수님이 번갈아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 역대기상 22장 9절에서 보면 ‘보라, 한아들이 너에게 태어나리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솔로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는 안식의 사람이 되리라.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의 주변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안식을 주겠노라. 이는 그의 이름이 솔로몬이 될 것이요, 그의 날들에는 내가 이스라엘 위에 화평과 평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라.’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까지 다 예언을 해주시죠. 그는 다윗의 자손이고 성전을 세울 뿐만 아니라 모든 원수들로부터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천년왕국 전에, 재림 때 오시면 모든 전쟁을 종결시키는 분으로 오시고 천년 왕국 때 화평의 통치 기간을 가지시죠.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지만 솔로몬은 전쟁을 끝내고 화평하게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이스라엘 위에 화평과 평강을 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솔로몬은 예수님의 선명한 예표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중간에 배교했죠. 그래서 솔로몬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렇죠?
예표의 법칙
-모형은 사건마다 다르며, 한 사람이 여러 모형이 될 수 있다.
솔로몬
ㅡ 배교하여 우상으로 돌이킨 솔로몬은 적그리스도의 예표
[표준킹제임스성경] 역대기하9:13
¶ 이때 한 해에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더라.
솔로몬은 나중에 배교하고 천 명의 아내들, 대부분 이방인 아내들을 두면서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섬깁니다. 이때 솔로몬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예표인 적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각 사건마다 집중을 해야 됩니다. 하나하나의 사진이나 그림처럼, 영어로는 둘 다 picture이죠. 각각의 사진이나 그림마다 하나의 조각으로서 하나님께서 미래를 보여 주셨다고 판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인상(그림)만 가지고 그의 연대기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을 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인생 전체가 절대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역대기하 9장 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배교한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더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도 하고 그 외에 수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적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예표는 각 사건별로 봐야 되고 한사람이 여러 예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유사성을 나타내는 표현들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14
¶ 그리고 광야 가운데서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바로 그렇게 들려 올려져야만 하느니라.
¶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제대로 된 예표를 찾을 때 무엇을 주목해야 되는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유사성을 나타내는 표현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표적인게 as와 so라는 표현입니다. ~~와 같이, 그렇게, 비유를 하면서 보여 주는 직유법 표현입니다. 이 직유법으로 하나님께서 비교를 직접 해주시면 우리는 “아, 이것이 예표였구나.”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 인데요. ‘그리고 광야 가운데서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이것은 실제 역사입니다. 광야 가운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반역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서 물리게 하셨어요. 불뱀에 물린 사람은 불에 타는 고통 가운데 죽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살고싶은 사람은 모세가 놋으로 만든 뱀을 들어 올릴 때 그것을 보라고 하셨어요. 이때 보는 사람은 사는 거예요. 이것을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비유로 들면서 “그 장대 나무에 달려서 올라간 뱀이 나의 예표다.”라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그렇듯이 너희도 나를 믿음의 눈으로 보면 구원받고 살 수 있다.”라고 요한복음 3장 14절 뒤에 있는 15,16절에서 얘기하시는 거예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유명한 구절이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눈으로 봐야 됐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신 거예요. 모세 때에는 불뱀에 물렸고, 실제로 예수님 때는 사탄에 의해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죽음이죠. 그리고 이 장대에 들린 뱀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것과 비교가 됩니다. 모세 때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았을 때 살았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거죠. 모세 때는 물리적 생명, 요한복음에서는 영적인 생명입니다. 그것을 비교해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이것은 수사법 중에 하나인 비유법에 해당되는 풍유이고 예표
입니다. 그래서 as, so, ~~와 같이, 그렇게, 이렇게 연결해 주는 비유의 표현들을 주목해야 됩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대조되는 표현들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후서 3:13-14
