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 구원의 확신_환희의 왕관 프로젝트
-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4월 14일
- 2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12일
24.04.14.
[성경공부 자료] 구원의 확신_환희의 왕관 프로젝트

환희의 왕관 프로젝트 ㅡ 구원의 확신
믿음으로 받은 구원 안전할까?
오늘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단계별로 쭉 설명을 하고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또 구령자로서 촉구를 해야 되는지까지 봤습니다. 오늘은 구원을 어떻게 확신하고, 우리의 구원이 안전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드리고 환희의 왕관 프로젝트는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구원받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알려줘야 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후에 성장에 대해서 알려 줘야 되거든요. 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을 방치해 두라고 하지 않았어요.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도 그랬지만 구원받은 사람을 영적인 아들들이라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또한 영적인 자녀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랑 안전할까? 이 말을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믿음으로 받은 구원 안전할까? 로 바꿔 말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또는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데 안전할까요?” 라고 묻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질문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키겠느냐?
로마서 8장 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키겠느냐?’ 라고 사도 바울이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 로마서 8장의 결론은 아무도 없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므로 아무도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다가 결론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8:38-39
이는 내가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니, 곧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의 것들이나 다가올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떠한 다른 창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으리라.
SECURE
그래서 로마서 8장 38절-39절을 보면, ‘이는 내가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니, 곧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의 것들이나 다가올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떠한 다른 창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으리라.’ 하고 로마서 8장이 끝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결론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질 수 없고 분리될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어떠한 형태의 죽는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천사들이든 마귀들이든 어떤 영적 존재들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고요. 현재의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고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든지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없다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결론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교만하게 “아, 나 구원받았어.” 이렇게 확신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나는 신뢰를 못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뢰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확신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
사람들에게는 모두 사랑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가 있죠. 그래서 “사랑을 영원히 우리가 간직하자. 확실히 간직하자.”라는 의미로 자물쇠를 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을 안전하게 지키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확실한 구원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확신 ㅡ 교회의 특징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3:10
“의로운 자는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하나님의 기준
자격 미달
로마서 3장 10절에서 원래 하나님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의로운 자는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의로운 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준에 미달된 사람들인 겁니다.
구원의 확신 ㅡ 교회의 특징
하나님께서 교회 시대에 주신 특별 사면책
행위가 없어도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사면하는 은혜를 내리노라. 아무도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말라.
그런데 교회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격도 없고 행위도 없고 또 우리 의도 부족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사면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셨는데 이것을 특별사면책 이라 합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2:8-9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믿음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에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믿음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자신에게서 난 거라면 우리가 잘못되면 문제가 생기겠죠. 우리의 행위에서 난 거라면 우리 행위가 잘못될 때 문제가 생기겠죠. 그런데 우리에게서 난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그래서 안전한 겁니다.
구원의 확신
구원받으셨습니까?
죽어 봐야 알죠!
끝까지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구원의 확신은 참 중요한데요. 구원을 받고 나서 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잘 몰라 가지고 수십년을 교회를 다니면서 계속 구원의 확신 때문에 고생하고 또 계속 믿음이 흔들렸던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왜냐면 일반 교회 강단에서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 얘기할 때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행위가 필요한 것처럼 얘기했다가 바울서신 얘기할 때는 구원받은게 확실한 것처럼 얘길해요. 이랬다 저랬다 하기 때문에, 내가 오늘은 구원받은 거 같다가도 다음 주에 설교를 들을 때는 “아, 내가 정말 구원받았나? 구원받은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계속 하거든요. 그래서 “구원 받으셨습니까?” 질문하면 “죽어 봐야 알죠!”, “끝까지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구원의 확신을 잘 들으시고 “지금 내가 구원을 받았다.” 라는 확신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반드시 보장이 된다라는 것을 여러분이 꼭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너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이 모르겠느냐? [Know ye not your own selves, how that Jesus Christ is in you, except ye be reprobates?]
