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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 세 가지 적용의 법칙

  • 작성자 사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3월 27일
  • 27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4월 3일

24.03.27.

[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 세 가지 적용의 법칙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ㅡ 세 가지 적용의 법칙

모든 구절은 세 가지 적용점이 있다.”


오늘 성경해석학에서는 세 가지 적용의 법칙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구절에는 이 세 가지 적용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독교계에서 하나의 적용만 강조를 하다 보니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눠서 적용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잘못 적용해서 생기는 경우인데 이 세 가지 적용을 조화롭게 할 때 해석이 정확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 드립니다.  


세 가지 적용의 법칙

The Law of Triple Reference

성경의 모든 구절은 세가지 적용점이 있다.

1)역사적 적용

2)교리적 적용

3)영적 적용

Every verse in the Bible has three applications: 1)historical, 2) doctrinal, 3)spiritual.


세 가지 적용의 법칙은 영어로는 ‘The Law of Triple Reference’라고 하는데요. 성경의 모든 구절은 세가지 적용점이 있다는 거예요. 가장 기본적으로 역사적 적용입니다. 모든 구절은 그 구절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를 반영을 하고 기록된 그 내용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요. 그 다음에 교리적으로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알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 영적으로 자기에게 교훈으로 적용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역사적 적용, 교리적 적용을 무시한 채 영적 적용, 즉 교훈만 적용을 하다보니 큐티 모임, 묵상 모임들을 할 때 각각 자기만의 해석들을 쏟아냅니다. 또 교회 강단의 목회자들은 교훈만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게 나중에 교리가 되서 잘못된 해석들로 와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세가지 부분들로 나눠서 조화롭게 보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이 나오지 않아서 입니다.   


1.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

✔ 그 구절이 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로 적용하는 것.

✔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


우선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은 ‘그 구절이 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로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해야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특별히 어떤 비유를 들거나 하나님께서 예화를 들지 않는 이상,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사실이에요. 그래서 역사적인 증언으로서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교리적 적용과 영적 적용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부터 이미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가장 큰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로마카톨릭 입니다.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

✔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사실로 믿는 것은 성경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33:4

이는 주의 말씀이 옳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분의 모든 역사들은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도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는 주의 말씀이 옳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분의 모든 역사들은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옳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다 기존에 있었던 사실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믿음인데요.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1:1-3

많은 이들이 우리 가운데서 가장 확실하게 믿게 된 그 일들에 대한 진술을 정연하게 제시하려고 착수하였으므로, 그들이 초기부터 목격자들이자 말씀의 사역자들인 우리에게 그것들을 전달했던 바로 그때 맨 처음부터 모든 것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도 테오필로스 각하 당신에게 정연히 기록하여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였으니,


예를 들면,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목격자로서 누가복음 1장 1- 3절에서 테오필로스라는 이방인 각하에게 예수님에 관해 정연하게 기록 목적을 얘기하는 겁니다. 자신도 처음부터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증인으로서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생각해서 기록한 거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의사였고 그가 글을 쓴 스타일을 보면 사건을 아주 정연하게 기록하는 것이 탁월합니다. 마태같은 경우는 세리였잖아요?그래서 숫자에 아주 민감하게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은 기록 자체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것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죠.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기록한 겁니다.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

창세기의 창조,에덴동산에서의 사건,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등은 “어떤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창세기를 비웃는 자유주의 신학

B B C  In a statement to the Pontifical Academy of Science. Pope Francis warned that to take the Genesis  account Literally is dangerous.

 

“우리가 창세기의 창조에 관해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를 가진 마술사라고 상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ㅡ교황 프란시스코

 

창세기를 비웃는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되어 있는데 카톨릭 교황이 비웃으면서 “창세기에 기록된사건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창세기의 창조에 관해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를 가진 마술사라고 상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일어났던 창조를 하나님이 마술지팡이를 이용해서 뭐, 하루만에 번쩍 생겨났다 라고 믿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라,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라.’ 이렇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리고 셋째 날에 식물을 창조하셨고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이게 진짜 말 그대로 하루입니다. 만약에 교황이 주장하듯이 하루가 몇 억 년이다. 그러면 식물이 어떻게 살아남았겠어요? 


교황 프란시스코 ✔ 진화론과 빅뱅이론을 사실이다.    

                          ✔ 의심 없는 믿음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톨릭의 공식 입장은 오히려 성경, 창세기는 사실이 아니고 진화론과 빅뱅 이론이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과학 이론은 계속 바뀌죠. 지금은 빅뱅 이론이 또 낡은 이론이 됐어요. 점점 새로운 이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그때마다 입장을 바꿔야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과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은 완전한 과학도 아닌 이론이자 주장이고 소설일 뿐인데, “이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사실이고 성경은 사실이 아니다.” 라고 말하죠. 또 교황은 의심없는 믿음은 발전할 수 없다.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죠? 하나님은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교황은 의심이 있어야 믿음이 발전한다. 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이런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카톨릭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줍니다.  


➤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David Ray Griffin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종교적인 내용을 희생하면서 과학과 신학의 화해를 달성했습니다.”

<Religion and Scientific Naturalism : Overcoming the Conflict>. p.183

데이턴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데이빗 레이 그리핀이라는 데이턴대학교의 종교철학과 교수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종교적인 내용을 희생하면서 과학과 신학의 화해를 달성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제시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어려운 말로 포장을 한 거지만 쉽게 말해서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희생하고 나서 신학과 과학은 화해할 수 있었다.’ 결국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만 안 하면 얼마든지 화해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 C. 존 콜린스 C. John Collins

“현대 자유주의 과학의 승리로 인하여 현대 성경 해석가들은 해석학적 훈련을 수행하고 그 당시의 일들이나 기록을 전체적으로 재해석하여 더 이상 실제 역사적인 시대상과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위험을 받고 있습니다.

<Science and Faith : Friends or Foes by JohnCollins>. 2003

ESV 구약 위원장 / 커버턴트신학교 구약학 교수


지금 미국쪽이나 영어권에서는 NIV 보다 ESV가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어요. 존 콜린스는  ESV 구약 위원장이고 커버넌트 신학교 구약학 교수입니다. “현대 자유주의 과학의 승리로 인하여 현대 성경 해석가들은 해석학적 훈련을 수행하고.’ 어떻게 해석학적 훈련을 수행한다고 하죠? 과학적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거예요. ‘그 당시의 일들이나 기록을 전체적으로 재해석하여’ 성경은 원래 문자 그대로 읽고 이해해야 되잖아요?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그럼 그대로 이해하면 돼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성경을 재해석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성경이 ‘더 이상 실제 역사적인 시대상과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위험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 허버트 M. 울프 Herbert M. Wolf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설명은 모두 과학에 약영향을 미치고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많은 문제를 포함합니다.”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Pentateuch>. 2007

TNIV 번역자 [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 휘튼대학 구약학 교수

 

허버트 울프라는 사람은 TNIV, Todaay’s NIV라고 해서 NIV를 더 현대화해서 번역했고요. 또 휘튼대학 구약학 교수인데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설명은 모두 과학에 약영향을 미치고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많은 문제를 포함합니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 말씀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성경이 문제다. 왜? 과학이랑 상치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과학이 성경을 공격하면 성경 편에서 서서 과학을 반박해야 되는데, 과학 편에서 성경이 틀렸다라고 하는 거죠. 이게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무조건 먼저 성경을 의심하는 학문입니다.