그런즉 자기 얼굴에 가리개를 덮어서 이스라엘 자녀들이 폐기된 것의 결말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한 모세와 같지는 아니하노라(not as Moses). 그러나 그들의 생각들이 어두워졌으니,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바로 그 가리개가 옛 유언 언약을 읽을 때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그 가리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지게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주 대조를 해 주시면서 비교를 해 주십니다. 자, 고린도후서 3장 13-14절인데요. 이때 문맥은 광야에서 모세가 40일 낮과 밤 동안 하나님과 대화하고 내려 왔더니 모세 얼굴에 빛이 났던 사건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얼굴에 가리개를 썼습니다. 그런데 가리개를 쓴 이 장면을 바울이 캡쳐해서 고린도후서에 가져와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대조를 합니다. ‘그런즉 자기 얼굴에 가리개를 덮어서 이스라엘 자녀들이 폐기된 것의 결말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한 모세와 같지는 아니하노라‘ 모세가 얼굴에 가리개를 덮은 것은 이스라엘 자녀들이 자기의 얼굴에 빛나는 것이 사라지는 것을 결국 보지 못하도록 가리개를 덮은건데, 이런 모세와 같지는 않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들의 생각들이 어두워졌으니,’ 그들은 지금 이스라엘 자녀들을 말합니다. 왜냐면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안 받아들이니까 그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바로 그 가리개가’ 지금 여기에서는 가리개를 쓴 모세가 이스라엘의 예표입니다. 모세가 가리개에 덮여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도 지금 그 가리개로 여전히 덮여 있다는 거에요. 그들이 옛 유언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이고 옛 유언 언약을 읽고 있는 구약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인데도 가리개가 제거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얼굴에 가리개를 덮으면 앞이 잘 안 보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지금 눈이 가려졌다라는 것을 설명을 해 주는 겁니다. ‘그 가리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지게 되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특히 신약을 알게 되면 눈을 가리는 가리개를 벗어 던지기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하게 성경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 드리는 것은 지금 히브리 랍비들이 우리보다 성경을 더 잘 알거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성경을 가장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어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대인 랍비들이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몇 십년을 연구 해봤자 여러분이 자신의 모국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신구약을 비교해서 성경 공부한 것보다 훨씬 못 미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 능력에 비밀을 담아두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성경을 알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대조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4: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며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각각으로 살 것이라.’ 하였도다.” 하셨느니라. And Jesus answered him, saying, It is written, That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of God.
누가복음 4장 4절에서도 대조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며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각각으로 살 것이라.’’ 지금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각각으로 사는 것을 대조를 하셨습니다. 빵과 말씀을 대조를 한 거예요. 성경에서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빵으로 비유되는게 자주 나옵니다. 다만 물리적인 빵과 영적인 빵이죠. 하나님께서는 대조를 통해서도 비슷하게 또는 유사하게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표가 될 수 있습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대구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5:8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오래된 누룩으로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다만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성실과 진실의 빵으로 지키자.
Therefore let us keep the feast, not with old leaven, neither with the leaven of malice and wickedness; but with the unleavened bread of sincerity and truth.
그 다음에 성경의 구조 중에 대구법이 있습니다. 이 대구법도 주목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오래된 누룩으로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다만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성실과 진실의 빵으로 지키자.’ 지금 두 개의 비슷한 어구를 반복을 합니다. 이 어구를 반복해서 대조하는 것을 대구법이라고 해요. 어떤 때는 정 반대된 것을 대조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슷한 것을 두개 놓으면서 설명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5:8에서는 오래된 누룩을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이라고 표현을 해 주죠. 그래서 누룩이 죄라는 것을 설명을 해 주는데 한번 더 말함으로써 오래된 누룩이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이라는 것을 바로 옆에서 설명을 해 주는 거예요. 이것을 성경 내장 사전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성경 스스로 해석을 해주는데 ‘성경 안에 이미 답이 있다.’라는 겁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신명기 25:4
¶ 너는 소가 곡식을 밟아 떨 때 그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말지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9:9-10