[개역/개정] ⋅⋅⋅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하나님께서 “입증하라” 이런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요. 입증하라는 것은 증거를 제시하고 증명하라는 거에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증거로 우리는 자신을 증명해 내야 돼요. 내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약속, 성경을 근거로 아는 거죠. ‘너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이 모르겠느냐?’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구원받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고 여러분이 구원 받았다면 당연히 이 사실을 안다라는 거에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가? 아닌가? “ 이말은 “내가 구원을 받았나? 안 받았나?” 거든요? 그럼 지금까지 성령님과 교제했던게 뭐죠?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한다. 또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 또 하나님과 교제한다.’ 이게 뭐가 되는 거죠? 구원 받았다면,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아는 건데, 곧, 구원받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 지식의 부족이나 밸런스가 어긋나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경우가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개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이 됨으로써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무슨 말이냐면? 자기 안에 예수님이 있는 것을 모르면 구원 못 받았다. 버림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라는 지식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구원을 받은 거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 거에요. 이것 때문에 내가 구원을 못 받았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아니에요. ‘except ye be reprobates?’가 전제 조건이라 앞에 가야 돼요. except는 if not 의미에요. 그러면 ‘너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이 모르겠느냐?’ 이렇게 번역되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한국어 성경들이 이 순서를 바꿈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이렇게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이렇게 하면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자꾸 그렇게 말하면서 조건을 계속 달아요. 이런 조건들이 붙어서 제자도로 넘어가, “열매를 맺어야 구원받는다.”라고 하면 이게 Lordship Salvation, 주제권 구원론으로 가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 12절에는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쉬워요.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생명이 있고요. 없으면 생명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네 안에 거하겠다.” 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믿으면 여러분이 구원받은게 확실한 거예요.
구원의 확신 ㅡ 바울의 고백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2:5
실로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되살아나게 하셨느니라. (은혜로 너희가 구원받았느니라.) 확신
그래서 바울은 확신했어요.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은혜로 너희가 구원받았느니라.’
‘이미 받았다.’라고 확신을 했어요. “받고 있다” “구원을 받을지도 몰라.”라고 한게 아닙니다. “구원 받았다.”라고 얘기를 한게 성경적인 거예요. 구원 받았습니까? 물었을 때, “구원받는 중입니다. 구원 받을지도 몰라요. 구원받길 소망합니다.”가 아니라 “네, 구원 받았습니다.”가 성경적 용어입니다.
구원의 확신 ㅡ 바울의 고백
[표준킹제임스성경] 빌립보서 4:3
그리고 내가 참된 멍에 동료인 너에게도 간청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클레멘트와 함께 하였으며, 나의 동료 일꾼들과 함께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들이 생명책 안에 있느니라. 확신
바울이 지금 문맥상 두 여인을 얘기 하는데 “이 두 여인의 이름들이 생명책 안에 있다.” 라고 확신을 합니다. 보세요. 자기 구원을 확신할뿐만 아니라 “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간증하는 사람들에게, 또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안에 있다.” 라고 확신하는 거예요.
구원의 확신 ㅡ 베드로의 고백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전서 1:9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확신
베드로전서 1장 9절.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가 아니죠? “받았다.” “우리의 혼은 이미 지옥으로부터,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았다.”라고 확신을 하는 겁니다.
구원의 확신 ㅡ 요한의 고백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5:13
내가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기록하였으니,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요,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려는 것이라. 확신
✔성경이 기록된 목적
‘내가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기록하였으니’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습니까? “네.” 그럼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요,’ 여러분은 이미 영생이 있습니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확신을 하게 하려고 요한일서를 썼다는 거에요.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 알게 하려고요. 그것을 알아야 된다라는 거에요. 그것을 구령한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성경을 근거로요.
구원의 확신 ㅡ 교회의 특징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16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말씀 하셨잖아요?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죠?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멸망할까요? ‘멸망하지 않고 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럼 영원한 생명을 얻나요? “네.” 쉽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2:25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니, 곧 영생이라.”