➤ 로날드 F. 영블러드 Ronald F. Youngblood

NIV 및 TNIV 번역가 / 국제성서공회 이사회 회장 / 휘튼 대학원 및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 / 존더반 NASB 연구성경 편집팀 <창세기:입문주석>, 1999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를 덮었나요?” - 아뇨.”

국지적 홍수이론

창세기 6-9장을 문자적이지 않은 상징이나 비유 또는 신화로 보는 입장

 

로날드 영블러드도 NIV 및 TNIV 번역가이자 국제성서공회 이사회 회장이죠. 연합성서공회, 국제성서공회가 결국은 대한성서공회에 영향을 미치는 거거든요. 그리고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를 덮었냐?”라는 질문에, 성경은 덮었다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아뇨.” 라고 대답 하죠?


➤ ESV, CHICAGO DIVINITY SCHOOL, COVENANT, DAYTON, NIV, WHEATON, TRINITY, NASB

“성경에는 오류들이 있으므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성경 기록을 비웃는 사람들이 점점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거죠.

 

창세기의 전 세계적 홍수의 증거 [바이블빌리버 채널]

1. 방주의 황금비 2. 방주의 탑승객 3. 전 세계에 각인된 대홍수 트라우마 4. 대홍수 리셋 진화론보다 현실적인 수학적 증거 5. 대홍수 [돌들의 외침]/ 6. 대홍수가 지나간 땅


1.해양 건축의 관점 2. 생물학적 관점 3. 인류학의 관점 4. 인구통계학의 관점 5. 고생물학의 관점 6. 지리학의 관점

 

그래서 제가 예전에도 이렇게 창세기에 있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또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증거들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요. 성경 기록은 하나도 틀린게 없습니다. 그대로 성경을 믿으면 됩니다.


성경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나요? 

-바이블빌리버 출간 예정

<책> Did The Catholic Church Give Us The Bible? -David W Daniels


그렇다면 이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결국 로마카톨릭의 자유주의 사상이 현대 신학대학교에 침투한건데요. 어떻게 침투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쉽게 그림으로 설명한 책이  <Did The Catholic Church Give Us The Bible?>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나요?  라는 제목으로 계속 번역을 하고 있고요. 곧 바이블빌리버에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럼 간단하게 이 책에 있는 그림으로 로마카톨릭이 신학교에 침투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660년대]

1단계 바티칸 및 카톨릭 대학들 ➨ 세상 대학

1660s IT ALL BEGAN WITH THE MASTER PLAN”...

카톨릭 사제 : We have a Master Plan to annihilate our greatest enemy…that @#*%!! KING JAMES BIBLE. It’ll take 300 years to accomplish this task. First, you will infiltrate secular universities…

Each step of their plan would take at least one generation.Tthey needed to pervert the minds of young college students. who would later become teachers, and so on…

STEP ONE : Vatican ⟹ Secular Universities


바티칸 및 카톨릭 대학들은 1600년대부터 이미 있었죠? 그 당시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자마자 예수회에서 역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다시 종교통합을 이뤄야겠다는 계획하에 조직을 하고 계획을 세워 온 것들입니다. 그때부터 바티칸과 카톨릭 대학들에서 이미 현대 자유주의 사상이나 잘못된 신학을 가르쳐 왔어요. 그러다가 바티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세상 대학교에 침투합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670 -1760년대]

1단계 바티칸 및 카톨릭 대학들 ➨ 세상 대학

1670sㅡ 1760s Benedictines do the Jesuits’s dirty work, spreading lies about the Bible in the University of france.

대학교수 : from the “higher criticism: of Father Richard Simon we all doubt that Moses wrote the Pentateuch…Father Mabillon showed us how to criticize the Bible like any other book… But Father Montfaucon has even more important news for us today…

카톨릭 사제 : “Lower1 Criticism” has proven that the Received Text of the Protestants and Baptists is an inferior text… The only superior text is one made from Origen’s Bible!

1Also known as “Textual Criticism.”

Once the “enlightened” schools of France bought into all that “Criticism,” the next stop was Germany…

 

세상 대학교에도 교양 과목들 중 종교 과목들이 있어요. 그런데 굉장히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가르칩니다. 세상 대학들은 바티칸과 카톨릭 대학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후에 세상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800년대]

2단계 세상 대학들 ➨ 자유주의 신학대학들

STEP TWO : Secular Universities ⟹ Liberal Seminaries

1800s major changes took place. Students brainwashed with Jesuit teachings left the secular universities.

교수1 : I’m off to Tubingen!

교수2 : I'll be teaching at Princeton!

교수3 : Yale for me!

교수4 : I'll teach at Union!

These new professors, guided and coached by Jesuit mentors, would systematically destroy the faith of future pastors. It was only a matter of time!


그런 다음에 역으로 세상 대학들에서 신학 대학으로 침투를 하는데 자유주의 신학 대학들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교수들이 튜빙겐, 프린스턴, 예일, 유니온으로 가겠다. 라고 말하는 거예요.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800년대]

2단계 세상 대학들 ➨ 자유주의 신학대학들

교수 : The Bible is a great book, but it was only written by men.

신학생1 : Not God?

신학생2 : You numbskull! What century are you living in?

In liberal theological seminaries, faith was replaced with Doubt.

When these students graduated, they brought their “Higher Criticism”…and doubt… them.

1885 The English Revised Version (ERV) was Published. based on Origen’s and other Egyptian manuscripts.

AND A NEW PHASE BEGAN…

 

그러면서 이제 자유주의 신학교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하신게 아니라 사람이 기록한거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권위를 계속 깎아내리고 있죠.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800년대]

2단계 세상 대학들 ➨ 자유주의 신학대학들

신학생 : Professor, Which Bible should we use in our pulpits?

교수 : The King James Bible, of course, to please the little people…But for Youㅡ use the Revised Version, because only the ERV comes from the best1 manuscripts! And remember to “correct” the KJV in every sermon!

