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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간격의 법칙

  • 작성자 사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4월 24일
  • 1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28일

24.04.24.

[성경공부 자료] 성경해석학 간격의 법칙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간격의 법칙

“성경은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오늘 보실 성경해석학의 법칙은 간격의 법칙입니다. 영어로는 The Law of the Gap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간격을 두시고 또는 침묵을 두시고 또 공간을 두신 이유가 있다라는 것이 간격의 법칙입니다. 성경은 어떤 곳에서는 일부러 침묵하시고 어떤 곳에서는 일부러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시고 또 어떤 특정 부분은 강조를 하시고 어떤 특정 부분은 그냥 넘어 가세요. 그래서 선택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모든 것은 목적과 의도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목적과 의도를 합치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 나온다라는 거예요. 


간격의 법칙 The Law of the Gap

성경은 종종 언급 없이 특정 기간을 건너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들에 대해 계시를 준다. 다시 말해 성경은 또한 특정 기간에 대해 일부러 침묵한다.

The Bible often skips periods of time without comment. The Bible gives us revelation on things that God wants us to know. In other words, The Bible is also silent on some periods of time on purpose.

 

그래서 간격의 법칙, The Law of the Gap을 보시면요. ‘성경은 종종 언급 없이 특정 기간을 건너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들에 대해 계시를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를 주신 것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가 이것은 꼭 알아라.” 하시는 것만 알려 주시는 거지 “너희가 알 필요 없다.” 하시는 것은 일부러 계시를 안 하시는 거죠. 그리고 ‘다시 말해 성경은 또한 특정 기간에 대해 일부러 침묵한다.’ 그래서 어떤 갭이 생기고 간격이 생긴다라는 것입니다.  


✓ 성경은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20:30-31

¶ 그리고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들을 그분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행하셨더라. 그러나 이것들이 기록된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가 믿음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 부분을 조금 더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알려 드리면 성경이 선택적으로 기록되었음을 보여 드리는 겁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을 보시면요.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목적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들을 그분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행하셨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이렇게 기록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데,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것 외에도 많은 표적들을 그분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행하셨다라고 얘기를 하죠. 다 기록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러나 이것들이 기록된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가 믿음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생명을 얻게하려는 것이다.” 라고 기록 목적을 밝혔죠. 그래서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 학자들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간 복음, Synoptic Gospels라고 하고요. 그 다음에 요한복음은 따로 놓습니다. 물론 그 분류하는 기준이 어떤 차이가 있어서 분류한게 아니라 사실은 성경을 비평하기 위해 세상 학자들이 분류한 겁니다. 그만큼 누가 봐도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랑은 다르게 요한복음은 사건이 몇 가지가 기록 안 돼 있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선택적으로 아주 심도있게 다루면서 바로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바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을 제시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른 많은 표적들을 수행하셨어도 일부러 그 목적에 합당한 것들만 집중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죠.


✓ 성경은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21:25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많은 것들도 있으니, 만일 그것들이 낱낱이 기록되어야 한다면 심지어 세상 자체도 기록될 책들을 담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그래서  요한복음은 21장이 마지막 장인데 이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많은 것들도 있으니, 만일 그것들이 낱낱이 기록되어야 한다면 심지어 세상 자체도 기록될 책들을 담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하고 이렇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들을 사도요한은 계속 예수님 옆에 있으면서 모든 것들을 다 목격한 증인인데 이걸 다 낱낱이 기록할 수 없었다고 말하죠. 21장이면 요한복음도 꽤 분량이 많은 편인데,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내가 선택적으로 일부만 기록하였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특정 부분에 대해서 강조를 하거나 또는 침묵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계시라는 거에요. 침묵도 계시라는 겁니다.    