이는 모세의 율법 안에 기록되기를, “너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입마개를 씌우지 말지니라.” 하였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소들에게 관심을 두시느냐? 아니면 그분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냐? 의심할 것 없이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 밭을 가는 자는 소망으로 밭을 갈아야 하며 소망으로 타작하는 자는 자기 소망의 동참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그 다음에 예표 찾기의 아주 핵심적인 것 중에 하나가 의인화입니다. 의인화도 우리가 일생 생활에서 접하는 문학 수사법 중에 하나예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이나 시에서 의인화는 너무 비일비재하게 많이 드러납니다. 하나님도 당연히 인간의 수사법을 통해서 진리를 전하십니다. 의인화에 사실 많은 진리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신명기 25:4을 보면, 갑자기 소를 얘기합니다. ‘너는 소가 곡식을 밟아 떨 때 그에게’ 그는 영어로 he에요. 소는 it이니까 ‘그것’으로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소를 얘기하면서 사람 ‘그’라고 의인화 하신 거예요. ‘그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말지니라.’ 신명기에서 이렇게 의인화 하셨단 말이에요. 히브리인들도 이 당시에 이걸 보고 의아했을 겁니다. “왜 갑자기 소를 그것이라고 하지 않고 남자 ‘그’라고 표현하시지?” 하고 하나님 말씀이니까 그냥 믿고 넘어간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3500년이 지나서 바울이 설명을 해 줍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 안에 기록되기를, “너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입마개를 씌우지 말지니라.” 하였기 때문이라.’ 신명기 25:4절을 인용하면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소들에게 관심을 두시느냐?’ ‘아니면 그분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냐?’ 여기서 ‘우리’는 심지어 3,500년의 시간 간격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인들, 특히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의심할 것 없이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 바로 3,500년 뒤에 등장할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하죠. ‘밭을 가는 자’인 사역자를 소에 비유한 거예요. ‘밭을 가는 자는 소망으로 밭을 갈아야 하며 소망으로 타작하는 자는 자기 소망의 동참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그래서 고린도전서에 보면은 너희는 ‘하나님의 경작지’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우리는 농부다라고 표현을 해요. 이것도 비유죠. 은유법 입니다.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땅 바닥에 붙어있는 진짜 경작지가 아니에요. “너의 눈은 호수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호수는 아닌데 호수 같다라는 거죠.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해 주신 겁니다. 너의 눈은 호수 같다라고 하면 직유법이고 “너의 눈은 호수다.”하면 은유법이 되는 거죠. 다 비유법에 속합니다. 이렇게 너희는 경작지다. 그리고 우리는 농부다. 밭 가는 자, 농부는 소처럼 일을 하면서 소망으로 밭을 갈아야 된다. 무슨 뜻이에요? 소가 일을 할 때 배고프면 먹어야 되잖아요? 먹으면서 열심히 일을 해야죠. 그런데 입마개를 씌우면서까지 소가 배고플 때 아무것도 못 먹게 악덕 주인처럼 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소가 일하다 지나다니면서 못 먹잖아요? 그것은 “사역자들에게 당연히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줘라.”고 다른 사역자들을 얘기를 하면서 신명기 25:4절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의인화에 주목을 해야 되는 거예요.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그래서 제가 예전에 의인화에 대해서 강의를 한 영상이 있는데 오늘은 좀 더 상세하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마가복음 11:2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맞은편 촌락으로 들어가 너희의 길을 가라. 그리고 너희가 그곳에 진입하자마자 너희는 묶여 있는 새끼 수나귀 한 마리를 발견할 것이니, 그 위에 사람이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것이라. 그를 풀어 주고, 그를 데려오라. ye shall find a colt
tied, whereon never man sat; loose him, and bring him. 나귀 - 본성적으로 태어난 죄인
마가복음 11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얘기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곳에 진입하자마자 너희는 묶여 있는 새끼 수나귀 한 마리를 발견할 것이니, 그 위에 사람이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것이라. 그를 풀어 주고, 그를 데려오라.’ 여기에서도 나귀는 ‘그것’이어야 되잖아요. 실제로 개역성경이나 다른 성경들을 보면 ‘그것’ 이라고 돼 있어요. 그것을 풀어주고 억지로 끌고 와라.’ 이렇게 표현이 돼 있어요. 그런데 킹제임스성경에는 나귀가 남성,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왜 갑자기 수나귀 얘기 하다가 ‘그를’ 이라고 하죠?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나귀를 갑자기 남성, 사람으로 표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경의 특징인 거예요. ‘그를 풀어 주고, 그를 데려오라.’ loose him, and bring him. 바로 나귀는 죄인의 예표인 겁니다. 그래서 미국에는 나귀에 대한 아주 위대한 설교가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 말씀으로 “구원받지 않은 죄에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주고 하나님께로 데려와서 예수님이 그 위에 앉으시고 그 사람의 주인이 되셔서 그 사람을 쓰신다.” 죄인을 풀어주고 예수님께로 데려 왔을 때 예수님이 구원해 주시고 그 위에 앉으셔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으로 아주 애용하는 설교 주제입니다. 왜요? 나귀를 ‘him’으로 의인화를 해주셨으니까요. 이 나귀가 구약에 아주 오래 전부터 예언되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본성적으로 태어난 죄인을 염두에 두고 의인화 하셨던 겁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8:9
그러나 그 비둘기가 그녀의 발바닥을 딛고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그녀가 방주 안에 있는 그에게로 되돌아왔으니, 온 땅의 표면에 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그때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붙들고 방주 안에 있는 자신에게로 그녀를 데려왔더라[took her, and pulled her in unto him into the ark.].