These words came from his mentor, someone he trusted. And even though this teacher wasn’t a Jesuit, his JESUIT TEACHING passed to the next generation.

 

실제적인 것들은 일일이 설명을 하진 않겠습니다. (책을 참조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940년대]

3단계 자유주의 신학대학들 ➨ 주요 신학대학들

STEP THREE : Liberal Seminaries ⟹ Mainline Colleges & Seminaries

1940s The next generation of professors, fresh out of their liberal seminaries, moved into new territory.

교수1 : I’m off to Fuller!

교수2 : Eastern’s the place for me!.

교수3 : Wesleyan College!

교수4 : I'm United Methodist!

The Jesuits’ Master Plan moved these men into mainline colleges and churches. All of them put their faith in their faith in their teachersㅡ not God’x preserved words.

NOW THE IMPOSSIBLE WAS ABOUT TO HAPPEN.

1By “best” he really means Roman catholic.

 

이제 자유주의 신학대학에서 주요 신학 대학들로 넘어갑니다. 빠르면 1900년도 초기 아니면 중기 정도까지 계속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게 한 순간에 일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작업하고 있었던 거죠. 풀러, 웨슬리안, 이스턴, 유나이티드 메소디스트(연합감리교회)로 이렇게 침투해 들어갑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960년대]

4단계 주요 신학대학들 ➨ 보수적인 신학대학들

STEP FOUR : Mainline Colleges & Seminaries ⟹ Conservative Bible Colleges & Seminaries

1960s The new professors quickly spread their teaching. [None were aware it really originated in the Vatican.]

신학생1 : professor, which is the best bible for us today?

신학생2 : Isn’t the King James reliable?

 교수 : By all means, the American Standard, or even the Revised Standard Version. We scholars do not trust the King James.

When these students graduate, where do you think They will go? Back to their schools and churches!

 

그런 다음에 이제 보수적인 신학대학에 들어갑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980년대]

5단계 보수적인 신학대학들 ➨ 근본주의 신학대학들

STEP FIVE : Conservative Bible Colleges & Seminaries  ⟹ fundamentalist schools & Bible churches

1980s The new professors quickly spread their teaching. [None were aware it really originated in the Vatican.]

 교수 : The original writing were God’s word. But they’re long gone. All we have today are near-accurate, human Bibles. If I read from the King james. I’ll correct it for you…But why don’t we all just move to the NIV? I think it’s the best.

AND NOW LOOK WHAT HAPPENED…

 

그러면 이 보수적인 신학 대학에서는 또 근본주의 신학대학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떤 형태로 들어가느냐? 대학들이 커지잖아요? 그러면 인가를 받아야 됩니다. 인가를 받게 되면 세상 법에는 반드시 세상에서 인가받은 학교의 박사들을 받아 들여야 돼요. 그런데 그 박사들이 다 어디서 공부를 했어요? 세상대학 아니면 카톨릭 아니면 자유주의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렇게 욕망을 건드리는 거죠. 대학이 커지면 인가받고 또 인가를 받아야 사람들이 더 들어오니까요. 그러면 커리큘럼이 정부의 간섭을 받게 되고 대학 학위를 주는 것에도 간섭을 받아요. 그렇게 서서히 침투해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바이블빌리버 신학대학들은 일부러 큰 대학이나 인가받은 대학같은 것들을 원하지 않아요. 반드시 정부의 간섭을 받고 침투해 들어올 걸 알거든요. 우리는 믿음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가르쳐요. 믿음이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죠. 같은 믿음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로마카톨릭이 신학계에 침투하는 과정 [1980년대]

6단계 대배교

STEP SIX : The Great Falling Away

TODAY 

 FREE

NIV BIBLES

강대상 :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DEPOSIT

OLD KING JAMES BIBLES HERE

         ⬇

TRASH CAN


CHRISTIAN ONCE TRUSTED THEIR BIBLE. NOW THEY TRUST THEIR FAVORITE TEACHER!

그래서 지금 결국은 대 배교로 가고 있죠. 미국같은 경우에도 자기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면서 또 국가를 킹제임스성경을 기반으로 세웠는데 이제는 그 킹제임스 성경조차도 대부분 신학 대학들에서 배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만 믿고 가르칩니다.” 라고 하던 신학대학들, 큰 대학들이 이제 없어요. 점점 대배교로 가고 있는 겁니다. 근본주의 대학 중에 하나인 밥 존스 시니어 대학도 킹제임스성경을 버렸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침투를 하는 거죠.   


로마카톨릭에 영향받은 사상들

1. 최종권위 없애기

“최초의 원본만 영감을 받았다.”

=> 결국 지금은 원본이 없으므로 완벽한 성경은 없다는 주장


로마카톨릭에 영향받은 대표적인 사상들 몇개를 소개해 드리면요. 첫째, 최종권위 없애기 입니다. “최초의 원본만 영감을 받았다.” 몇백년 전만 해도 아무도 그렇게 안 믿었어요. 심지어 백년 전만해도 주요 신학대학들에서는 그렇게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침투해서 근본주의자들 조차도 최종권위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최초의 원본만 영감 받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지금은 최초의 원본이 없으므로 완벽한 성경은 없다.”는 주장입니다.  


2. 원어주의

“번역성경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어를 봐야한다.”

=> 결국 카톨릭이 만든 현대 원어사전들을 봐야 한다는 주장


원어주의입니다. “번역성경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어를 봐야한다.” 루터가 그렇게 믿었어요? 웨슬리가 그렇게 믿었어요? 심지어 칼빈도 그렇게는 안 믿었습니다. 찰스 펄젼, 조지 뮬러, 디엘 무디도 그렇게 안 믿었는데, 어떻게 이 사상이 침투를 해서 학자라는 이름으로, 학문이라는 이름 아래 어려운 용어들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압박을 하는 걸까요? 목회자들은 학문의 이름으로 갖다 대면은 버벅 거리면서 ‘아, 그런가보다.’ 하고 믿습니다. 또 신학대에서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또 목회자가 되고요. 그래서 “원어를 봐야 된다.” 이게 완전히 거의 세뇌가 됐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봐야만 알 수 있는게 아니에요. 믿음으로 성경을 공부해야 성경을 알 수 있습니다. 원어주의의 종국(결국)은 카톨릭이 만든 현대 원어 사전들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원어에 뭔가 특별한게 있어서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그 원어의 뜻에는 카톨릭이 심어둔 자기들의 교리를 지지하는 그런 것들이 숨겨져 있어서 입니다. 


3. 자유주의

“성경은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므로 비유적으로 봐야 한다.”