인류 역사 기준과 성경 분량                                                                  

1) 약 1655년의 세월 - 창조부터 대홍수 이전까지 – 창세기 1장 B.C. 4004년 경 - 창세기 6장 B.C. 2349년 경 => 6장


2) 약 660년의 세월 - 대홍수부터 요셉의 사망까지.- 창세기 7장 B.C. 2349년 경 - 창세기 50장 B.C. 1689년 경 =>  44장


3) 약 650년의 세월 -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온 시점부터 사울의 죽음까지 - 출 1장 B.C. 1706년 경 – 삼상 B.C. 1056년 경 => 217장


4) 약 659년의 세월 - 다윗 왕부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 – 사무엘기하 B.C. 1056년 경 - 말라기 B.C. 397년 경 => 662장


5) 약 400년의 기간 – 구약이 기록된 이후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 없음


<도표>


이제 대략적으로 여러분께 예시를 보여 드릴게요. 인류 역사 기준을 보면요. 1)번 창세기 1장 부터 창세기 6장까지는 분량이 6장 밖에 안되잖아요? 그런데 약 165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보통 아담이 최초로 만들어진 시점을 BC 4004년 경, 약 6천년 전으로 보죠. 그때부터 홍수 직전까지 B.C. 2349년 경까지, 약 1655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단 6장 안에 다 기록을 하십니다. 그런데 2)번 대홍수부터 요셉의 사망까지는, 창세기 7장부터 창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훨씬 더 짧은 660년이라는 세월을 무려 44장이라는 분량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아주 상세하게 다뤄지죠. 그리고 3)번 출애굽기에 들어가면요. 이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더 많은 내용이 설명 되어 집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점으로 많은 율법들이 기록이 되고 사무엘상까지, 마지막 판관인 사무엘과 불법적인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까지가 기록이 되죠. 즉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온 때부터 사울의 죽음까지, 약 650년의 세월에 해당되는 분량이 무려 217장에 자세히 쓰여 집니다. 그러다가 4)번 사무엘기하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기록 되는데요. 이 다윗왕부터 구약의 마지막 장 말라기까지 기록된 시기를 보면요. 약 659년의 세월로 3)번과 거의 같은 세월에 불과한데도 약 662장의 분량이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부터 왕들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다루셨고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 등을 통해서 수많은 예언까지 담아 놓으셨어요. 하나님께서 미래에 왕국을 진짜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어떻게 세우실지 또 어떻게 회복하시고 또 이스라엘의 몰락과 회복을 어떻게 하실지, 지금 역사 그대로 일어날 거라는 예언까지 아주 상세하게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시가서라든지, 잠언이라는 이런 교훈까지 아주 상세하게 많이 담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도표> 를 참조하시면 1)번의 기간에 비해서 4)번의 기간이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기록이 늘어난 겁니다. 하나님께는 더 초점을 두시는 부분들이 있으시다는 거죠. 그리고 심지어는 5)번 말라기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약 400년의 기간 동안은 단 한 장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 사이의 침묵기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침묵기를 알고 싶어서 신구약 중간사라고 만들어서 그때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그냥 세속사를 공부하는 정도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면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계시도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러다  400년간의 침묵을 깨고 예수님이 탄생하시면서 다시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기 시작하셨죠. 그리고 신약 전체는 1세기도 안되는 기간동안에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 기간은 인간에게는 그냥 시간이 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하나님 관점에서는 1600년간의 시간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실 수 있고요. 또 1년도 안 되는 시간일지라도 아주 길게 강조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간격이 성경에는 있는데 그것 또한 계시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 기준과 성경 분량                                                                  

1) 약 1655년의 세월 - 창조부터 대홍수 이전까지 – 창세기 1장 B.C. 4004년 경 - 창세기 6장 B.C. 2349년 경 => 6장


2) 약 660년의 세월 - 대홍수부터 요셉의 사망까지.- 창세기 7장 B.C. 2349년 경 - 창세기 50장 B.C. 1689년 경 =>  44장


3) 약 650년의 세월 -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온 시점부터 사울의 죽음까지 - 출 1장 B.C. 1706년 경 – 삼상 B.C. 1056년 경 => 217장


4) 약 659년의 세월 - 다윗 왕부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 – 사무엘기하 B.C. 1056년 경 - 말라기 B.C. 397년 경 => 662장


5) 약 400년의 기간 – 구약이 기록된 이후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 없음


아담의 타락 => 1) => 노아의 홍수 =>2) =>율법 제정=> 3) => 4) => 5) => 신약

약BC4000—------------약BC3000—-------------약BC2000—---------------약BC1000—----약AD


그래서 쉽게 (한 눈에) 보면요. 아담의 타락부터 노아의 홍수 그 다음에 율법이 제정되는 때부터 그 다음에 다윗왕이 세워지고 또 멸망하고  신구약 중간사까지 이렇게 나눠져 있는 기간들이 나와 있다라는 겁니다.