결국 구원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것
요한일서 2장 25절,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니, 곧 영생이라.” 영생을 약속하셨는데, 예수님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영생을 받는 거예요. 하나님 약속을 신뢰하는 거에요.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 이것을 믿지 않고 “아, 그래도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면 겸손이 아니에요. 왜냐면 내 생각이 더 옳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그럴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믿고 확신하는 겁니다.
구원의 확신 ㅡ 교회의 특징
로마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
갈라디아서 행위로 구원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행위로 구원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두 책이 말하죠. 지금까지는 확신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다면, 이제 구원이 끝까지 유지되는가? 영원히 보장 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구원의 확신
“제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나요?”
구원의 믿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구원을 어떻게 받습니까?” “제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데, 만약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나중에 예수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럴듯 하잖아요?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분께서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니라.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이 구원의 믿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분께서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어요. 그럼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죠? 예수님이 몸으로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으로 계십니다. 그분을 우리가 성령님이라고 해요. 여러분이 한번 성령님을 받아들이면 성령님은 안 나가세요. 그것이 참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다니 교만하다.”고 오해를 해요. 왜냐하면 일부 어떤 사람들의 잘못된 주장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이제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절대 죄를 안 짓는다.” 또는 “나는 이제 죄인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아.” 또는 “나는 이제 죄를 지어도 괜찮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오해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절대 그렇게 얘기를 하지 않죠. 당연히 구원 받았으니까 더더욱 죄를 지어선 안 되죠. 구원 받았으니까 너무나 감사해서 더 선한 행위들을 해야 되죠. 그리고 구원 받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주실 그 보상과 상급과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생각하면서 달려나가야 되겠죠. 중요한 것은 경주를 시작해야 달려 나가지 시작을 안했는데 달려나갈 수가 없죠. 우리가 이제 (구원을 받고 난 후에는) 달려갈 길이 남아 있고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거죠.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1. 우리의 행위로 받은 것이 아니기에 행위로 잃어버릴 수 없다.
그럼,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를 여섯가지의 관점으로 알려 드리는데 구약과 좀 차별을 두면서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구약 때 교리와 또는 대환란 때 교리와 신약 교회 시대의 교리를 나누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것만 잘 나누면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가 받은 신약의 구원과 구약의 구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것이 소위 말하는 세대주의입니다. 그럼 첫번째 관점, ‘우리의 행위로 받은 것이 아니기에 행위로 잃어버릴 수 없다.’ 라는 것을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구약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2:12-13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다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라.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의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실행하는 자들만이 정당함을 입증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구약의 경우는 어땠는지 로마서 1-2장에서 설명하거든요. 로마서 2:12-13, 구약에서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다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라.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의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실행하는 자들만이 정당함을 입증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했어요. 율법 아래에 있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으면 율법에 있는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서 간음, 살인, 우상숭배 하면 사형입니다.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실행하는 자들이 정당한 자들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3:10