=> 결국 성경 해석은 카톨릭 교황이 정해준다고 주장


자유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므로 비유적으로 봐야 한다.” “성경은 사실이 아니야. 비유적으로 보면 진화론과 빅뱅이론과도 성경은 잘 어울릴 수 있어.” “성경은 문자적으로 보면 안 돼. 그냥 비유적으로 봐야 돼.”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비유는 뭐에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자기들이 풍유적 해석이라고 하는걸 말합니다. 결국 성경 해석은 카톨릭 교황이 정해준다고 주장 하는 거에요. 그들은 성경 해석의 열쇠와 천국의 열쇠를 다 교황이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거든요. 


4. 종교통합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따지지 말고 우리 모두 하나되자.”

=> 결국 “절대 진리는 없다.” “종교를 신뢰하자.” “카톨릭의 주도로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가치다.”라는 주장


이 모든게 결국 종교 통합으로 가는 거에요.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따지지 말자. 라고 하죠? 그러나 교리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되는 지에 대한 진리이죠. 그런데 카톨릭은 성경을 절대 진리가 아니라고 깔아 뭉개고 있 잖아요? 그들에게는 교리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모두 하나되자. 우리 그냥 사이좋게 지내자. 뭐가 맞았고 뭐가 틀렸고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 꼴보기 싫지?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하나가 되자.  결국 “절대 진리는 없다.” “종교를 신뢰하자.” “카톨릭의 주도로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가치다.” 라는 주장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대놓고는 그렇게 안하는데 물 밑에서 점점 그렇게 한다는 거죠. 그렇게 카톨릭이 영향을 끼친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먼저 역사적 진리로 인정을 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을 역사적 적용을 안 해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아래는 성경을 믿으면서 역사적 적용을 뒷받침하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입니다.


역사적 적용을 뒷받침하는 학자들

나는 고고학에서 성경에 반대되는 명확한 증거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은 지금까지 세상이 본 것 중 가장 정확한 역사 교과서입니다.”

ㅡ클리포드 윌슨 박사 <the Australian Institute of Ardhaeology>의 소장 역임


어떤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의 언급과 모순된 적이 없습니다!

ㅡ넬슨 글루엑 박사 : The author of explorations in Eastern Palestine (4 vol,,1934 - 51).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1940), The River Jordan (1946), Rivers in the Desert: A History of the Negev (1950). Deities and Dolphins (1965), and Hesed in the Bible (1968)...


클리포드 윌슨은 고고학을 연구해봤더니 성경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하는 거죠. 넬슨 글루엑도 “어떤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의 언급과 모순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믿어야 되는 거예요. 고고학이나 과학이나, 아무리 연구해 봐도 결국 성경이 옳다는 것만 증거되는데, 그런데도 성경을 반대하는 것은 성경을 믿기 싫다는 거죠.


역사적 적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에른스트 셀린(Ernst Sellin)과 칼 왓칭거 (Carl Watzinger)는 1907년에서 1909년, 그리고 1911년 사이에 유적지를 발굴하여 처음에 제안했던 두 개의 성벽유적이 여리고 전투에 대한 성경적 기록을 뒷받침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WORLD HISTORY ENCYCLOPEDIA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이 부분은 여리코 성인데요, 예전에는 여리코 성에 대해서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리코 성이 엄청 거대한 성이라는 것을 믿지 않다가 에른스트 셀린과 칼 왓칭거 이 두 사람에 의해서 엄청난 성벽이 있는 유적지와 연대까지 발견하고 나서야 이제 사람들이 믿게 된 거죠.


역사적 적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다니엘서 5:30-31

그날 밤 칼데아인들의 왕 벨샤잘이 살해당하였더라. 그리고 메디아인 다리우스가 그 왕국을 점령하였으니⋅⋅⋅  약 육십이 세더라.


1854년 이전 회의론자들

“벨샤잘이 누구냐? 허구의 인물이다!

바빌론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야!

성경은 오류 덩어리다!”


그리고 다니엘서 5장 같은 경우에는, 원래 성경을 안 믿고 싶어하는 회의론자들이 벨샤잘이라는 이름을 보고 성경을 비웃었어요. “아, 뭐 칼데아인들의 왕이 벨샤잘이라고? 그가 누구냐? 네부카드네자르 다음에는 나보니두스야.” “벨샤잘은 허구의 인물이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은 오류 덩어리다!”라고 주장을 한 겁니다. 회의론자들은 오히려 역사가 성경보다 더 옳다라고 한 거죠.


역사적 적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우르에서 발견된 나보니두스 실린더> 1854년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나의 소생인 장자 벨샤잘”


그런데 1854년에 우르에서 “나의 소생인 벨샤잘” 에 대해서 언급을 한 나보니두스 실린더가 발견됐어요. 그러니까 나보니두스 왕에게 장자 벨샤잘이라는 아들이 있었던 거에요.


<나보니두스 시가 기록> 1880년

그는 [나보니두스]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왕권을 [kingship] 그에게 [벨샤잘] 맡기고는 스스로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1889년에는 나보니두스 시가 기록도 발견이 됐는데 ‘그는 [나보니두스]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왕권을 [kingship] 그에게 [벨샤잘] 맡기고는 스스로 긴 여행을 떠났다.’는 기록이 발견된 거에요. 그러니까 나보니두스가 최후의 왕이었는데, 죽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에게 왕권을 맡기고는 떠났다는 거죠. 


Belshazzar 벨샤잘   Britannia

king of Babylonia 바빌로니아의 왕

alternative titles : Baltasar, Balthasar, Bel-shar-user


벨샤잘은 1854년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비문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발견될 때까지만 해도 오로지 성서 다니엘서 (5장, 7-8장)와 Xenophon의 Cyropaedia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브리태니커 사전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벨샤잘은 1854년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비문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발견될 때까지만 해도 오로지 성서 다니엘서 (5장, 7-8장)와 Xenophon의 Cyropaedia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정말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들이 발견된 거죠.


다니엘서 5:13,16

⋅⋅⋅다니엘에게 이같이 일러 말하였더라 ⋅⋅⋅만일 네가 그 글귀를 읽고 그것의 해석을 나에게 알려 준다면 ⋅⋅⋅ 왕국 안에서 셋째 치리자가 될 것이라. 정확한 고증

1. 나보니두스 / 2. 벨샤잘 / 3. 다니엘

 

그래서 다니엘서 5장 13,16절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벨샤잘 ’다니엘에게 이같이 일러 말하였더라. 만일 네가 그 글귀를 읽고 그것의 해석을 나에게 알려 준다면 ⋅⋅⋅ 왕국 안에서 셋째 치리자가 될 것이라.’라고 한 말에 의문이 있었어요. 왜, 다니엘이 벨샤잘왕 다음가는 둘째 치리자도 아니고 셋째 치리자인가? 그런데 이제는 알수 있죠? 나보니두스가 여전히 왕인 상태로 모든 것을 위임하고 떠나니까 벨샤잘이 실제적인 통치자로서 왕의 역할을 했던 겁니다. 고대에는 이런 형태의 통치가 많았어요. 둘 다 왕인데 겹치는 통치인 거죠. 그래서 둘 다 왕으로 불리지만 순서는 나보니두스가 최고 통치자이고 벨샤잘은 둘째 통치자. 그러니까 벨샤잘이 다니엘에게 줄 수 있는 권한은 셋째 치리자였던 거죠. 