✓ 성경은 시간순서가 아닌 의도적으로 배열되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이사야서 28:10

이는 반드시 규범 위에 규범이 있어야 하고, 규범 위에 규범이 있어야 하며, 어구 위에 어구가 있어야 하고, 어구위에 어구가 있어야 하며,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성경은, 그냥 세속사처럼 시간 순서로 배열되지 않았다라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시간 순서대로 쭉 일어난 일을 나열하신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어떤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특정 상황에 대해서 더 강조하기도 하죠. 예를 들면 룻기 같은 경우죠. 우리가 잘 아는 사사기는 사사들의 몰락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룻기는 사사들이 몰락한 뒤의 다음 시대를 말하는게 아니라 사사들이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대의 기록입니다. 보아스라는 인물과 룻이라는 인물에 촛점을 맞추고 싶어서 이 스토리를 사사기 뒤로 따로 가져와 집중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간 순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열을 하십니다. 심지어 복음서도 마찬가지에요. 마태복음은 시간 순서로 되어 있지 않은게 많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시간 순서로 많이 돼 있어요. 왜냐면 의사 누가의 기록 목적 자체가 그 당시 이방인 테오필루스라는 각하에게 질서있게 정돈을 딱 해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였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잘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님께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셨다는 왕국과 왕에 초점을 맞춰 배치를 했기 때문에 시간 순서가 중요한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사야서 28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는 반드시 규범 위에 규범이 있어야 하고, 규범 위에 규범이 있어야 하며, 어구 위에 어구가 있어야 하고, 어구위에 어구가 있어야 하며,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 공부 하듯이,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체계적으로 순서대로 1,2,3,4,5… 이런 식으로 제시하지 않으시고요.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어구 위에 또 다른 어구를, 여기서도 반복하시고 저기서도 반복하시면서 흩어 놓으셨다는 거예요. (성경 공부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먼저 공부를 한 사람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 이해하기 쉽게 정돈을 해가지고 설명을 해 놓은 거지만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일부러 흩어 놓으셨다는 겁니다.          


간격의 법칙 - 비순차적 기록 - 창세기 3:15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3:15

또한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또 너의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내가 적개심을 두겠노라.