창세기 8장 9절에 보면, 비둘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비둘기를 ‘그녀’라고 표현을 해요. 미국에서도 이것은 어색한 표현이에요. 그런데 성경의 표현이에요. 그러면 비둘기를 왜 그녀라고 했을까요? ‘그 비둘기가 그녀의 발바닥을 딛고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그녀가 방주 안에 있는 그에게로 되돌아왔으니,’ 비둘기 전에는 까마귀가 있었죠? 그런데 까마귀는 의인화 하지 않습니다. 비둘기는 일부러 ‘그녀’라고 했어요. ‘온 땅의 표면에 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그때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붙들고 방주 안에 있는 자신에게로 그녀를 데려왔더라’라고 얘기합니다. 까마귀는 안 돌아 왔어요. 까마귀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신실하게 임무 수행하고 방주 안으로 다시 돌아와요. 자, 여러가지 할 말은 있지만, 일단 창세기를 좀 벗어나서 예표에만 집중을 해 볼게요. 비둘기가 성경에 나올 때 크게 두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 여러분이 제일 잘 아는 성령님의 예표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성령님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 오십니다. 비둘기가 성령의 예표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어요. 반면에 까마귀는 창8:9에서 불결한 짐승으로 또 신실하지 않은 사람과 불결한 영의 예표로 나옵니다. 자, 비둘기는 성령의 예표인데 왜 하필이면 ‘그녀’인가? 여러분, 창세기 3장에 보면 위대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바로 마귀의 씨와 ‘그녀. 여자의 씨’로 비교를 하시면서 예수님이 그녀의 씨로 올거라고 예언을 합니다. 여자는 씨가 없는데 ‘그녀의 씨’라고 하죠. 그것은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해서 태어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해서 태어나셔서, 성령님이 그녀로 표현된 겁니다. 그런데 저번 시간에도 봤지만 성령님이 성경에서 대부분 남성으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남성이니까요. 그리고 성령님이 ‘그것’, 중성으로 표현될 때는 성령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거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8:9에서는 성령님이 그녀의 씨로서 예수님이 잉태될 때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거니까 하나님께서 ‘그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육체적으로 태어나신 유일한 분, 독생자이십니다. 그런데 또 성령님으로 인해서 다시 태어난 자들이 있습니다. 누구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솔로몬의 아가 6:9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뿐이라.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외동이요, 그녀는 그녀를 낳은 여인의 선택된 이라.
고린도후서 11:2
... 내가 너희를 한 순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께 제시하려고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인들을 솔로몬의 아가에서 보면 ‘그녀’라고 표현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하나의 집합으로 봤을 때는 교회라고 하거든요. 이 솔로몬의 아가는 신랑인 솔로몬과 신부인 술렘 여인간의 사랑을 나누는 얘기인데 이것은 뭐의 예표냐?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고 신부는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의 예표, 그리스도인들의 예표입니다. 신랑 예수님이 자기 신부에게 뭐라고 표현하는지 보세요.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뿐이라.’’ 예수님은 일부 다처제가 아니시죠. 예수님의 신부는 하나뿐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외동이요, 그녀는 그녀를 낳은 여인의 선택된 이라.’ 선택받은 한 명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한 순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께 제시하려고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순결한 처녀, 그리스도 남편, 정혼을 말하면서 예수님이 남편으로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한 순결한 처녀로 지금 제시되고 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순결한 처녀는 오직 한 명입니다, 예수님과 정혼한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열 처녀들의 비유는 한 명이 아닌 열 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설명을 더 드리겠습니다. 열 처녀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쳐요. 왜냐면 열 처녀들 중에 다섯 명은 신랑이 올 때 맞이하러 가지만 다섯 명은 기름을 구하려다가 문이 닫혀서 못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잘못된 비교, 비유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교회는 한 번도 여러 명의 처녀들로 표현된 적이 없습니다. 항상 단수로 표현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를 ‘그녀’ 여자로 표현하신 것은 성령님으로 잉태된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교회를 예표로서 등장을시킬 때죠. 교회의 신실한 모습을 예표로서 표현하시는 거라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녀’로 표현하신 거예요. 제가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비둘기를 보면서 그녀라고 말하는 사람 단 한 번도 못 봤어요. 이건 성경 자체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그렇게 했고 헬라어에서도 그렇게 했고 그 다음에 영어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의인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다고 마음대로 ‘그것’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것은 번역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영어로 translate은 옮긴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번역된 책을 보면 번역자 대신 “옮긴이” 라고 써있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번역자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옮겨야 돼요. 사람이 뭐라고 하든 그건 상관없어요. 신실하게 그대로 옮겨서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보여야 되죠. 이런 의인화 부분들이 성경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표로서 보여 주는 거예요.