성경의 예언 시리즈 [바이블빌리버 채널]

(유튜브 영상) 난공불락의 요새 그 붕괴를 예언하다 ➠1.고대 바빌론 제국에 관한 예언

(유튜브 영상) 세계 경제 중심지 파국을 맞이하다 ➠ 2.고대 티레 제국에 관한 예언

(유튜브 영상)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예언 ➠ 3.세계 최강 정복자의 등장

(유튜브 영상)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 ➠ 4.이스라엘의 기적

(유튜브 영상) 메시아의 탄생 시기는 비밀이 아니었다 ➠ 5.메시아의 탄생 시점에 관한 예언

(유튜브 영상) 다윗의 언약 & 이코니야의 저주 ➠ 6.메시아의 혈통에 관한 예언

(유튜브 영상) 이사야서 53장 금지된 성경 ➠ 7.메시아의 수난에 관한 이사야 예언

(유튜브 영상) 인류 최악의 살인 사건 ➠ 8 메시아의 죽음에 관한 시편 예언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역사적으로도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시리즈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위의 영상들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1. 역사적 적용 [Historical Application]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 그 어떤 세속사보다 정확하다. 성경은 단순히 종교서적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책이다. 전 인류의 역사를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역사책이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적용을 기본으로 해야만 나머지가 제대로 적용이 된다는 거에요.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 그 어떤 세속사보다 정확하다.’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요즘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우는게 자유주의 사상이에요. “아, 이것은 신화야.” 이건 그냥 예수님이 하신 말이야.” “사실은 예수님이 물위를 걷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창세기도 그렇고 모든 성경 기록들을 다 의심하다 보니까 “이건 다니엘이 기록한 게 아니야.” “이건 제 2 이사야가 기록한 거야.” “4복음서는 Q문서를 베낀거야.” 이런 식의 자유주의 사상들이 목회자들에게 주입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목회 현장으로 가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역사적 적용부터 틀려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머지 적용에 오류가 생겨 버립니다. 그래서  역사적 적용이 가장 기본입니다.


2. 교리적 적용 [Doctrinal Application]

해당구절이 특정 시대의 특정 대상에게 무엇을 믿고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 교리 : 마땅히 믿고 실행해야 하는 진리


두 번째로 교리적 적용입니다. 역사적 적용이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이 되고 나면 이것을 어떻게 교리적으로 적용하는가? 교리라는 말은 ‘마땅히 믿고 실행해야 하는 진리’라는 뜻이에요.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특정 시대의 특정 대상에게 무엇을 믿고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것이 교리적 적용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진리인 교리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이것을 믿고 실행해야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거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속성 자체는 모든 시대에 동일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진리 외에 하나님께서 ‘너는 이것을 믿고 이것을 실행해라.” 라고 주시는 명령 또는 교리가 있습니다. 특정 대상에게 적용하는 건데, 나라는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내가 실행해야 되는 건지, 유대인이 실행해야 되는 건지, 이방인이 실행해야 되는지’를 나눠야 되는 교리입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마다 항상 진리죠? 그래서 이것을 (신약시대의) 내가 실행해야 되는 교리인가? 아니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실행해야 되는 교리인가? 이런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특정 대상=>누구에게? 특정 시대=> 언제?) 어떻게 적용하느냐? 이것이 교리적 적용입니다.   


교리적 적용 [Doctrinal Application]

때때로 이것은 예언적 적용이라고 불린다. 예언적 적용은 이 구절이 정확히 어떤 대상에게 실제로 적용될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19:10)


‘때때로 이것은 예언적 적용이라고 불린다.’는 특히 구약에서 자주 일어나는 건데요. 구약의 사건이 그냥 역사적 서술뿐만 아니라 동시에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예언이기도 해서 교리적 적용을 때때로 예언적 적용이라고도 합니다. ‘정확히 어떤 대상에게 실제로 적용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줄 때가 있어요. 성경에서 “예수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라.” 라고 했죠? 성경에는 예언이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예언적 적용이라고 하는 이 교리적 적용을 간과하면, 즉 교리를 강조하지 않고 또 가르치지 않으면 성경에서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예언에 대해서 어마무시하게 모르게 됩니다. 그것이 다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는지 따지지 마.” 이런 분위기가 교회 안으로 계속 흘러 들어오다보니 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예언들을 아예 모르게 된 겁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 어느 대상에게 한 말인지를 나누지 않으니까 잘못된 적용들이 그렇게 나오게 된 겁니다.


교리적 적용 [Doctrinal Application]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보면, 성경의 기록 목적에서 교리가 첫 번째로 나옵니다. 교리가 잡혀야 책망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바로잡음도 제대로 되고 훈계도 제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가 적용이 안 되면 나머지도 제대로 적용이 안되겠죠? 나중에 영적 적용할 때도 설명을 더 드릴게요.


교리적 적용 [Doctrinal Application]

성경은 교리적으로 크게 세 대상을 구분하고 있다.

ㅡ유대인, 교회, 이방인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0:32

유대인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게도 전혀 실족 거리를 주지 말라.


성경은 교리적으로 크게 유대인, 교회, 이방인 세 대상을 구분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에 좀 자세히 설명할 때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고린도전서 10장 32절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게도 전혀 실족 거리를 주지 말라. 이렇게 얘기를 해요. “모든 사람에게 실족 거리를 주지 마라.” 라고 하지않고 세 대상에게 나눠서 얘기한 겁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씨로서, 야곱의 씨로서 물리적인 야곱의 자손들로서, 유대인들이죠? 아브라함의 언약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들의 민족의 하나님으로 둔 그 물리적인 씨,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아닌 나머지 모든 민족들은 이방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구분하시는 법은 유대인 아니면 이방인, 이 두 가지 밖에 없어요. 그런데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난 백성이 나타납니다, 그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서 다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간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죠. 엄밀히 말하면 세상은 이 세가지 부류 밖에 없어요. 구체적인 예언의 대상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하신 예언이 있고 모압에게 하신 예언이 있고..등등. 이렇게 나뉘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 이 세 가지로 나뉘는 겁니다. 시대를 나누려고 하면 또 훨씬 더 깊게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때가 있을 겁니다.