그 여자의 씨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 재림

- 초림


그 다음에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순차적으로도 기록돼 있지 않고 간격도 엄청나게 긴 계시가 한 절에 그냥 같이 나와 있어요. 예를 들면, ‘또한 너와 그 여자 사이에’  이 ‘’가 사탄, 뱀입니다. ‘또 너의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내가 적개심을 두겠노라. 그 여자의 씨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지금 하나의 예언에 다 포함이 되어 있잖아요. 우리는 성취가 된 것을 보고 알게 됐죠. 사탄이 여자의 씨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은 초림 때 십자가의 사건이었고 예수님께서 여자의 씨로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재림에 있을 거라고 예언된 상황이란 말이죠. 그런데 순서가 재림을 먼저 얘기를 하고 초림을 뒤에 얘기하시는 거예요. 이 쉼표 하나에 2천년 이상의 간격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이 사이에 2천년 간격이 있을거야.”라고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쉼표 하나에도 2천년 간격이 생길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예언의 특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언서들을 처음 봤을 때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초림과 재림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떤 것은 쉼표 하나로 2천년의 간격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에요. 베드로전후서만 봐도 예언자들 자체도 자기가 그것을 예언하고 기록했는데도 성령님께서 도대체 어느 시기를 말씀하시는지 헷갈려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연구를 했어요. 자기는 하나님께서 말하라 해서 예언을 한 건데 자기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단 말이죠. 다니엘도 잘 몰라서 하나님께 물어 봤더니 하나님께서 “그냥 너의 길을 가라. 이것은 봉인돼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단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다행히도 교회 시대를 살고 있어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다 보니까 이미 예수님과 관련해서 이루어진 것들은 초림, 이루어질 것들은 재림으로 나눌 수 있고요. 예수님이 받으신 수난과 고통과 수치와 십자가 교통은 초림, 예수님 받으실 영광 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통치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정복하는 그런 모습들은 재림으로 나눌 수 있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언을 볼 때 나누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겁니다. 우리는 예언의 산봉우리라는 표현이 들어 봤을 겁니다. 클라렌스 라킨이 잘 표현한 건데, 우리는 초림이라는 산봉우리와 재림이라는 산봉우리 사이에 있는 교회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있었던 것은 초림이고 앞으로 있을 것은 재림이라는 것을 구분합니다. 그런데 이 사이의 교회 시대를 몰랐던 구약의 예언자들 입장에서는 옆에서 봤을 때는 그냥 두 산봉우리가 겹쳐져서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멀리서 산맥을 보면 한 장면으로 보이는 것처럼요. 우리가 산맥에 대한 그림을 보거나 사진을 찍으면 여러 산들이 겹쳐 있어도 우리에게는 하나의 산처럼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한 번의 예수님 오심으로 봤던 것이 교회 시대에서는 뒤로 봤을 때는 초림 앞으로 봤을 때는 재림이 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한 구절에서도 간격을 많이 두셨다는 거죠. 우리의 목적은 그런 간격들을 점점 공부해 가면서 알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 해석할 때 알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은 이렇게 간격을 두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과하면 예언서들을 잘 이해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볼 때 이렇게 간단한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도 잘 이해를 못할 수도 있어요. 왜냐면? 실질적으로 여기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게,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은 사탄이 여자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초림 때 십자가에 이루어진 사건이란 말이죠. 그러니깐 당연히 그 여자의 씨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도 초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나눠 보지 않은 거죠. 그사람들의 생각대로 라면 왜? 베드로전서 5장에서 ‘울부짖는 사자처럼 마귀가 삼킬자를 찾아서 돌아다닌다.’라고 했을까요? 어떻게 머리가 박살난 존재가 삼키려고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지금 마귀는 열심히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부서진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성경을 조금만 더 연구를 해도 이 부분은 초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2천 년간의 간격을 쉼표 하나로 두실 수 있다라는 것을 이해를 못하니까 (초림) 하나에 맞춰서 요거(재림)도 끼워 맞춰 버리는 거죠. 그러면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 침묵도 계시이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23:9

그때 그가 그분께 많은 말들로 질문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그에게 아무것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더라.


침묵도 계시입니다. ‘그때 그가 그분께 많은 말들로 질문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그에게 아무것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더라.’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을 해도 예수님이 대답을 안 했어요. 빌라도가 그 질문에 관심이 없는 것을 예수님은 다 알아요. 그리고 헤롯도 질문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셨어요. 그래서 대답을 안 하십니다. 헤롯은 이미 침례자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어요. 처음 들을 때는 반응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여러가지 이유로 잘못된 죄를 통해서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베어 버리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더 이상 계시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줬는데도 침례자 요한을 목을 베어 버리기까지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헤롯이 기뻐 가지고 굉장히 많이 물어 봤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이 대답을 안했어요. 계시를 안 주신 거예요. 다 이유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으신 것도 우리는 계시라는 걸 아는 거예요. 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이렇게 물었단 말에요. 정말 갈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제가 배우고 싶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라고 물은게 아니라 비아냥 거리듯이 “진리가 뭔데 그래?” 하고는 질문하자 말자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나 버리잖아요.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게서 응답을 안해 주신다라는 거죠. 침묵도 계시입니다.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사울과 다윗의 비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무엘기상 28-6

그리하여 사울이 주께 여주었을 때 주께서는 그에게 꿈들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들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더라.


또 예를 들면, 사울의 경우를 보세요. ‘그리하여 사울이 주께 여주었을 때 주께서는 그에게 꿈들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들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더라.’ 지금 사울은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지금 필리스타인 군대가 쳐들어오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상황인 거예요. 이스라엘은 신정통치 국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어봐야 되는데 하나님께 물어봐도 안 알려 주시는 거예요. 꿈도 안 주시고 예언자들로도 안 알려주시고 우림으로도 안 알려 주시는 거예요. 우림이 뭐냐면? 우림과 둠밈이라고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이라는 옷이 있어요. 거기에 심판의 흉배를 장착을 하는데, 거기에 넣는게 우림과 둠밈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대답을 해 주셨어요. 구약의 상황이죠. 지금은 우리가 성경이 완성이 됐기 때문에 성경이라는 명확한 계시의 글들로 우리가 공부를 해서 알지만 그때는 성경이 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꿈이나 현시나 예언자들이나 우림과 둠밈같은 대제사장의 흉배로도 알려 주실 수 있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사울에게는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사울과 다윗의 비교