이는 율법의 행위들에 속한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니 기록되기를, “율법 책 안에 기록되어 행하도록 한 모든 것들을 지속하지 아니하는 모든 이는 저마다 저주를 받느니라.” 하였기 때문이라.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율법의 행위들에 속한 자들은 모두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니,’ 자, 율법에 속한 사람들, 구약시대 사람들은 특히 모두 저주 아래 있다는 거예요. 왜냐면 여러분 구약을 보면 알겠지만은 “~~해라. ~~ 하지마라.” 법이에요. 우리나라 법도 “~해라. ~하지마라.” 잖아요. 율법이에요. 그런데 안 하면 어떻게 돼요? 형벌이고 심판이고 저주입니다. 그래서 ‘“율법 책 안에 기록되어 행하도록 한 모든 것들을 지속하지 아니하는 모든 이는 저마다 저주를 받느니라.”’ 라고 했어요. 율법 안에 있으면 이것을 지속적으로 해야 정당함을 입증 받습니다. 그게 구약 시대에요. 그런데 온전하게 잘 못하잖아요? 그걸 지속하지 못하니까 그때 그때 죄를 지을 때마다 희생 제물을 드려서 죄를 더는 거예요. 그것이 계속 반복이 돼야 되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구원의 보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왜? 행위가 근거가 되기 때문이에요. 율법 자체가 “~하라. ~하지마라.”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구약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로 정당함을 입증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정당함을 입증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우리가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정당함읗 입증받으려 함이라.이는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정당함을 입증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로 정당함을 입증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은혜 시대에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정당함을 입증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우리가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정당함읗 입증받으려 함이라. 지금 우리는 알게 된 거예요. 그것은 불가능하고 율법시대 때 임시적으로 허용한 것 뿐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of) 믿음으로 정당함을 지급 받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of) 믿음은 예수님이(of) 주신 선물로서의 믿음이고 내가 또 예수 그리스도를(of) 믿는 것입니다. “의(of)”가 주격, 속격, 목적격, 다 사용이 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영어 of도 마찬가지고요. ‘이는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정당함을 입증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의를 보내 주셨어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예수님께서 모든 울법을 완전하게 완성하기 전이어서 아무도 완전한 의를 행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의의 기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노아도, 욥도 의롭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신약의 기준에서 보면 의로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신약의 기준에서 보면 율법의 행위들로는 정당함을 입증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 입니다. 그래서 이 신약시대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특별 사면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우리의 공로 0%, 전혀 값을 지불하지 않음
로마서 3장 23절에는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죄의 대가는 사망인데 우리의 공로가 전혀 없이, 우리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3:3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너희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느냐?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3절에는 행위로 자꾸 구원을 유지한다고 하거나 자기가 구원을 완성을 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바울은 분명히 은혜로 구원받는 것과 은혜로 구원이 당연히 유지되는 것을 가르쳤는데,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가 뭐였죠? 거짓 성경 교사들이 와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 거예요. 특히 유대인들이 와서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넘어간 사람들에게 바울이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너희에게 바르게 가르쳤는데, 내가 없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상하게 가르치는데 거기에 넘어갔냐? 너희들, 왜 그렇게 어리석으냐?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영원히 내주하시는데 너희는 이제 육체로 완전해지려고 하느냐? 우리는 육체로는 절대로 의를 이룰 수 없다. 육체로는 절대 정당성을 입증 받을 수 없고, 육체로는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을 했는데 왜 육체로 이것(구원)을 완성하려고 하느냐?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절대 내 공로가 아니라 성령님, 하나님 공로로 그렇다.”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5:4
너희 중 율법으로 정당함을 입증받은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전혀 효력이 없게 되나니, 너희는 은혜로부터 떨어지느니라.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4절은, 바울이 ‘너희 중 율법으로 정당함을 입증받은 자는’ 계속해서 “아니야 우리가 그래도 율법을 지켜야 돼. 그래도 율법의 행위들이 필요해. 그래야 정당함이 입증받아.”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전혀 효력이 없게 되나니’ “그럼 네가 할 수있으면, 너는 그리스도가 필요없는 사람이야. 네가 행위들로 정당함을 입증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판결에서 ‘그래, 너는 영원한 생명, 너를 내가 천국으로 보내 주겠다.’라고 판결받을 수 있으면, 너는 그리스도가 필요 없고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효력이 없다. 그럼 ‘너희는 은혜로부터 떨어지느니라.’” 이거는 구원받은 사람이 은헤로부터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에요. 율법으로 완전해 지려는 사람이 은혜로부터 떨어진다는 거예요. 왜냐면? 지금 행위랑 은혜는 정 반대입니다. 행위는 자꾸 일하는 거예요. 일하면 보수는 정당한 겁니다. 그러면 은혜가 더이상 아니에요. 은혜는 일을 안 했는데도 주는 거예요. 그게 은혜에요.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은혜로부터 떨어지고 그리스도는 효력이 없게 되고 자기 혼자 행위로 자꾸 정당함을 입증 받으려는 거예요.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2. 태어난 아기는 출생을 취소할 수 없다.