교리적 적용 [Doctrinal Application]

교리는 성별과 연합의 기준

교리적 적용은 매우 신중해야 함.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6: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너희가 배운 교리를 반대하여 분열들과 실족할 거리들을 야기하는 자들을 유의하고 그들을 피하라.


교리가 바로서야 성별과 연합의 기준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리적 적용은 매우 신중해야 되는데요. 로마서 16장 17절에 보면,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너희가 배운 교리를 반대하여 분열들과 실족할 거리들을 야기하는 자들을 유의하고 그들을 피하라. 라고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리적인 것에 있어서는 분리해라. 또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친다면 거기서 빠져 나와라.” 하시면서 교리적인 것을 아주 중요하게 말씀 하십니다. 왜냐면 우리의 믿음이 달려 있거든요. 여기에 내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실행해야 할지가 달려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분리하기를 단호하게 명령 하십니다.


3.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해당 구절을 개인의 영적 생활에 교훈으로 적용하는 것.

✔실제적인 적용


세 번째 적용이 영적 적용입니다. Spiritual Application, ‘해당 구절을 개인의 영적 생활에 교훈으로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실제적인 적용이에요. 교리도 “내가 무엇을 믿어야 되는가?” 라서 실질적인 거지만 교리는 한번 세워지면 흔들릴게 없고 바뀔게 없어요. 그런데 영적 적용은 매일의 묵상 가운데서 필요한 적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매일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필수적인 적용이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2:2

그런즉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히려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을지니,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기꺼이 받으실 만한 뜻과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이 영적 적용은 쉽게 말해서 매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적용이에요.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까?’ 이렇게 인도를 받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거든요. 그래서 이 영적 적용이 가장 실제적인 거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리적 적용과 역사적 적용이 기반이 안 되면 굉장히 잘못될 확률이 큽니다. 왜냐면 이 셋 중에서 가장 주관적이거든요. 똑같은 구절을 가지고 똑같은 장을 읽었는데도 남편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아내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거든요. 때로는 똑같은 성경 구절을 읽었을 때 우리 가정이 나아가야 될 방향을 알려 달라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또 하나로 모아 주시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에게 오늘 개인적으로 실행해야 될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르게 보여 주실 때가 있어요. 예시들을 제가 보여 드릴게요. 교리적 적용과 역사적 적용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적용하는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그런즉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히려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을지니,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기꺼이 받으실 만한 뜻과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늘 생각을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는다면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 12장 1절의 전제 조건은 헌신이에요. ‘내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다음에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그 다음에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으면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 기꺼이 받으실 만한 뜻, 그리고 선하신 뜻을 입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 이것이 나에게 하나님이 허용하신 뜻이구나.” “아, 이것을 지금 내가 실행하면 하나님께 기꺼이 받아주실 만한 완전한 뜻이구나.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구별해서 실행하게 해주신다는 거죠.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주의사항

세가지 중 가장 주관적이기 때문에 교리적 적용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잘못된 적용이 될 수 있다.


주의사항은 아까도 말씀드렸죠. 셋 중에 가장 주관적입니다. 그리고 그때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대상에 따라, 사람들에게 각자 다양하게 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교리적 적용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잘못된 적용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 어떤 교회를 다닐 때 청년들이 한 20명이 똑같은 장을 읽고 묵상하는 내용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그 내용이 제각각 다른 거예요. 그냥 교훈 정도가 아니라 해석이 너무 달랐어요. 그런데 그 해석을 마치 교리적으로 적용을 하는 거예요. 그게 엄청 혼란스러운 건데도 사람들은 이것이 혼란스럽다는 것조차도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러면 진짜 이상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어요. 교리적 기본이 안되면 영적 적용은 정말 천차만별로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래, 이것은 나를 위한 구절이야. 내가 길이다. 나를 따르라.” 이러면 교주가 되는 거에요. 이것을 잘못 적용해 버린 거죠. 이걸 그냥 교훈이 아니라 교리로 만들어 버렸어요. 정확한 교리는 뭐에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거잖아요? 예수님 없이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잖아요? 그것이 진리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나에게 교훈으로 적용하는 거예요. 일단 구원 안 받을 때에는 “아, 내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이구나!” 그 다음 구원받고 나서는 “아, 예수님은 구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말 나의 모든 것에서 바른 길이 되어 주시는구나.” 이렇게 교훈으로 적용을 해야 됩니다.  잘못 적용하면 주관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 집니다.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19:14

오, 나의 힘이요, 나의 구속주이신 주여, 제 입의 말들과 제 마음의 묵상이 당신의 목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게 하소서.


주께 받아들여지는 묵상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교리적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시편 19편 14절을 보세요. 지금 다윗이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거죠. 오, 나의 힘이요, 나의 구속주이신 주여, 제 입의 말들과 제 마음의 묵상이 당신의 목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게 하소서. 지금 다윗은 자신의 묵상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간청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묵상이 받아들여지게 하려면 우리가 아무리 묵상을 오랫동안 한다 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받아들여집니다. 바르게 하는게 중요해요. 그럴려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정확하고 바르게 나누어서 공부해야 제대로 하는 겁니다. 열정적으로 시간만 오랫동안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게 아니라는 거죠.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개인적 적용의 중요성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해지며 모든 선한 행위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리가 바로 잡힌 다음에야 책망과 바로 잡음과 의로 훈욕하는게 유익하다고 했고요. 또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해지며 모든 선한 행위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삶에 있어서 각 개인의 영적 적용은 매우 중요한 거죠.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개인적 적용의 중요성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19:11-12

더욱이 당신의 종이 그것들에 의하여 경고를 받나이다. 또한 그것들을 지킴으로써 위대한 보상이 있나이다. 누가 자신의 과오들을 깨달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께서 저를 은밀한 잘못들로부터 청결하게 하여 주소서.