예표의 법칙
“해는 그의[his] 나아감 가운데 어두워질 것이요, 달은 그녀의[her] 빛을 비치게 하지 못하리라.”
(이사야서13:10 표준킹제임스성경)
✓ 태양 :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19:5 태양은 그의 침실에서 나오고 있는 신랑 같고, 강한 남자같이 경주에서 달리기를 크게 기뻐하나이다.
“태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달이 신부인 교회의 예표다.”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 이사야서 13:10절에서 ‘해와 달’ 의인화 표현 때문입니다. ‘“해는 그의[his] 나아감 가운데 어두워질 것이요, 달은 그녀의[her] 빛을 비치게 하지 못하리라.”’ 바로 한 구절에서 해는 남성, 달은 여성으로 표현 했습니다. 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죠. 시편19:5에서도 ‘태양은 그의 침실에서 나오고 신랑 같고 강한 남자같이 경주에서 달리기를 크게 기뻐하나이다.’ 이렇게 ‘그’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표의 법칙
“해는 그의[his] 나아감 가운데 어두워질 것이요, 달은 그녀의[her] 빛을 비치게 하지 못하리라.”
(이사야서13:10 표준킹제임스성경)
✓ 달 -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
솔로몬의 아가 6:10 ¶ 아침같이 내다보고, 달같이 어여쁘며, 태양같이 청명하고, 기치들을
든 한 군대같이 장엄한 그녀는 누구인가?
동일한 솔로몬의 아가입니다. 달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죠. 신부를 ‘아침같이 내다보고, 달같이 어여쁘다’고 표현을 해요. 신부를 달에 비유를 합니다. 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에요. 하나님께서 신랑과 신부를 ‘그와 그녀,‘해와 달’로 그렇게 구분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의 할일은? 그대로 보는 겁니다. 이것이 예표를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거예요.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이사야서 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너희 모두여, 너희는 그녀와[her] 함께 크게 기뻐하고 그녀와[her] 함께 희열하라. 그녀를[her] 위하여 애곡하는 너희 모두여, 그녀와[her] 함께 즐거움으로 크게 기뻐하라.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4:26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예루살렘도 갑자기 ‘그녀, 그녀, 그녀’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예루살렘은 도시인데 그녀라고 표현을 할까요? 나중에 신약에서 알고 봤더니,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보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표현해요. 이것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라고 하는 거예요. 마리아가 아닙니다. 그 새 예루살렘이 어머니고, 우리는 모두 결국 영원 시대에 그 새 예루살렘에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이런 표현들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하신거고 그 진리가 나중에 신약에서 등장한다는 거예요.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17:1,18
“이리 오라. 내가 너에게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의 심판을 보여주겠노라 … 그리고 네가 본 여자는 땅의 왕들을 통치하는 저 거대한 도시라.”
요한계시록 17장 18장에 보면은 이 바빌론이라는 도시 조차도 여자, 음녀, 창녀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기물들의 성별(性別)에 담긴 진리들
이제 마무리로 구약의 가장 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표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성막을 보겠습니다. 이 성막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막의 하나하나의 기물들에 다 성별을 넣어 놓으셨어요. 그냥 기구인데 남성으로 표현을 하셨습니다.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지극히 거룩한 처소 => 언약궤 <언약궤 내용물 : 모세의 두 돌판들, 아론의 싹 난 막대기, 만나 항아리>
휘장막
거룩한 처소 => 빵이 진열된 식탁, 분향 제단, 등잔대
바깥뜰 => 물두멍, 번제단
자, 성막에는 이런 수많은 기구들이 있죠. 이것들을 하나님께서 의인화 하시는 거예요.