두번째,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는 태어난 아기는 출생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신약의 의미로는 여러분이 다시 태어났다는 겁니다. 다시 태어나서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새로 시작됐어요. 여러분이 영적인 아기로 새로 시작하게 되고 여러분이 영이 거듭난 겁니다. 그런데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안 태어나게 하겠습니까? 태어났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을 어떻게 다시 되돌리겠어요? 태어났습니다 .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3:3-9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셨더라 ⋅⋅⋅니고데모가 그분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였더라.
니고데모 => 이스라엘의 스승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9절 보면요. 니고데모에게 하나님께서 거듭남에 대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 주셨어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셨더라 ⋅⋅⋅니고데모가 그분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왜 모르는지 아세요?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성경 교사였지만 구약에는 거듭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겁니다. 거듭남은 신약 시대에 시작이 된 거예요. 이게 구약의 구원과 신약의 구원이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12-13
그러나 그분께서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곧 그분의 이름읗 믿는 자들에게니라. 그들은 혈통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요, 육신의 뜻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사람의 뜻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느니라.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뭐랬어요? ‘그분께서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다’라고 했죠. 바로 뒷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혈통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요, 육신의 뜻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그러니까 육신적으로 태어난게 아니라는 거죠. ‘사람의 뜻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느니라.’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뱃속에 들어갔다 태어난게 아니잖아요.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겁니다. 자, 그런데 그 태어난 아기가 뭔가 좀 잘못했다고 해서 이미 태어난 아이가 안 태어나게 돼 버리거나 자녀가 안 돼 버리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 자식이 태어났으면 미우나 고우나 여러분 자식입니다. 뭐, 호적에서 판다. 이렇게 협박을 하든 말든, 법적으로는 뭐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DNA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취소할 수 없습니다.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3. 성령님으로 인장을 받았다.
세번째,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는 성령님으로 인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까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했죠. 그 말은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이 안에 계시다는 건데 성령님이 내주한다라는 것은 신약 시대의 어마어마한 약속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1:13
너희가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후에 너희 또한 그분을 신뢰하였느니라. 너희가 그분을 믿은 후에 너희는 그 약속의 거룩한 영으로 인장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장 13절, ‘너희가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후에 너희 또한 그분을 신뢰하였느니라. 너희가 그분을 믿은 후에’ 너희가 그분을 믿었더니 어떻게 됐어요? ‘너희는 그 약속의 거룩한 영으로 인장을 받았느니라.’ 여러분이 방언을 했기 때문에 성령님이 들어오신게 아니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성령님이 들어 오셨습니다. ’그 약속의 거룩한 영’은 성령님이죠?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인장을 받았다’는 겁니다. 인장이 뭐에요? 도장을 꽉 찍는 겁니다. 그러면 봉인이 됩니다. 이 인장을 보통 왕이 찍죠?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이상, 왕이 아닌 이상, 이 인장을 풀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내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예요. 인장의 역할은 봉인의 역할도 있고요. identity의 역할도 있어요. “내것이다.”라고 나타내는 역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찍었기 때문에 무효화 될 수 없고 성령님에 의해서 안전하게 보장이 되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 성령님으로 인장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약속하셨거든요.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고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으로 계속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구원은 계속 보장을 받습니다.