시편 19편 11-12절을 보면, 더욱이 당신의 종이 그것들에 의하여 경고를 받나이다 . 그러니까 여러분이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경고를 주실 때가 있어요. 다윗이 죄를 짓는 장면을 보시고 경고를 주셨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도 왕이 두려워 자기 아내를 팔아 넘길 때 경고를 받았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형태로 경고를 주실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원래 읽던 차례대로 성경을 쭉 읽어내려 가고 있는데 그때 마침 내가 어떤 사람을 막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읽고 있는 말씀을 통해 “ㅇㅇ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만 두려워해라.” 이렇게 경고를 주실 때가 있거든요. 또한 그것들을 지킴으로써 위대한 보상이 있나이다. 또 우리 개개인이 교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잘 적용을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과오들도 깨달을 수 있고 은밀한 잘못들을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시기도 하세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드러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들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깨끗이 씻어내고 자백하는 거죠. 이런 상황들을 우리가 묵상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개인적 적용의 중요성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119:9,105

청년이 무엇으로 자신의 길을 정결하게 하리이까? 당신의 말씀에 따라 그 길에 주의함으로써 정결하게 하리이다⋅⋅⋅당신의 말씀은 제 두 발에 등불이요, 제 행로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매일매일 걸어가는 길에 빛을 주시는 거에요. 먼 옛날 역사에 기록된 고문서로 끝나면 안 돼요. 딱딱한 교리에서 끝나면 안 돼요. 매일 실행함에 있어서, 매일 인도함에 있어서 나에게 늘 신선하게 비춰주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 적용이죠.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다윗의 간증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119:97,99

오, 제가 당신의 법을 어마나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하루종일 저의 묵상이 되나이다⋅⋅⋅저는 모든 선생들보다 더 많은 명철을 지녔나이다. 이는 당신의 증언들이 저의 묵상이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해서 하루종일 묵상한 다윗이 이렇게 말하죠. 저는 모든 선생들보다 더 많은 명철을 지녔나이다. 이는 당신의 증언들이 저의 묵상이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법을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명철과 지혜를 주실 수 있는 겁니다.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다윗의 간증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32:8, 16:7

내가 너를 지도하고 네가 가야할 길을 너에게 가르치겠노라. 내가 나의 눈으로 너를 인도하겠노라⋅⋅⋅

저는 저에게 조언을 주신 주를 찬양하겠나이다. 저의 속마음도 밤시간들 동안 저를 지도하나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도하고 네가 가야할 길을 너에게 가르치겠노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직접 지도하시고 가야 할 길을 직접 가르쳐 주시겠어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하는게 아니죠. 말씀을 통해 하는 겁니다. 내가 나의 눈으로 너를 인도하겠노라 ⋅⋅⋅저는 저에게 조언을 주신 주를 찬양하겠나이다. 하나님이 매일매일의 순간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조언을 해주세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언을 받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눈으로 너를 인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영적 적용 [Spiritual Application

다윗의 간증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계시록 5:6

⋅⋅⋅일곱 눈들은 온 땅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


요한복음 6:63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들, 그것들은 이요, 그것들은 생명이라.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보면, 일곱 눈들은 온 땅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거에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라는 성경 말씀에서 보면 알 수 있죠. 진리의 영은 진리로 인도를 하거든요.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은 늘 함께 역사를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매일매일 인도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과하고 성경을 교리적으로만 딱딱하게만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굉장히 드라이 해지고 메마른 신앙 생활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교훈으로만 볼려고 해요. 그러면 엄청 잘못 적용하는 겁니다. 잘못 인도받고 잘못된 길로 갈 수가 있죠. 세 가지 적용으로 균형이 잡혀야 됩니다


실제 적용하기

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가지 적용의 법칙 예시들을 볼게요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2:8

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이방 민족들을 너의 유산으로, 땅의 맨 끝부분들을 너의 소유로 주겠노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역사적 적용

이 시편은 다윗이 쓴 시편인데 실제로 다윗은 복동쪽의 조바흐, 시리아, 하맛에 이어 필리스티아, 에돔, 모압, 암몬, 아람 등 이방 민족들을 정복했어.


역사적으로도 적용은 일단 시편 2편은 다윗이 쓴 시라고 해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알려주신 약속을 붙잡고 다윗은 실질적으로 수많은 민족들을 정복했어요. 하지만 시편 2편 8절 이 구절은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구약의 수많은 구절들이 교리적으로 적용되면 예언으로 넘어간다고 했죠? 특히 시편에 자주 일어나는데 이 구절도 그렇습니다. 왜냐면 다윗의 시편은 종종 메시야의 시편으로 불리기 때문이죠. 다윗이 쓴 시편 22편만 봐도 시작부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 적용되는 거잖아요. 다윗은 십자가에 달린 적이 없어요. “개들이 나를 찔렀나이다.” “나의 두 손과 두 발을 찔렀나이다.” 다윗은 그렇게 찔린 적이 없어요. 내 혀가 입 천장에 달라붙었다. 목이 마르다. 뭐 벌레다, 뭐 이런 것들이 다윗이 겪은게 아니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용해서 쓰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언인 거예요. 다윗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해서 자기의 정말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썼을지 모르지만 사실 교리적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쓴 거죠. 시편 2편도 마찬가지에요.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2:8

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이방 민족들을 너의 유산으로, 땅의 맨 끝부분들을 너의 소유로 주겠노라.


교리적 적용

“너는 나의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7절) 말씀과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 (12절) 말씀으로 보아 이 시편은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으며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의  통치기간에 온 땅의 민족들에게 성취될거야.


교리적으로 적용하면 “너는 나의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하나님께서 낳은 유일한 아들 예수님, 독생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것은 다윗에게 적용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낳으신 아들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리를 공부하려면 문맥을 문자적으로 잘 봐서 이것이 교리적으로 적용되는 확실한 진리가 되는 대상을 찾아야 되는 거죠.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라고 했지 다윗한테 경배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보아 이 시편은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으며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의 통치 기간에 온 땅의 민족들에게 성취될거야.’ 예수님께서 진짜 오시면 예수님은 모든 이방 민족들을 유산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땅의 맨 끝부분들까지도 다 통치하게 됩니다. 그게 천년왕국입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한 성취가 이제 교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2:8

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이방 민족들을 너의 유산으로, 땅의 맨 끝부분들을 너의 소유로 주겠노라.


영적 적용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땅의 맨 끝부분까지 유산으로 주시는구나. 주여, 저에게 태평양 섬들을 주소서. 나는 태평양 섬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겠어.

ㅡ “식인종들의 왕”으로 불린 존 페이튼 선교사의 소명 구절


교리적 적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편 이 구절을 읽고 실제로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한 사람을 소개할게요. 바로 이 사람이 존 페이튼 선교사입니다. 식인종들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정말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했던 아주 훌륭한 선교사에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물론 이것이 자기에게 교리적으로 해당된다라고 당연히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썼지만, 교리적으로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실 일이고, 또 역사적으로도 다윗에게도 이렇게 해 주신 분이시니까, 나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구해야겠다.’ 그래서 “저 섬들 땅의 맨 끝 부분 들에 있는 저 이방의 식인 종들을 저에게 주십시요. 제가 주님께로 인도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헌신을 한 겁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태평양의 섬들로 복음을 전하러 가야겠다.” 고 적용을 하는데, 존 페이튼 선교사는 이 구절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지금도 개개인에게 다 각각 다양하게 역사를 하시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16:15

그러자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 “그것은 만나다.” 하였더라. 이는 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라. 그리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였더라. “이것이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빵이라.