예표의 법칙
예표 찾기 - 의인화에 주목할 것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30:18
“너는 또한 놋으로 물두멍 하나를 만들고 놋으로 또한 그의[his] 발을 만들어 모두 씻을지니라. 그러고 나서 너는 그것을[it] 회중의 성막과 제단 사이에 놓을지니, 너는 그 안에 물을 담을지니라.
그래서 출애굽기 30장 18절 보면, ‘“너는 또한 놋으로 물두멍 하나를 만들고’ 물두멍이 나오죠. ‘놋으로 또한 그의[his] 발을 만들어 모두 씻을지니라. 그러고 나서 너는 그것을[it] 회중의 성막과 제단 사이에 놓을지니,’ 지금 누가 봐도 기물들이니까 ‘그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관적으로 ‘그것’으로 하시다가 일부러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그의[his]’ 라고 의인화로 표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표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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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30:26-29
그러고 나서 너는 그것으로 회중의 성막과 증언의 법궤에 기름을 부을지니, 식탁과, 그의[his] 모든 기물들과, 등잔대와, 그의[his] 기물들과, 분향 제단과, 번제물의 제단과 더불어 그의[his] 모든 기물들과, 물두멍과, 그의[his] 발에 기름을 부을지니라
자, 주목을 해보세요. 물두멍뿐만이 아니죠. ‘그러고 나서 너는 그것으로 회중의 성막과 증언의 법궤에 기름을 부을지니, 식탁과, 그의[his] 모든 기물들과,’ 성막 안에 빵을 차려놓는 진열하는 그 식탁도 ‘그의[his]’라고 표현해요. 등잔대도 ‘그의[his] 기물들’이라고 하죠? ‘분향 제단과, 번제물의 제단과 더불어 그의[his] 모든 기물들,’도 ‘그의[his]’ 라고 표현해요. ‘물두멍과, 그의[his] 발에 기름을 부을지니라’ 다 남성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걸 보고 “아, 의인화를 하셨네. 그렇다면 진짜 이 기물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이것이 예표를 하는 뭔가가 분명히 있구나.”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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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23:45-46
그리고 해가 어두워졌으며 성전 휘장막 한가운데가 찢어졌더라 ... 그러자 예수님께서 ... 숨을 거두셨더라.
누가복음 23장 45 - 46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성경은 뭐에 연결을 시키냐면요? ‘해가 어두워졌으며 성전 휘장막 한가운데가 찢어졌더라’ 휘장막과 연결을 하면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휘장막이 찢어졌다는 걸 강조해서 표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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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0:20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로 인한 것이니, 그 길은 그 휘장막, 곧 그분의 육체를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별시키신 것이라.