삼손: 성령님이 떠나심 => 성령님이 다시 오심
사울: 성령님이 떠나심 => 성령님이 다시 오지 않으심
다윗: 성령님이 떠나지 않으심 => 성령님이 계속 계심 ✔
우리가 성령님의 인장을 받았다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요? 구약 시대는 또 신약 시대와 달리 성령님을 통해 인장을 받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냐면, 구약 시대 사람들은 성령님이 잠깐 목적에 의해서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손의 경우에는 주께서 떠나셨다 다시 오시죠. 초자연적인 힘이 성령님이 주신 힘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잘리고 나서 성령님이 떠나셨어요. 그래 가지고 힘을 못 쓰는 평범한 사람이 됐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기도 했을 때 성령님이 다시 오셔서 초자연적인 힘을 마지막으로 발휘하고 죽습니다. 사울같은 경우는 초기에는 성령님이 주어졌다가 나중에는 성령님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오죠. 다시는 성령님이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다윗같은 경우에는 성령님이 떠나실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제발 떠나지 말아 주십시요.” 시편 51편 “거룩한 영을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계셔 주셨어요. 이게 구약 시대의 상황이에요. 얼마든지 성령님이 떠나면 사울왕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 문맥에서 ‘인장을 주셨다. 그러면서 구속의 날까지 인장을 받았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런데 이 구속의 날은 이 몸이 구속이 되는 거죠.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인장을 받았으니까 보장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히 구원이 보장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 문맥이 뭐라고 말하냐면? 그렇게 인장을 받았는데 우리가 만약에 악담하고 수근거리고 고성을 지르고 화내고 이렇게 하면 안에서 성령님이 막 비통해 하신다 그랬어요. 너무 슬퍼 하세요. 성령님께서 견딜 수가 없겠죠. 거룩한 영이신데 너무나 거룩하지 않은 인간 안에 계시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런데도 비통해 하시면서도 있으신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나 감사한 거고 이것을 신약시대의 신비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견디실 수가 없는 분이실 텐데 그래도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의 성도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에요. 내가 성령님께 몹쓸짓을 하는데도, 성령님을 비통하게 해도 성령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보장해 주시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1;14
그 거룩한 영은 값이 치러진 그 소유를 구속하실 때까지 우리 유산의 보증이 되시어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데 이르게 하시느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 구원의 보증서!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4절에 ‘그 거룩한 영은 값이 치러진 그 소유를 구속하실 때까지 우리 유산의 보증이 되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증이 되어 주신다. 이것을 earnest라고 합니다. 이런 역할을 성령님이 해 주시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4:30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비통하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장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장 40절,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장을 받았느니라.’
그런데 문맥이 뭐라고 했죠? ‘거룩한 영을 비통하게 하지 말라.’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4.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네 번째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구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제가 최근에 성경 해석학을 가르치면서 점진적 계시에 대해 알려 드렸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점이 뭐냐면 신약 시대 우리가 아는 것을 구약 시대 사람들은 다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구약 때는 계시가 안 된 것이 엄청 많습니다. 지금 성경 해석할 때 오류를 범하는 것이 뭐냐면 지금 우리가 다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이 구약 때 사람들도 다 똑같이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예요. 그리고 구약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
[표준킹제임스성경] 에베소서 3:5-6
그것은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지금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게시된 것처럼 알려지지 않았느니라.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들이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의 동참자들이 된다는 것이라.
자, 보시면 에베소서 3장 5-6절에서 분명히 말했죠. ‘그것은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성령께서 바울 자신에게 알려주셨고 그 다음에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알려주셨다는 거예요.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들이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의 동참자들이 된다는 것이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같은 몸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게 되고 한 몸이 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뼈와 살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진리거든요. 그런데 이전 시대의 구약 때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거예요.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왜냐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셔야 우리를 위해서 몸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몸 안에 들어가서 한 영이 되는 거고 일부(or지체)가 되는 거지 예수님 죽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보장이라는 것이 없어요. 왜? 예수님은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다라고 하셨어요. 자기 손을 잘라서 지옥에 던지지 않는다는 거에요. 자기 발을 잘라서 지옥에 던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뭐로 자주 예시를 드세요? 나무, 가지, 하나님께서는 나무나 가지를 도끼로 찍어 가지고 불태워 버리신다 이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런데 신약 시대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완전 엄청난 차이죠. 그러니까 구약 시대의 구원과 신약 시대의 구원이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성령을 너무너무 모르는 거예요. 성령의 거의 75%를 모르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2:27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개별적으로 지체들이라.
다른 시대의 성도들은 그분의 몸으로 불린 적이 없다!