[표준킹제임스성경] 레위기 8:7-8

그리고 그는 아론에게 웃옷을 입혔고, 그에게 허리띠를 둘러 주었으며, 그에게 예복으로 옷

입혔고, 그에게 에봇을 입혔으며, 그에게 에봇의 정교한 허리띠를 둘러 주었고, 그것을 가지고

에봇을 그에게 묶어 주었더라. 그리고 그는 그의 위에 흉패를 달아 주었더라. 또한 그는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더라.


우림과 둠밈은 레위기 8장에 보면 나와요. 대제사장이 아론이었잖아요. 구약의 첫 번째 레위인 대제사장에게는 ‘그에게 허리띠를 둘러 주었으며, 그에게 예복으로 옷

입혔고, 그에게 에봇을 입혔으며,’ (그림에서 보이는 옷) 파란게 에봇입니다. ‘그에게 에봇의 정교한 허리띠를 둘러 주었고, 그것을 가지고 에봇을 그에게 묶어 주었더라. 그리고 그는 그의 위에 흉패를 달아 주었더라. 또한 그는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더라.’ 자, 보세요. 여기에 흉패가 있는데요.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습니다. 이 심판의 흉패에는 12가지 보석들이 있죠. 이스라엘 각 지파를 상징하는 12가지 보석들이 있는데 우림과 둠밈이 빛을 발합니다. 그러면 마치 알파벳처럼 각 지파나 글자를 상징하는 보석이 빛을 발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그래, 그렇게 해라.” 우림과 둠밈이 글자처럼 빛을 발해서 알려 주는 거에요. 이게 구약시대 한시적인 계시 방법이었던 거예요. 왜냐면 성경이 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신정통치 국가였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를 주는 국가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사울과 다윗의 비교

[표준킹제임스성경] 사무엘기상 30:7-8

그리고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인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간구하노니, 에봇을 여기 나에게로 가져오라.” 하였더라. 그러자 아비아달이 에봇을 거기 다윗에게로 가져갔더라. 그러자 다윗이 주께 여쭈며 말씀드리기를, “제가 이 군부대를 추격하리이까? 제가 그들을 따라잡으리이까?” 하였더라. 그러자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뒤쫓아가라 ...


그런데 사울에게는 우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계시를 안 해 주셨는데 불과 2장 뒤에서는,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하기를 ‘에봇을 여기 나에게로 가져오라.”’ 아까 말씀드렸죠? 에봇에 심판의 흉배와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이 있는데 그걸 가져 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비아달이 에봇을 거기 다윗에게로 가져 갔더라. 그러자 다윗이 주께 여쭈며 말씀드리기를,’ 에봇을 두고 하나님께 여쭙는 겁니다. ‘“제가 이 군부대를 추격하리이까? 제가 그들을 따라잡으리이까?” 하였더라. 그러자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뒤쫓아가라 … ‘ 그리고 나서 쭉쭉쭉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다윗에게는 알려줬다는 거죠.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게 뭐에요?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는 응답 안 하시고 다윗에게는 응답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침묵도 계시입니다. 갭, 간격도 하나님께서 일부러 알려주신 것이다라는 거에요.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아브라함의 13년

[표준킹제임스성경] 창세기 16:16

그리고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주었을 때 아브람은 팔십육 세였더라.


창세기 17:1

이후에 아브람이 구십구 세가 되었을 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고 그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살아가라. 그리고 너는 완전하라.