히브리서에서는 휘장막을 뭐라고 하냐면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로 인한 것이니, 그 길은 그 휘장막, 곧 그분의 육체를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별시키신 것이라.’고 했어요. 이 휘장막은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아주 두꺼운 막이에요. 사람이 일부러 찢으려고 해도 못 찢어요. 여러분, 신문지는 얇잖아요? 그 신문지도 두 겹 네 겹 여덟 겹 16 겹 32 겹, 이렇게 조금만 두꺼워져도 손으로 잘 못 찢어요. 그런데 휘장막은 신문지와는 비교도 안되게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막입니다. 일부러 찢으려고 해도 못 찢는데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어요. 밑에서 위로 찢어진게 아니라요. 이렇게 누가복음 23장 45 - 46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가르치는 그 지성소의 휘장막이 예수님이 죽을 때 찢어졌다라고 강조를 하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해 주셨어요. 휘장막이 예표가 되는 거죠. 성막에 있는 많은 것들이 예수님과 이렇게 연관이 되는데 휘장막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진짜 지성소로 , 가장 거룩한 곳, 셋째 하늘로 갈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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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가득 찬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체
그래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가득찬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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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30:1,3
다음으로 너는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향을 태울지니라 ...그리고 너는 그것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하나하나의 기물에 왜 의인화를 했는지 살펴볼게요. ‘제단을 만들어 ...그리고 너는 그것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고 했어요. 이 제단에 왕관을 씌워요. 왜 왕관이 필요하죠? 그것도 금으로 된 왕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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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ㅡ 식탁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25:23, 24
너는 또한 싯팀 목재로 식탁을 만들지니라 ... 그리고 너는 그것을 순금으로 입히고 거기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식탁도 관을 씌워요. ‘금관을 만들지니라.’ 네모난 식탁인데도 거기에다 테를 둘러 관을 쓴 것처럼 만들어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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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ㅡ 언약궤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25:10,11
다음으로 그들은 싯팀 목재로 법궤를 만들지니라 ...그것 위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
법궤가 있는 곳에도 테두리를 둘러서 ‘금관을 만들지니라.’ 하셨어요.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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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ㅡ 언약궤
법궤의 구성물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부활”이신 예수님
-언약의 돌판 ➨ “말씀”이신 예수님
자,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뭐였어요? 법궤만 봐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죠? 법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는데, 만나는 뭐였어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빵이다.’ 라고 말할 때 만나를 가지고 비유를 하셨어요. 그 다음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이 지팡이는 죽은 나무예요. 그런데 죽은 나무에서 생명이 새로 났어요. 부활을 상징해요. 또 아론은 대제사장이죠? 예수 그리스도도 대제사장으로 오셨어요. 그런데 계열은 아론보다 더 상위 계열이에요. 그래서 항상 모형보다 원형이 훨씬 더 위대합니다. 그 다음에 언약의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죠.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기록하신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이름이 뭐에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말씀’이세요. 언약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집약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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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ㅡ 식탁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25:23, 24
너는 또한 싯팀 목재로 식탁을 만들지니라 ... 그리고 너는 그것을 순금으로 입히고 거기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뿐만 아니라 빵을 올리는 식탁도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 연관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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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30:1,3
다음으로 너는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향을 태울지니라 ...그리고 너는 그것에다 테를 둘러 금관을 [a crown of gold] 만들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제단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제단, 특히 향단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비유를 해 주시는데, 이 기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하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의 하나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계속 등장을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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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19:12
그분의 두 눈은 불의 화염 같았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왕관들이 있었더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기록된 이름 하나가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오직 그분 자신만이 아셨더라.
분향 제단, 식탁, 언약궤 =>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요한계시록 19장 12절에 예수님이 재림할 때 봤더니, ‘그분의 두 눈은 불의 화염 같았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왕관들이 있었더라.’ 왕관이 한 개가 아니라 수많은 왕관을 쓰고 오시는데, 이게 나중에 성경에서 보면 금 왕관, 금관으로 나옵니다. 하나씩 하나씩 있던 왕관을 다, 즉 수많은 왕관들을 쓰고 오시는 예수님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기존 성경들에서 말하는 면류관이 될 수 없는게, 면류관은 한국식 관인데 겹쳐 쓸 수가 없어요. 그러나 왕관은 겹쳐 쓸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영국 같은 경우에도 스코틀랜드 왕이면서 동시에 잉글랜드 왕이기도 해서 왕관을 겹쳐 쓸 수 있었습니다. 왕관은 그런 형태로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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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20:25
그리고 만일 네가 나에게 돌로 제단을 만들려고 한다면 너는 다듬어진 돌로 그것을 쌓지 말지니라. 이는 네가 너의 연장을 그것 위에 들어 올린다면 네가 그것을 오염시킨 것이기 때문이라.
자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성막 안에 있는 식탁, 심지어는 등잔대, 향단, 그리고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거예요. 특히 이 등잔대는 성령님을 나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이라고 표현했어요. 성막 바로 밖에 있는 놋 제단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냐면 ‘그리고 만일 네가 나에게 돌로 제단을 만들려고 한다면’ 자, 여기에 하나님이 주의하라고 하신 사항이 있어요. ‘너는 다듬어진 돌로 그것을 쌓지 말지니라.’ 다듬어진게 뭐예요? 인간이 인공적으로 다듬은 겁니다. 뭐 반듯하게 만들려고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대로의 돌을 써야 된다고 말씀 합니다. 왜요? ‘이는 네가 너의 연장을 그것 위에 들어 올린다면 네가 그것을 오염시킨 것이기 때문이라.’ 자, 그런데 다듬어지지 않은 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돌이 나중에 다니엘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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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다니엘서 2:34
당신께서 보셨는데 마침내 손들을 대지 않고 깎여 나간 돌이 철과 진흙으로 된 그의 두 발 위로 그 형상을 쳐서 그것들을 산산이 부수었나이다.