자, 성경이 그랬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개별적으로 지체들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고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2:13
설령 우리가 믿지 않는다 하여도 그분께서는 늘 신실하시니,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
구원받은 당신은 이미 주님의 일부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에는 ‘설령 우리가 믿지 않는다 하여도’ 누군가 그랬죠? 아, 만약에 제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설령 우리가 믿지 않는다 하여도 그분께서는 늘 신실하시니,’ 누가 신실해요? 예수님이 신실하시니까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께 달려 있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수님께 달려 있어요. 나는 신실하지 않은데, 내 신실함에 달려 있으면 우리는 매일매일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실하셔서 예수님은 한번 자기 자녀로 인정하고 자기 몸의 일부로 인정한 사람은 절대 부인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너무나 감사한 겁니다. 왜 구령이 중요하냐? 왜 복음 전파가 이 시대에 이렇게 중요하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 어마어마한 보장이 약속돼 있으니까요. 진짜로 구원받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예요. 돈도 필요없고 행위도 필요 없고 그냥 완전히 값없이 주어졌으니까요. 만약에 이렇게 완전히 보장되는 구원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어도 죽을 때까지 열매를 맺어야 된다거나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된다거나 행위로 계속 유지를 해야 된다면 왜 복음을 전합니까? 별로 복음이, Good news가 아니잖아요. 구원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건 기쁜 소식도 아니고 뭐 복된 소식도 좋은 소식도 아닙니다.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5. 이미 죄의 대가가 치러졌다.
다섯 번째,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는 이미 죄의 대가가 치러졌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재판의 개념으로 설명하신다 했죠.
구약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0:4, 10
이는 수소들의 피와 염소들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동일한 희생 제물들을 자주 바치지만, 그것들은 죄들을 결코 제거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장 4-10절을 보면 구약 때는 이렇습니다. ‘수소들의 피와 염소들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구약의 특징이었어요. 죄를 제거는 못하고요. 덮기만 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덮어줘야 돼요. 그래서 제사장들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동일한 희생제물들을 자주 바칩니다. 왜? 자주 죄를 지으니까 자주 바쳐야죠. ‘그것들은 죄들을 결코 제거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구약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을 때마다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죄 가운데 죽을 수 있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9;26, 10:10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어 죄를 없애시려고 세상의 끝에 한 번 나나나셨도다 ⋅⋅⋅ 그 뜻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한번에 완전하게 드려짐을 통헤 우리가 성결하게 구별되는도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거는요. ‘이제 그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어’ 동물처럼 불완전한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벽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려서 ‘죄를 없애시려고 세상의 끝에 한 번 나나나셨’고요. ‘그 뜻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한번에 완전하게 드려짐을 통헤 우리가 성결하게 구별된다.’라고 했어요. 한번에 완전하게 드려 지셨어요.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제사장처럼 매일 서서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나서 예수님은 셋째 하늘에 가셔서 앉으셨습니다. 다 끝났다. 이거예요. 구약의 성막에는 앉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자비의 자리라고 하죠. 앉지를 못해요. 의자가 없으니까 자비 석이 아니에요. 그런데 신약에는 은혜의 보좌에 앉으십니다. 다 끝났으니까요.
일사부재리의 원칙
“같은 죄를 두 번 처벌하지 않는다.” =>LAW
자, 이것이 죄의 대가가 치러졌다는 증거고요. 죄가 재거됐다는 증거고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같은 죄를 두 번 처벌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뤄줬으니까 다시 우리가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베드로전서 2:24
그분께서 친히 나무에 달린 자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죄들에 죽은 우리가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미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석 방
우리의 죄사함은 가석방이 아니라 완전사면이다!
그래서 완전한 석방입니다. 가석방이 아니라 완전 사면입니다.
홍길동,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등등 모두 해당 사형 ➨ 나사렛 예수, 율법을 완벽하게 이룸 통과
그래서 전가하는 개념, 뭐 깊이 다루지 않겠지만 여러분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가져 가시고 예수님의 모든 의는 여러분에게 주신 거예요. 이름을 바꿔 주신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잘한게 없는데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죄값을 치루셨고 형벌을 받으셨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의로 천국을 갈 수 있게 된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30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께로부터 났으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결과 구속이 되셨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결과 구속이 되셨느니라.’ 우리에게 의가 되신게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고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 하신다는 겁니다.
신약 성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근거
6. 우리를 위한 완벽한 변호사가 계신다.