아브라함의 경우를 잠깐 보면요. 창세기 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치명적인 실수, 잘못이 나오는데 바로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이라는 여종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오죠. 이집트는 세상의 상징이고 하나님께서 한 번도 긍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거기서 하갈이라는 여종을 데려 와서 사라의 말을 듣고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인간적인 머리의 방법으로 아들을 얻으려고 한 거에요. 그래서 사라가 불임이고 자식을 못 낳으니까 하갈을 통해서 결국 이스마엘을 낳은 거예요. 그때 아브라함은 86세 입니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다음 장이 17장이거든요.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아브라함이랑 아무 얘기를 안 하세요. 성경에서 숫자 13은 우리가 수비학에서 보면은 반역의 숫자입니다. 이 13년 동안 아브라함에게 아예 계시를 안 하십니다. 바로 다음 장 17장이 우리에게는 한 장밖에 안 되는데, 아브라함에게는 인생의 13년이 지나가 버린 거예요. 그리고 아브람이 구십구 세가 되었을 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그렇듯 우리에게는 한 페이지밖에 안 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나갈 수 있어요. 창세기도 마찬가지죠. 1장에서 6장 넘어갈 때도 그렇죠? 심지어 창세기 5장만 보면요. 5장 한 페이지에 약 1600년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기간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한 장으로 1600년을 다 설명하고 넘어가십니다. 그렇듯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더 강하게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뛰어 넘어서 말씀하신다는 거죠.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모세의 80년

[표준킹제임스성경] 신명기 34:7

 ¶ 그런즉 모세가 죽었을 때 그는 일백이십 세였더라 ...


모세의 일생

출생 - 40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공주에게 입양되어 왕자로 자람 => 출 2:1-15

40-80년 : 미디안으로 도피하여 목자로 지냄 => 출 2:16-25

80-120년 ;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 => 출 3장 - 신명기


모세의 80년도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일백 이십 세였죠. 그런데 모세의 인생이 40년 단위로 세 등분 할 수 있어요. 모세가 출생하고 40세까지는 이집트에서 태어나 자란거죠. 하나님께서 그 환경을 마련 하신 거죠. 거기서 배우고 파라오의 딸에게 입양 되어서 왕의 자녀로서 입양 되어서 자랐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 부분이 아주 일부분 2장 1절에서 15절로 언급이 끝납니다. 그런 다음에 살인을 저지르죠. 40세가 되었을 때, “아, 내가 나서야 되겠다.”라고 했는데 살인을 저지르고만 겁니다. 그래서 미디안으로 도피하여 목자로 양을 치며 지내는 세월이 40년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2장 16절에서 25절, 아주 짧은 구절로 언급됩니다. 모세의 인생 80년이 한 장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부터 신명기가 끝날 때까지 모세 오경의 대부분을 이제 모세의 마지막 40년 인생의 사역에 초점을 맞춰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하시거든요. 왜냐면 하나님 관점에서는요. 모세가 80년 동안 하나님의 일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이 80년은 그냥 배경 설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관심을 두고 싶은 신 것은 모세가 이제 드디어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이 일을 수행하는 그 40년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침묵도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예수님의 유년 시절


“예수님의 잃어버린 18년!?”

Did Jesus Go to India?


이런 말이 있어요. 예수님의 잃어버린 18년을 추적하자. 왜냐면 예수님에 대해서 출생 당시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고 또 초기에 몇 살 안 됐을 때 베들레헴에 있었던 일은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돼 있어요. 그런데 그 외에는 12살 때 갑자기 언급이 나오고요. 그때 마리아랑 요셉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줄 알고 다시 성전으로 가잖아요? 그때 딱 한번 언급이 되고 서른 살이 될 때까지 18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되냐? “아, 하나님이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신 거구나. 지금 예수님이 어린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가 하나님께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구나. 30세가 되서 사역을 이제 시작할 때가 더 중요한 거구나.” 그렇게 봐야 되는 데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못참죠. 그 간격동안 뭘 하셨울까? 예수님의 잃어버린 18년에서 대해서 막 추측을 합니다.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을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 가서 열심히 힌두교를 배워 오셨을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안 믿는 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추측을 해버리는 겁니다. 근거 없이 추측을 하는 거죠. 우리가 그렇게 추측을 해서 예수님이 힌두교를 배워 왔을 거라고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기록도 안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일부러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을 자기 멋대로 생각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내용을 방해를 하는 거죠.      


간격의 법칙 - 침묵의 계시 - 예수님의 유년 시절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2:51

그런 다음에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 가셔서 나사렛에 이르셨으며 그들에게 복종하셨더라. 그러나 그분의어머니는 이 모든 말씀들을 그녀의 마음속에 간직하였더라.


그런데 우리가 누가복음 2장 51절에 보면 12세 때 ‘그들과 함께 내려 가셔서 나사렛에 이르셨으며 그들에게 복종하셨더라.’ 나사렛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 언급이 되어 있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힌두 사상을 대적한다!