다니엘서 2장의 ‘그 형상’에서 금, 은, 놋, 철과 진흙이 섞인 왕국들을 얘기를 하시면서 ‘마침내 손들을 대지 않고 깎여 나간 돌’이 등장을 하는데 이 돌도 왕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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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킹제임스성경] 다니엘서2:44,45
그리고 이 왕들의 날들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 왕국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리고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그것이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이 부수고 진멸하리니, 그 왕국은 영원토록 서리이다. 당신께서는 손들을
대지 않은 돌이 산에서 깎여 나간 것과 그것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산산이 부수는 것을 보셨으니,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무엇이 일어날지 왕께 알려지게 하셨나이다. 그런즉 그 꿈은 명확하고 그것의 해석도 확실하나이다.”
이 돌은 하나님께서 세우는 왕국이에요. 그 왕국은 멸망하지 않고 모든 왕국들을 진멸시킵니다. 앞에서 말했던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 왕국들을 다 쳐부습니다. ‘당신께서는 손들을 대지 않은 돌이 산에서 깎여 나가서’ 이 왕국들을 다 쳐부수고 돌 왕국을 이루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천년왕국이 오는 것을 상징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손들을 대지 않은 돌, 다듬어지지 않은 돌, 인공이 아닌 그대로의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돌입니다. 그러면은 아까 전에 불로 태워서 제물을 드리는 제단 있었죠? 성막에서 가장 기본인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걸 우리가 알잖아요? 왜냐면? 제물 중에 가장 대표적인게 어린양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으니까 이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단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에요. 제단에까지 금단을 둘렀죠. 번제단을 통해서는 대신 누군가가 죽는 거예요. 번제단은 형벌을 대신 받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씻어요. 이것은 나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의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물두멍에서 발을 씻는 겁니다. 물론 거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말씀의 예표이긴 한데, 이때 물로 씻는 것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만 씻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줘요. 내 죄의 형벌을 받는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 그것을 불로 태우는 제단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그 물두멍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성소 안에 들어갔더니 빵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빵 차리는 식탁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그 다음에 등잔대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의미하고요. 그 다음에 향단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지성소 안에 직접들어갔더니 언약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처음부터 끝가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자, 우리에게 뭘 보여주려는 걸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특히 구원을 포함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전혀 없습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면에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도 다 예수님이 해 주신 거고 우리는 그냥 받기만 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손을 댄 어떤 인공적인 것을 절대 복음에 갖다 대면 안 돼요. 인간적인 요소가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 됩니다.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행위를 넣으면 안 돼요. 교회를 오래 다니면 구원 받는다? 돈으로 구원을 받는다? 예전에 어떤 면죄부를 돈으로 샀었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제자의 삶을 살아야 구원받는다도 아니에요. 구원받고 난 후에 제자의 삶을 사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인간의 인공적인 것을 가미하지 말라는 거예요. 구원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절대 인간의 인공적인 것을 가미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교훈들을 미리 예표로서 그림으로 넣어 놓으셨다.’ 라는 것이 오늘 성경 해석학 공부의 핵심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2:16
처음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 그제야 그들은 이런 것들이 그분에 관하여 기록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이런 것들을 그분께 행하였음을 기억하였더라.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요한복음 12:16절, 예수님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이 처음에는 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처음 갓 구원받고 나서 성경을 읽었을 때 처음부터 다 이해하시는게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 그제야 그들은 이런 것들이 그분에 관하여 기록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이런 것들을 그분께 행하였음을 기억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구약에 너무나 많은 보물들을 넣어 놓으셨는데 이제야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가 알게 된 거예요. 여러분의 개인 인생에서 왜 성경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야 되는지 아세요? 성경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책으로서 읽을 때마다 새롭고, 읽을 때마다 보물을 새롭게 발견하고,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그림들을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예표의 법칙, 세부사항의 지침들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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