자, 마지막 근거로 ‘우리를 위한 완벽한 변호사가 계신다.’ 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은 김&장 같은 로펌에 의뢰하면은 왠만한 죄들은 다 그냥 없는 걸로 해 준다고 하죠.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완벽한 변호사가 계신데 예수님이십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기록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변호인이 우리에게 계시니, 곧 의로우신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장 1절에 ‘나의 어린 자녀들아,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기록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자, 여러분이 구원받았으면 죄를 짓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죠? 그런데 만일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때가 있잖아요? ‘죄를 짓는다면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변호인이 우리에게 계시니, 곧 의로우신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Lordship Salvation, 주재권 구원론을 믿는 분들인데 그분들 중에도 “아, 나는 구원을 받았다.”라고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끝까지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원래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분의 주장은 자기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는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자신있게 얘기한다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 죄의 정의에 대해서 정말로 모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설교자한테한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가 구원받은지 20년이 됐는데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생각한 죄가 뭔지 들어 보니까 자기는 담배 피지 않았고 술 마시지 않았고 자기는 뭐 욕설을 하지 않았고… 등등. 그런거였죠. 그러면 마음으로부터 짓는 죄는 어떻게 할 거예요? 교만은 어떻게 할 것이며 또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죄들은 어떻게 할 것이고, 시기는 어떻게 할 것이며…등등. 이런 죄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겉에 보이는 걸로 자기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지어도 예수님이 번호해 주신다는 거예요. 예수님 바로 옆에 누가 계세요? 온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딱 앉아 계세요. 예수님이 바로 옆에서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여 주면서 “내가 저 아이를 위해서 대신 죽었습니다. 저 아이를 보지 말고 저를 봐 주십시요.” 그렇게 변호해 주십니다. “제가 죄 값을 대신 치뤘습니다.” 고소자인 마귀가 우리를 고소하지만 우리에게는 변호인이 계시다는 거죠. 그래서 저 위에서 중재를 해주시기 때문에 더 좋은 언약의 중재자이시다는 표현을 하세요. 예수님은 하나님 옆에서 중재해 주시는 중재자십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7:27
그분께서는 그러한 대제사장들처럼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 제물을 바치고 다음으로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을 매일 할 필요가 없으시니라. 이는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다 바치셨을 때 이것을 친히 한 번에 이루셨기 때문이라.
그런데 예전에 구약 시대는 불완전한 대제사장, 불완전한 중재자였어요.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1년에 딱 한 번 지성소에 나갈 수 있는데요. 그때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일단 자기 자체도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완벽한 중재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7:25
이런 이유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시나니, 그분께서는 자신에 의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능히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그런데 그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이 아닌 진짜 제일 좋은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이유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중보’해 주세요. 그냥 여기 땅에서 해 주시는게 아니라 저 하늘 보좌에서 같이 앉아서 중보해 주시는 거예요. 얼마나 든든해요. 제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우리한테 달린게 아니고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2:5
이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도 유일하신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그래서 구약 시대 임시 중재자로서 대제사장들이 있었지만, 완벽한 의미에서 신약의 대제사장은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님 한 분 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아니하고, 포도나무들 안에도 열매가 없으며, 울리브나무의 수고한 것이 끊기고, 밭들이 아무 음식을 내지 못하며, 우리에게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들에 아무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를 크게 기뻐하겠노라. 나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겠노라.
자, 결론을 맺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받은 구원 있잖아요? 이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이 구원의 큰 선물을 생각하면요.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됐든 여러분 슬퍼하실 거 없습니다. 하박국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아니하고, 포도나무들 안에도 열매가 없으며, 울리브나무의 수고한 것이 끊기고, 밭들이 아무 음식을 내지 못하며, 우리에게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들에 아무 소 떼가 없을지라도’ 큰일 났죠? 하박국 상황의 구약 시대를 지금으로 적용하면 완전히 여러분 파산입니다. 그럴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를 크게 기뻐하겠노라. 나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겠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하시면서 또 이 구원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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