역사적 적용

만나는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제 내려 주신 음식인데 고수풀 씨같이 하얀색인데 꿀로 만들어진 전병들 맛이 있어.


예를 들면, 출애굽기 16장 15절 만나를 먹는 장면이에요. 역사적 적용에서 당연히 출애굽 당시에 실질적으로 만나가 내려왔았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었습니다. ‘고수풀 씨같이 하얀색인데 꿀로 만들어진 전병들 맛’이 있는 것이라 설명을 하죠. 역사적으로 이런 만나를 진짜 먹었습니다.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16:15

그러자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 “그것은 만나다.” 하였더라. 이는 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라. 그리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였더라. “이것이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빵이라.

교리적 적용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백성들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셨듯이, 미래에도 메시야께서 광야에서 백성들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실 거야. (신명기 18:15)


교리적으로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반복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얘기를 하셨으니까 또 미래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한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먹을 일들이 있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중적용 설명하면서 한 적이 있어서 넘어가겠습니다.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16:15

그러자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 “그것은 만나다.” 하였더라. 이는 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라. 그리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였더라. “이것이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빵이라.

영적 적용

하나님께서는 광야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는 구나. 주어진 상황이 어렵다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먹이실 것을 믿고 기도하자


역사적 적용은 분명히 내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실제로 하신 일인데, 내가 이것을 보면서 영적 적용으로 어떤 교훈을 받느냐? “아, 하나님은 그 민족 전체 몇 백만 명이 되는 그민족 전체도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먹이실 수 있는 분이다. 정말 그런 분인데 내가 하나님을 신뢰해서 나가야 겠구나. 그리고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이렇게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 불평하다가 멸망했으니까 나는 불평하면 안되겠구다… 등등. 이런 교훈들을 적용할 수가 있죠.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68:5

아버지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요, 과부들의 판관이신 분은 그분의 거룩한 거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역사적 적용

실제로 이 시편을 썼던 다윗의 왕국 때 하나님께서 공의를 보이셨어. 그런 공의롱신 하나님을 안 다윗이 쓴 시편이야.


마지막 예시입니다. 이 구절을 역사적으로 적용하면 다윗의 시편이기 때문에 다윗의 왕국 때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실제로 보이셨고 또 그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안 다윗은 이 시편을 쓰면서 “하나님은 정말 공의롭고 또 자비로우신 분이구나. 아버지 없는 자들에게 정말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과부들의 판관이 되어 주시는 분이시구나.”라고 했어요. 역사적으로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심을 알고 썼다라고 보는 거죠.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68:5

아버지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요, 과부들의 판관이신 분은 그분의 거룩한 거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로다.

교리적 적용

재림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편의 내용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왕국은 공의롭고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보호해 주실 거야.


교리적 적용으로는 이것이 또 메시아 시편과 연결이 돼요. ‘재림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편의 내용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왕국은 공의롭고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보호’해주시는 완벽한 복지국가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완벽한 것을 이루시고 이것이 곧 성취가 될 것이다라는 것을 교리적으로 알 수가 있어요.


세가지 적용의 법칙 ㅡ 예시

[표준킹제임스성경] 시편 68:5

아버지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요, 과부들의 판관이신 분은 그분의 거룩한 거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영적 적용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의 아버지시고 과부들의 판관이시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아원을 운영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입증해 보이겠어! ✔ 조지 뮬러의 소명 구절

 

영적 적용을 봅시다. 이것은 조지 뮬러가 실제로 영적으로 적용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산업 혁명으로 인해서 공장들이 엄청 많아지죠. 그로 인해서 고아들이 엄청나게 생겨납니다. 그 당시는 노동법이나 근로법 같은 것들이 제정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정말 아이들이 공장에 가서 열몇시간씩 일하고, 부모 없는 아이들은 또 혹사당하고, 아무도 돌봐줄 사람 없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 아이들이 하나님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절이 시편 68:5절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없는 자들의 아버지도 되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내가 입증해 보이겠다.” 그래서 이걸 부르심의 구절로 인용을 합니다. 그 당시의 고민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 거에요.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고아원을 운영을 합니다. 이래서 얼마든지 영적 적용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교리적 적용과 역사적 적용을 무시하지 않고 정확하게 아는 상태에서는 영적 적용으로도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조화로운 적용을 다 이해를 해야 바른 성경 해석과 그 해석 안에서 자유로운 적용과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5:13-14

이는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가 아기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나이에 이른 자들에게 속해 있나니, 곧 그들은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감각들이 단련되도록 하여 선악을 둘 다 분별하는 자들이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잠언 26-7

절뚝거리는 자의 두 다리는 대등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들의 입안에 있는 비유도 그러하니라.


결론적으로 두 가지를 보여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 13-14절을 보면,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가 아기이기 때문이라. 아기는 계속 젖을 먹어야 돼요. 젖은 듣기 좋은 은혜로운 말씀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 :2-3절에서 젖과 관련해서 ‘갓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열망하라⋅⋅⋅주께서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맛보았다면 그리하라’ 그것으로 주의 은혜로우심을 알게 된다라고 하거든요. 이 구절이 은혜와 관련이 있어요. 은혜로운 말씀은 다 좋아하죠? 그리고 모두에게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거기에만 머물면 의의 말씀에는 능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나이에 이른 자들에게 속해 있나니, 곧 그들은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감각들이 단련되도록 하여 선악을 둘 다 분별하는 자들이라. 우리는 단단한 음식들로 잘 분별해서 적재 적소에 잘 사용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무궁무진하게 역사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른 해석이 있어야 그 위에 엄청난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잠언 15장 2절에서도 지혜로운 자들의 혀는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느니라.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의 입은 어리석음을 쏟아 내느니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어리석게 사용해요. 양날 검인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면 수술 도구처럼 암을 잘라낼 수 있는 건데요. 잠언 26장 7절 ‘절뚝거리는 자의 두 다리는 대등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들의 입안에 있는 비유도 그러하니라.’ 성경을 잘 몰라서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구절과 구절, 이 비유와 이 비유가 맞지 않는데도 자꾸 억지로 연결 시켜서 절뚝 거리는 사람처럼 어리석음을 나타내게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짝으로 보여 주신 구절과 구절을 연결시켜서,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성경을 제시하고, 그리고 정확한 적용도 알려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 이 세 가지 적용을 자유자재로 다 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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