- 우상 숭배를 대적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4:8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는 기록되기를,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네가 섬길지니라.’ ⋅⋅⋅


그래서 이 부분 누가복음 2장 51절을 보면, 예수님은 힌두교를 배우러 절대 가지 않으셨을 거라는 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아요. 그런데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요.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대적하시잖아요. 힌두교는 하나님을 제외한 얼마나 많은 신들을 섬겨요. 소도 신이고 강도 신이고 자연도 다 신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사탄이 나에게 경배하라. 그랬을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말이에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는 기록되기를,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네가 섬길지니라.’ 힌두교는 다신교인데, 예수님께서는 유일하게 하나님만 섬기라고 말씀하셨고 우상숭배를 대적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힌두 사상을 대적한다!

- 다신교를 대적

[표준킹제임스성경] 마가복음 12: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같이 대답하셨느니라.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모든 명령들 중 첫째는 이것이라.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주로다.


그 다음에 마가복음 12장 29절에서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주로다.’ 이렇게 말씀 하셨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힌두 사상을 대적한다!

- 윤회를 대적

[표준킹제임스성경] 마가복음 9:44

그곳에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윤회도 대적했죠. 힌두교는 윤회 사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죽으면 ‘그곳에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간다라는 얘기도 해 주셨고 윤회를 반대하셨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힌두 사상을 대적한다!

- 자아실현을 대적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9:23

¶ 그러고는그분께서그들모두에게 이같이말씀하셨느니라. “누구든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힌두교는 자아실현을 하는게 목적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부인이 예수님의 핵심이었습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전혀 힌두교랑은 맞지 않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이 침묵한 것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서 넣으면 안 된다는 거죠. 그 중에 하나가 뭐에요? 로마카톨릭입니다. 구약에서 말라기 이후로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 침묵하셨다 그랬죠? 그런데 그 기간에 마카비서, 마카비라고 400년의 신구약 중간사 동안 활약했던 인물이 있어요. 이스라엘의 독립을 일으키려 하다가 패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을 영웅적으로 만든 책이 있어요. 그것을 마카비서라고 적어 가지고 그것도 성경도 아닌데 성경에 집어 넣어 놨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셨는데 전혀 성경도 아니고 성경과도 맞지않는 외경이라 불리는 것을, 마카비서, 뭐 벨과 용, 이라든지 일곱 권 이상의 외경들을 구약 시대 이후에 침묵의 시대에 있었던 것들을 막 집어 넣어 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6권이지만 카톨릭은 73권이죠. (침묵을) 못 참고 넣어 버린 거죠. 그런 것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침묵도 하나님 계시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후서 5:16

이런 이유로 이제부터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진정 우리가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을지라도 이후부터는 이제 우리가 그분을 더 이상 그렇게 알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고린도후서에 분명히 바울이 이렇게 애길 했어요. ‘이런 이유로 이제부터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진정 우리가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을지라도’ 예수님 어렸을 때부터 안 사람도 있잖아요. 나사렛에서 본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고향에서 본 사람 있잖아요. 실제로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 말고, 예수님의 친형제 야고보도 사도가 됐거든요.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나오는데, 이 야고보도 육신을 따라 주를 알았을거 아니에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목수 생활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의 그 육체로서의 삶을 알았다 할지라도 ‘이후부터는 이제 우리가 그분을 더 이상 그렇게 알지 아니하노라.’ 이제 우리는 아기 예수를 기억하는 게 아니에요. 이제 우리는 12살 때의 예수님을 기억하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죽은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하시고 지금 셋째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 시절에 뭘 했고를 많이 기록해 두는게 목적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12살 때가 잠깐 언급된 것도 12이라는 이스라엘의 숫자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일과 관련해서 잠깐 등장한 것 뿐이고요. 30세가 본격적인 사역의 시작이었죠.


그래서 제가 오늘 결론을 드릴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간격을 두신 것을 우리가 존중해야 된다. 억지로 추측이나 잘못된 생각을 집어 넣으면 안 된다. 침묵도 계시이고 하나님은 의도를 가지고 어떤 때는 침묵하시고 어떤 때는 강조를 하신다. 이 부분을 오늘 강조 드리면서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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